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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자의 멋품

교양의 수준, 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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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산다.’는 말이 있다. 365일 슈트를 입고 사는 남자와 상갓집과 결혼식에 갈 때 외에는 슈트를 입지 않는 남자. 우스갯소리라고 지나치기에는 어딘가 뼈가 있다고 생각되는 말이다. 세상이 다변화되면서 요즘은 외모로 노동직과 사무직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여전히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로 이분화되는 두 가지 계층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화이트 칼라로 분류되는 남자들, 그중에서도 365일 슈트를 입고 사는 남자들의 경우, 클래식 슈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슈트가 어디에서 유래된 옷이며, 이를 격식에 맞게 입는 방법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입어야 하지 않을까?

내한한 할리우드 스타가 한복 고름을 엉망으로 매고 있어 화제가 됐던 경우를 떠올려보자. 한국 사람이라면 곧 불편함을 느끼고 고쳐 매주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한복에 대한 예의나 기본 태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잘못 입은 슈트도 아는 사람의 눈에는 예의 없거나 꼴불견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왕 입는 옷, 제대로 알고 입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멋진 남자라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의 문화와 예의를 따르는 데도 열려 있어야 한다.

슈트는 군복에서 유래되었다. 군복의 단추를 세 개 떼어내고 라펠을 젖힌 모양이 지금의 슈트다. 격식과 규율이 있는 군복에 V존에만 자유를 주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게 한 것이 슈트다. 일상복이므로 편하게 입는 게 제일이라거나, 옷이야 맞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면 잠시 그런 생각을 버리고 클래식 슈트의 정석을 공부하자. 영문법을 공부하듯이 말이다.

펄럭이는 정장바지나 대충 매고 나온 김칫국물 묻은 넥타이의 부끄러움을 안다면, 당신은 곧 성년이 된 아들의 슈트를 고르며 남자의 멋을 알려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길에 가까이 온 것이다.

버튼의 개수보다 V존의 길이를 보라

슈트를 살 때 보통 쓰리버튼을 살지, 투버튼을 살지 고민한다. 요즘은 쓰리버튼이 유행이라느니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귀가 솔깃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버튼 수가 몇 개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유심히 보고 골라야 하는 것은 V존의 깊이다. V존은 슈트의 칼라, 공식 패션 용어로는 ‘라펠’이 만나 V자 모양을 이루는 곳을 말한다. 정장 차림에서 셔츠, 넥타이, 슈트가 만나는 역삼각형의 지대이자 얼굴을 받치고 인상을 좌우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투버튼은 V존이 깊고 쓰리버튼은 V존이 얕다. 하지만 최근 브랜드들의 경향을 보면 이런 전통적인 도식이 무색할 정도로 V존이 얕은 투버튼이나 V존이 깊은 쓰리버튼 같은 변형된 디자인이 나온다. 그러니 V존의 깊이가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최선이다. V존의 깊이는 얼굴형이나 체형에 따라 결정한다.

20대의 사회 초년생에게는 얇은 턱선과 긴 목에 적당한 쓰리버튼 스타일의 V존이 적당하고 하이 원버튼 같은 세련된 디자인도 좋다. 30대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서서히 얼굴에 살이 붙고 배가 나오기 시작하므로 너무 좁은 라펠과 좁은 V존은 피하는 것이 좋다. 40대 중반에서 50대의 중년들에게는 원버튼 스타일이 가장 무난하며 V존의 폭은 조금 넓게 형성된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V존이 짧고 좁은 쓰리버튼은 20대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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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존이 깊고 좁은 투버튼은 30대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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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존이 깊고 넓은 투버튼은 40대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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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펠의 폭이 적당한지도 꼭 체크해야 하는데, 라펠은 보통 7.5센티미터 정도가 적당하다. 그보다 넓으면 안정적인 대신 얼굴이 촌스러워 보이고, 좁으면 얼굴이 지나치게 날렵해 보일 수 있으니 이런 점을 고려해서 선택하도록 하자.

