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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다

아르튀르 랭보

Jean Nicolas Arthur Rimbaud
요약 테이블
출생 1854년 10월 20일
사망 1891년 11월 10일
국적 프랑스
대표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일루미나시옹》 등

프랑스 상징주의의 선구자로 해체와 파괴의 시 세계를 펼쳐 나가며 이후 초현실주의 및 현대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랭보는 폴 베를렌, 말라르메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시인으로, 조숙한 천재 시인, 저항 시인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사회제도, 관습, 종교, 의식 등 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면서, 기존의 시 작법을 비롯해 통념을 뒤엎는 시들을 발표하여 근대 자유시의 창시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르튀르 랭보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선구자이자 이후의 초현실주의 및 현대시에 랭보가 끼친 막대한 영향을 생각하면 의아하게도, 그가 시를 쓴 것은 4년이라는 극히 짧은 기간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그의 시들은 모두 15세 때의 습작부터 19세 때 절필하기까지의 것들이다. 랭보는 17세의 나이로 프랑스 시 문단에 등장하자마자 천재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19세에 문학가로서의 생활을 그만두고 유럽 각지, 서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방랑하며 행상, 군인, 탐험 등 많은 일을 전전하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샤를빌-메지에르에 있는 랭보 생가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는 1854년 10월 20일 벨기에 국경 근처 프랑스 아르덴 주의 샤를빌(오늘날의 샤를빌-메지에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레데릭 랭보는 보병 대위였으며, 어머니 비탈리 퀴프는 샤를빌 부농 집안의 딸이었다. 랭보는 이들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방랑가 기질이 있던 아버지 프레데릭은 결혼 생활 초기에도 연대를 따라 이동하면서 이따금 집에 들렀을 뿐으로, 애초에 결혼 생활 자체가 맞지 않은 사람이었다. 더구나 엄격한 성정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아내 비탈리와도 성격이 맞지 않아 불화를 겪었다. 랭보가 6세 때 결국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아이들은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랭보 위로 형 장이 있고, 아래로는 잔느 로잘리와 마리 이자벨 두 여동생이 있었다.

아이들은 독재적인 어머니 아래에서 엄격한 가톨릭 교육과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랭보는 7세 때 샤를빌에 있는 로사 학교에 진학했으며, 12세 때 샤를빌의 중등학교에 입학해 중등교육을 받았다. 학창 시절 내내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었으며, 신앙심도 독실했다. 라틴어와 고전, 역사, 수사학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많은 상을 받았고, 교장이 그에게 '수사학에 탁월한 학생'이라는 헌사를 쓴 책을 선물할 정도로 우수했다. 랭보는 어린 나이에도 라틴어 고전과 시에 큰 관심이 있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 작법을 분석하고 라틴어 시 창작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에게 심취해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읽고 암송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시의 작법과 주제를 분석하고,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본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했다.

1870년, 랭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수사학 반의 담임교사로 22세의 젊은 조르주 이장바르가 부임한 것이다. 젊고 열정적인 신출내기 선생은 어린 랭보의 시적 재능을 곧 깨달았다. 랭보는 그로부터 빅토르 위고, 테오도르 드 방빌, 장 자크 루소 등의 작품들을 접하고, 시를 쓰는 데 있어서도 많은 조언을 받았다. 그로부터 문학적, 사상적으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면서 랭보는 어머니와 신학교, 시골 생활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들에 반항심을 갖게 된다.

