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장자 제 39 화

바람은 경계가 없다

외발 짐승인 기(夔)는 많은 다리를 가진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눈을 부러워하고, 눈은 마음을 부러워한다.

기가 노래기에게 말했다.

“나는 한 다리로 걷느라 몹시 불편한데 당신은 많은 다리로 유연하게 움직이니, 부러운 한편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합니다.”

노래기가 말했다.

“특별한 느낌은 없다네.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 기관들을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네.”

노래기가 뱀에게 물었다.

“나는 다리가 여럿이어서 움직임이 수월한데, 다리도 없이 움직이는 당신에게 미치지 못하니 어쩐 일이지요?”

뱀이 말했다.

“그저 자연이 허락한 대로 움직일 뿐, 없는 다리를 어찌 사용할 수 있겠소?”

뱀이 바람에게 말했다.

“나는 힘들게 몸통을 움직여야 겨우 이동하는데, 그대는 형체도 없이 북해에서 남해까지 단숨에 옮겨 가니 부러울 뿐입니다.”

바람이 대꾸했다.

“그렇소. 그대가 부러워하는 것처럼 나는 단숨에 북해에서 남해로 옮길 수 있소. 그러나 나 역시 때로는 손가락 하나도 넘어뜨리지 못하고, 발걸음 한 번 옮기게 하지 못할 때도 있소. 이렇듯 작은 것을 당해 내지 못할 때도 있지만 큰 나무를 쓰러뜨리고, 큰 집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내게는 있소. 나의 이런 능력은 작은 것에는 지면서 큰 것에는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 결과라오. 큰 것을 이기는 이는 오직 성인뿐이오.”
추수(秋水)

크고 작음처럼 능력 또한 상대적인 것이다. 비교 대상이 없을 때는 우열이 드러나지 않는다. 기와 노래기, 그리고 뱀은 이동 기능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서로가 비교 대상이다. 이동 능력만 놓고 본다면 세 동물 사이의 우열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형태나 속도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바람이 있다. 바람은 잠시도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으며, 그렇다고 갈 곳을 정해 놓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저 어디에서든 잠든 대지를 일으킬 뿐이다.

바람이 그 어떤 비교 대상보다 빠르고도 강한 이유는 늘 빠르고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은 사이로 스미고 좁은 틈을 메울 줄도 알기 때문이다.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람에 경계가 없듯이 ‘도에는 한계가 없으며’, 성인의 도는 대체로 이러하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수형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교육대학원에서 윤리교육 석사학위 취득. 현재 보성여자고등학교 윤리 교사. 주요 저서≪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길≫,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펼쳐보기

장자 집필자 소개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펼쳐보기

출처

장자
장자 | 저자조수형 외 | cp명풀빛 도서 소개

인간 외의 사물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우화는 대개 인간의 한계를 조롱하고 풍자하려는 것이 그 목..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바람은 경계가 없다장자, 조수형 외, 풀빛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