이건희 회장은 브리오니를 입는다

슈트라는 말은 1393년경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원래 의미는 ‘세트(set)’였다. 그전까지의 남성복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튜닉(tunic, 소매가 없는 통짜로 된 헐렁한 웃옷)을 원형으로 한 것으로 봉제선이나 여밈단추가 없는 하나의 주름 잡힌 천이었다. 그러다 14세기에 와서야 드디어 체형에 맞춘 의복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슈트에는 크게 아메리칸, 브리티시, 이탈리안 스타일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각 슈트의 특징은 무엇일까?

먼저, 아메리칸 스타일은 역시나 실용성을 최우선에 둔다. 전체적인 윤곽은 편안한 박스 모양에 가깝다. 어깨 패드가 없거나 얇아서 자연스럽고 단정한 어깨 라인이 특징이다. 바지도 장식 주름 없이 일자로 재단된다. ‘아이비리그 슈트’, 혹은 ‘색 슈트(sack suit)’로도 불린다. 멋보다는 실용, 미국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런 이미지다.

아메리칸 슈트: 박시하고 어깨가 넓어 실용성이 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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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브리티시 스타일은 어깨가 높고 허리를 졸라매는 군복을 기초로 만들어진다. 아메리칸 스타일보다는 훨씬 입체적이며, 인체의 움직임을 그대로 반영한 자연스러운 라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바지는 보통 허리선이 높고, 지퍼 양쪽에 두세 개의 주름이 있다.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 재킷이나 코트 등의 앞여밈이 싱글로 된 것)나 더블 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 재킷의 앞여밈을 깊게 하고 단추를 두 줄로 달아 여미는 스타일로 한 줄은 장식용 단추인 경우가 많다), 어느 쪽이든 깊게 파인 두 개의 사이드 벤트(side vent, 입고 벗기에 편하도록 코트나 재킷의 뒷길의 양쪽 옆구리에 있는 단을 터서 만든 트임)가 특징이다. 바지는 보통 허리선이 높고, 지퍼 양쪽에 두세 개의 주름이 있다.

브리티시 슈트: 입체적이고 라인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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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탈리안 스타일은 가장 스타일리시하며 현대적이다. 이탈리안 슈트가 1950년대 이후 남성복의 개념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50년대 할리우드 스타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오늘날 이탈리안 슈트의 명성을 쌓는 기반이 되었다. 클라크 케이블, 게리 쿠퍼, 헨리 폰다, 캐리 그랜트 같은 지금 봐도 스타일이 멋진 스타들이 이탈리안 스타일의 신봉자였다. 이탈리안 스타일은 부드러운 실루엣으로 유명하다. 넓은 깃이 위 아래로 있는 ‘노치드 라펠(notched lapel)’이 특징이다. 몸의 선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며, 어깨와 힙의 비율이 대칭을 이룬다.

이탈리안 슈트: 몸의 선을 잘 살리고 가장 현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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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세 가지 중 한국 남자의 체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슈트는 어떤 것일까? 체형 조건이 서구인에 비해 불리하니 몸매를 감출 수 있는 박스형이 좋을까? 아니다. 한국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은 이탈리안 스타일이다. 이태리 남자들은 다른 서양인들에 비해 체구가 작은 편이다. 선을 중시해 몸에 붙는 이탈리안 스타일은 체구가 작을 때 오히려 더 빛이 난다. 슬림하고 날렵하며 단단한 인상을 주고, 다른 스타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도 커 보이게 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이탈리아 브랜드인 브리오니를 입는다.

슈트의 버튼을 채울지 말지도 오랜 고민 중 하나다. 채워서 입자니 답답한 것 같고, 풀자니 단정치 못한 것 같다. 버튼은 서 있을 때는 언제나 채우고 앉을 때는 풀어도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채울 때는 쓰리버튼이든 투버튼이든 단추를 모두 채워야 할까? 버튼이 세 개인 상의라면 가운데 하나만 채우는 것이 정통이다. 투버튼일 때는 위의 단추만 잠근다. 아래에 있는 단추는 없다고 봐도 좋다. 조끼를 입을 때도 제일 아래 버튼은 열어둔 채로 입는다.

