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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 짐승인 기(夔)는 많은 다리를 가진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눈을 부러워하고, 눈은 마음을 부러워한다.추수(秋水)
기가 노래기에게 말했다.
“나는 한 다리로 걷느라 몹시 불편한데 당신은 많은 다리로 유연하게 움직이니, 부러운 한편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합니다.”
노래기가 말했다.
“특별한 느낌은 없다네.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 기관들을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네.”
노래기가 뱀에게 물었다.
“나는 다리가 여럿이어서 움직임이 수월한데, 다리도 없이 움직이는 당신에게 미치지 못하니 어쩐 일이지요?”
뱀이 말했다.
“그저 자연이 허락한 대로 움직일 뿐, 없는 다리를 어찌 사용할 수 있겠소?”
뱀이 바람에게 말했다.
“나는 힘들게 몸통을 움직여야 겨우 이동하는데, 그대는 형체도 없이 북해에서 남해까지 단숨에 옮겨 가니 부러울 뿐입니다.”
바람이 대꾸했다.
“그렇소. 그대가 부러워하는 것처럼 나는 단숨에 북해에서 남해로 옮길 수 있소. 그러나 나 역시 때로는 손가락 하나도 넘어뜨리지 못하고, 발걸음 한 번 옮기게 하지 못할 때도 있소. 이렇듯 작은 것을 당해 내지 못할 때도 있지만 큰 나무를 쓰러뜨리고, 큰 집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내게는 있소. 나의 이런 능력은 작은 것에는 지면서 큰 것에는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 결과라오. 큰 것을 이기는 이는 오직 성인뿐이오.”
크고 작음처럼 능력 또한 상대적인 것이다. 비교 대상이 없을 때는 우열이 드러나지 않는다. 기와 노래기, 그리고 뱀은 이동 기능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서로가 비교 대상이다. 이동 능력만 놓고 본다면 세 동물 사이의 우열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형태나 속도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바람이 있다. 바람은 잠시도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으며, 그렇다고 갈 곳을 정해 놓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저 어디에서든 잠든 대지를 일으킬 뿐이다.
바람이 그 어떤 비교 대상보다 빠르고도 강한 이유는 늘 빠르고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은 사이로 스미고 좁은 틈을 메울 줄도 알기 때문이다.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람에 경계가 없듯이 ‘도에는 한계가 없으며’, 성인의 도는 대체로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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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목차
1. 내편(內篇)
제1화 곤이 붕으로
제2화 허유와 접여의 삶의 태도
제3화 혜자의 박
제4화 쓸모는 하늘이 정하는 법
제5화 통하였느냐
제6화 조삼모사
제7화 참을 수 없는 지식의 가벼움
제8화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
제9화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
제10화 꿈 깨니 또한 꿈이런가
제11화 칼로써 양생을 말하는 정(丁)
제12화 사람에게서 자연으로
제13화 누구나 자기 설움에 운다
제14화 집착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제15화 천륜(天倫)과 인륜(人倫)
제16화 존중함으로 존중받는다
제17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제18화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제19화 이름지어진 덕은 덕이 아니다
제20화 사람의 정, 하늘의 정
제21화 진인을 본받아
제22화 삶과 죽음을 넘어 자유로
제23화 청출어람(靑出於藍)
제24화 마음을 비우면 귀신도 도망간다
제25화 인위(人爲)가 무위(無爲)를 죽이다
2. 외편(外篇)
제26화 물오리와 학의 다리
제 27화 수양산 바라보며 공자를 탓하노라
제28화 그 어떤 기예도 자연을 빚지는 못한다
제29화 곳간지기 공자
제30화 바람만이 아는 대답
제31화 요임금과 봉인
제32화 인도(人道)와 천도(天道)
제33화 진리를 담을 그릇은 없다
제34화 지극한 인(仁)은 근본에 따르는 것
제35화 천도 정치
제36화 버려야 얻는다
제37화 본성에 대한 편견
제38화 벼랑에 이르러야 바다를 본다
제39화 바람은 경계가 없다
제40화 짝 잃은 장자를 곡하노라
제41화 마음을 비우면 죽음도 피한다
제42화 최고의 명장은 자연
제43화 쓸모는 사람이, 수명은 자연이 정한다
제44화 가장 뛰어난 화장술은?
제 45화 제후보다 진인
제46화 흐르는 강물처럼
제47화 한 우물을 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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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바람은 경계가 없다 – 장자, 조수형 외,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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