1870년 7월에 이장바르가 학교를 떠난 이후 랭보는 작은 낙원(고향 마을)에서 벗어나고 파리로 가서 시를 쓴다는 목적으로 1년여간 세 차례나 가출을 감행했다. 한 번은 기찻삯 부족으로 체포되어 경찰서에 수감되었는데, 이장바르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두에에서 한 달여간 시를 쓰며 지내기도 했다. 또 한 번은 파리 코뮌에 동참하고자 파리로 갔으나 곧 코뮌군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랭보가 베를렌에게 보낸 〈앉아 있는 사람들〉 육필 원고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871년 5월, 랭보는 자신이 시 세계를 설명하는 편지를 두 통 보낸다. 소위 '견자(見者, voyant)의 편지'라고 일컬어지는 것으로, 랭보가 생각하는 시인상과 시인의 임무에 대해 밝힌 글이다. 한 통은 스승인 이장바르에게, 다른 한 통은 친구이자 시인인 폴 드메니에게 보낸 것이다. 랭보는 시인이란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견자란 진정한 현실,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며, 그러려면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인습적 관념과 관계 있는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고, 시인 자신의 영혼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단지 자신의 영혼을 인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영원한 신의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때문에 시인이란 모든 현상 및 대상을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관찰할 수 있고, 그 너머에 숨겨진 다른 모습을 투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감각을 착란하고, 기괴한 영혼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랭보는 이를 실험하고자 모든 감각들과 현상들을 '파괴'하고 '해체'해 나가는데, 랭보 시학의 중심은 해체와 그로 인한 무질서이다.

17세의 랭보는 학업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시 실험을 시작했고, 그해 여름 12음절 100행으로 된 장시 〈취한 배〉를 썼다. 그리고 그가 견자로 여긴 시인 중 한 사람인 폴 베를렌에게 시 〈앉아 있는 사람들〉, 〈강탈당한 마음〉, 〈세관원들〉, 〈놀란 아이들〉 등을 보냈다. 이 시를 본 베를렌은 곧바로 '위대한 영혼이여, 우리는 당신을 원하고 있소'라는 편지를 보내며 랭보를 파리로 초청했다. 파리에서 랭보는 시인들에게 조숙한 천재로 추앙받으며 무질서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

팡탱 라투르, 〈테이블 모퉁이〉

왼쪽 제일 아래 베를렌과 랭보가 나란히 앉아 있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편 랭보와 베를렌은 뜻이 잘 맞는 동지, 시인으로서 존중하고 애정을 나누는 사이 이상의 관계로 발전했다. 베를렌은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랭보는 베를렌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베를렌의 애원에 다시 그의 곁으로 가 함께 지내기를 반복했다. 급기야 베를렌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벨기에, 런던, 브뤼셀 등을 옮겨 다니며 동거했다. 그러나 약 2년여간 이어진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악화된 경제 사정과 베를렌의 아내 문제 등으로 끊임없이 다투었다. 그리고 1873년 7월, 다툼 끝에 랭보가 떠나려 하자 술에 취한 베를렌이 랭보를 총으로 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났다.

베를렌이 그린 랭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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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랭보는 그때까지의 생활을 청산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썼다. 이후 문학에 대한 열의가 시들해졌고, 실질적으로 쓸모가 있는 직업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랭보는 평생 단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는데,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일루미나시옹》이다. 《일루미나시옹》에 실린 시들 역시 대부분 이 시기에 쓰였다고 여겨지지만, 1872년경 베를렌과 함께 지낼 때 쓴 작품들이라는 설도 있다.

1875년경부터 랭보는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베를렌이 랭보를 일컬어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나이'라고 부른 것처럼,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떠돌아다니면서 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견자가 되고자 했다고 한다. 랭보는 커피회사 감독관, 무기 중개상, 용병, 탐험가, 채석장 막일꾼 등을 하며 네덜란드, 자바, 북유럽, 독일, 이탈리아, 키프로스 등을 떠돌아다녔다. 1880년경부터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무기, 상아, 커피 매매를 하는 교역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891년 2월, 오른쪽 무릎에 종양이 생겨 프랑스 마르세유로 돌아왔고, 그해 5월 말경에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어 전신에 종양이 퍼졌고 11월 10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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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집필자 소개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고 인문 교양 및문학 분야 편집자를 거쳐 현재 출판기획자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외의 교양 도서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는 한편, 대중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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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를 움직인 100인
문학사를 움직인 100인 | 저자이한이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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