앞모습뿐 아니라 뒤태에도 신경을 쓴다면 벤트의 종류에도 신경을 쓰자. 중앙 트임보다는 양쪽에 트임이 있는 날개형 벤트로 선택하는 게 좋다. 중앙 트임 벤트는 시선을 가운데로 모이게 해 길어 보이는 효과를 내며, 날개형 벤트는 힙선의 곡선을 살려주고 활동성을 높여준다. 보통 맞춤 슈트는 벤트를 열어놓지 않고 몸의 라인을 살려주기도 하니 본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자.

슈트의 색상을 고르는 방법

네이비 계열 슈트는 연령이나 체형에 관계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색상이다. 화이트 셔츠와 코디하면 깔끔하고 분명한 인상을, 블루 셔츠와 코디하면 무난한 느낌을 준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회 초년생부터 고위직 비즈니스맨까지 폭넓게 입을 수 있는 색이다.

그레이 계열의 슈트는 최근 유행하는 색깔로 네이비에 비해 지적이고 점잖은 느낌을 준다. 흔히 입는 색이지만 광택의 유무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다. 광택이 없으면 깔끔하고 중후한 느낌이지만, 광택이 있으면 젊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주장을 관철시켜야 하는 회의에서는 신뢰감과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네이비 계열이, 설득이 필요한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는 소프트한 느낌의 그레이 계열이 어울린다.

브라운은 부드럽고 세련된 멋이 담긴 색상이다. 브라운 계열의 슈트를 선택할 때는 그레이와 그린이 섞인 듯 보이는 톤이 무난하다. 그러나 브라운 계열은 어울리는 셔츠와 넥타이가 많지 않아 초보자가 소화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고 그레이나 네이비에 비해서는 실용성이 떨어진다.

네이비, 그레이, 브라운 그리고 무난한 패턴 원단의 슈트는 필수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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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블랙은 원래 예복의 이미지가 강해 일상복으로는 잘 입지 않는 색이었으나 최근에는 격식 있는 자리에서 포켓 치프(뒤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커프스 등의 액세서리를 더해 화려한 비즈니스 슈트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해외 출장에서 파티에 참석할 상황을 대비하여 블랙 슈트를 챙겨 가면 유용하다. 블랙과 함께 더욱 빛이 나는 보라색 타이는 일상생활 중엔 너무 튀지만 파티에선 적절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슈트의 전체 실루엣은 어깨가 좌우한다

슈트는 무엇보다 몸에 잘 맞아야 한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어떤 게 잘 맞는 것인지 제대로 알기란 어렵다. 몸이 편한 것을 찾자니 한없이 벙벙해지고, 꼭 맞는 것을 입으면 답답하다. 부위별로 슈트의 제대로 된 사이즈를 확인하는 법을 살펴보자.

슈트의 전체 실루엣을 좌우하는 포인트는 어깨, V존, 뒤태, 바지 라인에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깨다. 슈트의 생명은 어깨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태와 사이즈 모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어깨 폭은 머리 크기가 어떻게 보일지를 결정한다.

만일 어깨가 너무 좁으면 머리가 실제보다 더 커 보이고 어깨가 너무 넓으면 머리가 비율에 맞지 않게 작아 보인다. 또 어깨 폭이 적당히 넉넉해야 재킷 옷감이 어깨선에서 소매 아랫부분까지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또 어깨 폭이 너무 좁으면 소매 꼭대기 부분, 즉 재킷 소매가 어깨선에 맞닿아 있는 부분에 어깨 근육이 불룩하게 튀어나와서 보기에 좋지 않다.

한국 남자들은 넓은 어깨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 때문인지 옷을 살 때 유난히 본래 어깨보다 큰 사이즈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깨가 넓어지면 이어지는 암홀과 뒤판이 넓어지기 때문에 옷은 편안해지지만 멋은 점점 멀어진다.

그리고 어깨를 크게 입는다고 해도 어깨를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는 전혀 없다. 오히려 어깨가 더욱 처지고 힘이 없어 보인다.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뒤에서 보면 그 처진 모습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재킷을 입었을 때 어깨뼈에서 약 1~1.5센티미터 바깥에 어깨선이 위치하면 적절하다. 승모근이 솟아 실제보다 처져 보이는 어깨라면 기성복이라도 패드를 대주면 훨씬 보기 좋다. 좌우 대칭을 맞추는 것 또한 패드 하나로 가능하니, 한쪽 어깨가 올라가서 삐딱해 보이는 느낌이 있다면 패드로 조절해주자.

잘 맞는 슈트는 어깨와 암홀의 모든 부분이 주름 하나 없이 부드럽게 만난다. 품질이 떨어지는 슈트라면 분명 어딘가에 주름이 있다. 어깨를 볼 때 암홀을 올려보고 뒤집어보아야 한다. 재킷 가슴도 벌어지지 않고 앞과 뒤 모두 평평하게 흘러내려야 한다.

정장도 힙합 스타일처럼 허리선을 내려라

바지가 잘 맞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허리부터 구두까지 날카로운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바지를 갖고 싶다면 바지 길이는 구두 위를 살짝 덮는 정도여야 한다. 긴 바지가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한다는 건 착각이다. 평소보다 약간 짧다 싶은 바지를 입어보면 주름 라인이 훨씬 깔끔하게 떨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물론 걸을 때 양말이 보일 정도로 짧아서는 안 된다.

배가 나온 중년이라면 허리 사이즈가 특히 고민스러울 것이다. 본래 바지 허리를 잴 때는 배꼽을 중심으로 수평이 되도록 사이즈를 잰다. 그래야 가랑이와 허벅지에 여유가 생기고 천이 자연스럽게 늘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지를 너무 허리 아래로 내려 입으면 그 균형이 깨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중년들에게는 특히 허리를 내려 입으라고 권한다. 캐주얼 차림에는 엉덩이에 걸치듯 입는 힙합 바지가 계속 유행하고 있고, 최근에는 정장바지 역시도 밑위길이가 점차 짧아지는 추세다. 배가 나온 사람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허리선을 내림으로써 허리를 따라 바지 통까지 굵어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허리둘레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리가 가늘다면 바지통을 수선해서 조절해주면 한결 날렵해 보인다.

벨트는 배꼽에서 3~5센티미터 아래쪽에 고정하자. 배꼽 정 위치에 허리선이 있으면 엉덩이가 길어 보이고 배에서 가장 튀어나온 부분이 도드라져 보인다. 또 벨트의 버클이 배의 정점에 위치해서 배가 더 나와 보인다. 그러니 조금만 내려서 입으면 허리가 1인치는 줄어들어 보일 것이다.

정장바지의 커프스, 즉 접은 단은 바지 밑단을 고정함으로써 옷감이 늘어져 주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또 걸을 때 발목이 드러나지 않게 한다. 특히 얇은 옷감일수록 커프스는 바짓단을 잘 고정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유용하다. 전통적으로 커프스의 폭은 3.5~4센티미터가 적절하다. 다만 키가 작은 사람은 오히려 다리가 더욱 짧아 보이므로 바지 커프스를 피하는 게 좋다.

슈트는 딱 맞게 입어라

셔츠의 소매 길이는 슈트의 소매 길이보다 길어야 한다. 슈트를 입은 뒤 마무리 단계에서 셔츠의 소매 끝을 잡아당겨 슈트 밖으로 나오게 연출해서 입어야 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길어야 할까? 1.5센티미터 정도면 충분하다. 자연스럽게 팔을 떨어뜨린 상태에서 손목뼈와 엄지손가락이 시작되는 부분의 중간 위치면 적당하다. 이때 셔츠의 손목 깃이 절반 이상 보여서는 안 된다. 짧은 소매의 셔츠를 택해 재킷 밖으로 소맷부리가 보이지 않게 입어온 사람은, 커프스를 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커프스를 달면 자연스럽게 재킷 밖으로 셔츠의 소매가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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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들은 어깨나 바지 길이와 마찬가지로 소매를 너무 길게 입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든 넉넉한 것이 좋다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한복의 풍성함이 우리의 DNA에 새겨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트는 서양 복식이다. 몸의 라인에 맞춰서 입어야 한다. 평소 어깨도, 바지 길이도, 바지통도, 소매 길이도 ‘넉넉함’을 기준으로 선택해왔다면 다소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낌없이 줄일 것을 권한다.

맞춤복의 세계에도 등급이 있다

자기 몸에 잘 맞는 옷을 찾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능력 있는 재단사에게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슈트를 맞춰 입는 것이다. 맞춤이란 모두 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맞춤복의 세계에는 엄격한 등급이 있다.

현재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기성복 슈트는 기계 제작 슈트다. 패턴 디자이너들이 표준 체형을 연구해 시즌별로 유행과 대중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생산해낸다. 가격은 20만~100만 원까지 다양하다.

기계 제작 슈트와 수제의 절충으로 ‘반 맞춤 슈트’가 있다. 기계 제작 슈트처럼 기본적인 패턴을 가지고 작업하지만 가봉을 거쳐 고객에게 디테일을 변형하고 첨가할 수 있도록 한다. 기성복보다는 20~40퍼센트 정도 비싼 편이다.

핸드메이드로 제작되는 수제 슈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맞춤 슈트다. 물론 핸드메이드라고 해서 한 명의 재단사가 전체를 다 만드는 것은 아니다. 여러 명이 분업해 전체를 완성한다. 이 경우도 기본 패턴을 선택해 개인 체형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지만,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바느질한다는 점이 기성복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핸드메이드 수제 슈트는 재킷 소매 끝의 단추가 실제로 열릴 수 있는 ‘리얼 버튼 홀’로 되어 있다.

패션의 세계에 눈뜬 남성들이 마음속에 담아두는 최상의 맞춤 슈트는 단연코 ‘비스포크(bespoke, 주문복이나 완전한 맞춤복을 의미한다)’다. 비스포크의 전통은 재단사들이 옷 만드는 데 필요한 옷감을 직접 보유했던 17세기에 시작되었다. 고객은 직접 옷감을 골랐고, 재단사는 고객의 몸과 취향에 맞게 100퍼센트 새로운 옷을 만들었다. 기본 패턴을 미리 만들어놓고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한 사람의 몸만을 위해 창조되는 옷이 비스포크다.

차에 비교하자면 수제 슈트는 BMW나 벤츠, 비스포크는 애스턴 마틴에 속한다. BMW나 벤츠 역시 명품이지만 기성품이고 누가 타든 같은 차다. 그러나 애스턴 마틴은 수제품이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창작품이다.

유럽이나 일본만 해도 맞춤복 시장이 전체 남성복 시장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도 4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맞춤복을 지나간 시대의 향수로 치부하는 경향도 강하다. 그러나 체형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커버해주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5년 이상 젊어 보이게 해주는 것이 시대와 지역을 넘어선 맞춤복의 본질이다. 최근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맞춤 슈트를 취급하는 점포가 늘어난 것은 참 고무적인 일이다. 맞춤 슈트를 입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 남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멋을 키워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성복 쇼핑, 입어보고 또 입어보라

기성복을 살 때 백화점에 가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버리는 것이 좋다. 내 몸에 딱 맞는, 거기다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기성복을 고르다 보면 몸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게 아니라 옷에 내 몸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기성복은 ‘키 170센티미터에 60킬로그램’과 같은 표준 체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다리에 비해서 팔은 길고 목둘레는 평균보다 약간 굵은 보통 아저씨들 각각의 현실적인 신체 특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옷이다.

설사 체형적인 조건이 맞는다고 해도 난관은 또 있다. 기성복은 이상적인 자세의 인간을 기준으로 패턴을 만든다. 적당히 굽은 등, 왼쪽으로 처진 어깨 등 몸에 밴 자세는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니 ‘옷은 다 거기서 거기’라며 슈트 사는 걸 쉽게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표준과 평균이란 이름으로 내 몸의 특징을 과감히 무시하는 기성복 중에서 진정으로 어울리는 ‘내 옷’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슈트를 사기로 했다면 우선 옷장을 체크하자. 옷을 살 때는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잘 어울리고 잘 맞는 양복을 입고 가야 한다. 사이즈나 라인을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벨트에 구두까지, 그 양복과 매치할 액세서리를 제대로 갖춘 후 쇼핑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매장으로 가서는 끈기가 곧 노하우가 된다. 무식하게 들리겠지만 입어보고 또 입어보라. 점원의 눈총은 잠깐으로 그만이지만, 잘못 산 옷은 당신을 내내 불편하게 한다. 탈의실에서 앉아보고 구부려보고 팔을 높이 올려 돌려보라. 주머니에 평상시에 넣고 다니는 열쇠와 지갑을 넣어보고, 원단을 힘 있게 쥐어 주름이 얼마나 지는지도 확인한다. 거울로 실루엣을 확인할 때는 가로로 주름이 지거나 U자형으로 떨어지지 않는지 확인하자.

수선은 재킷의 경우에 팔 길이를 줄이는 것 외에는 하지 않도록 한다. 특히 어깨선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사이즈를 입어야 하고, 어떤 사이즈도 어깨선이 맞지 않는다면 그 브랜드에서는 옷을 사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기성복 수선은 최소화하라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내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내과 함께 쇼핑을 나가면 아내의 의견에, 매장 직원의 의견에 귀가 솔깃하게 된다. 매장 직원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조금만 수선하면 맞춤이 되겠다.”고 설득한다. 심한 경우 뒤트임을 바꾸고 주머니를 옮긴다. 그러나 슈트를 고를 때만큼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마인드를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된다.

기성복을 수선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특히 뒤트임이나 주머니 위치 등 구조를 변경하는 수선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32, 34, 36 등 짝수로 나오는 바지 허리를 1인치 정도 줄이거나 늘이는 선에서만 해야 한다. 허리가 35라면 36을 선택해서 줄이는 것보다는 34를 골라 허리만 살짝 늘리는 것이 좋다. 큰 사이즈를 고르면 바지통이 너무 넓어 펑퍼짐해 보이기 쉽다.

입어보고 또 입어보는 과정에서 ‘이거다!’ 하는 옷을 찾았다면 그 브랜드를 기억해두자. 이제 고통스러운 쇼핑은 끝나간다. 기성복은 브랜드별로 패턴이 다르고 각자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다. 따라서 브랜드별 특성을 알고 나면 옷 고르기가 한결 쉬워진다. A 브랜드는 소매 길이만 수선하면 된다든가, B 브랜드는 어깨선이 딱 맞는다는 식으로 특징을 기억하면 다음 쇼핑부터는 한결 쉽게 슈트를 고를 수 있다. 한 개의 브랜드라면 질릴 수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브랜드를 세 개 정도 찾아두면 좋다.

브랜드 콘셉트를 볼 수 있는 남성복 브랜드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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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세탁은 꼭 필요할 때만 하라

값비싼 원단의 슈트가 관리 소홀로 망가지는 안타까운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슈트 관리에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조언은 ‘세탁을 줄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남성들은 슈트를 너무 자주 세탁한다. 청결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잦은 드라이클리닝은 슈트의 원단을 상하게 한다. 최소한 슈트를 열 번쯤 입은 뒤에 드라이클리닝을 하는 게 좋다. 한 계절에 한두 번이면 충분하다. 슈트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선 여러 벌을 번갈아 입으며 자주 통풍을 시켜주는 것이 좋다. 세탁 대신 물을 뿌린 뒤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넥타이와 마찬가지로 다림질 역시 피할수록 좋다. 구김을 없애고 바지 주름을 잡기 위해선 스팀다리미로도 충분하다. 열 다리미는 원단을 망칠 수 있다. 바지를 벗은 뒤 주름을 살려 잘 걸어두기만 해도 좋은 원단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물론 여름용 면 슈트나 리넨 슈트는 자주 세탁해야 한다.

기성복 슈트 브랜드 특성표

각 체형별로 어울리는 기성복 슈트 브랜드가 따로 있다.

기성복 슈트 브랜드 특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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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미 집필자 소개

1995년 'KBS 스포츠뉴스'를 시작으로 'KBS 9시뉴스', '열린음악회', '스펀지', '명작 스캔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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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멋품격
남자의 멋품격 | 저자윤혜미 | cp명RHK, 알에이치코리아 도서 소개

남자의 옷차림은 또 하나의 명함이다! 과하지도 궁하지도 않은, 요란하지도 허술하지도 않은, 숨겨진 최고의 모습을 찾아주는 자기연출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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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교양의 수준, 슈트남자의 멋품격, 윤혜미, RHK,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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