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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근대에서 현대로의 접점에 서다
E. M. 포스터
Edward Morgan Forster출생 | 1879년 0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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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0년 06월 07일 |
국적 | 영국 |
대표작 |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인도로 가는 길》 등 |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대영제국의 몰락과 영국 사회의 모순을 온건하고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며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E. M. 포스터는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비평가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접점에서 영국 전통과 외래문화의 충돌, 대영제국의 몰락과 영국 사회의 모순 및 한계, 계급 사이의 갈등을 표현했다. 동성애와 같은 파격적 소재를 다루기도 했으며, 영국 사회의 모순을 드러냈음에도 온건하고 산뜻하며 섬세한 외피로 대중과 평단 양쪽의 지지를 받은 드문 작가였다. 91세라는 긴 생애를 살면서 중년 이후에는 소설 집필을 중단하고 사회 활동에 전념하여 소설가로서는 6편의 장편소설과 몇 편의 단편을 남겼을 뿐이다. 그럼에도 헨리 제임스와 조지프 콘래드에서 D. H. 로렌스로 이어지는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의 계보에서 D. H. 로렌스가 탄생할 수 있게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는 1879년 1월 1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워드 모건 루엘린 포스터는 건축가로, 그가 두 살이 되기 전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어머니 앨리스 클라라 위첼로는 가난한 중산층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에드워드 모건 루엘린 포스터의 이모인 매리앤 손턴의 후원을 받으며 자랐다. 남편이 죽자 앨리스는 시누이들을 비롯해 매리앤 손턴과 함께 아들을 길렀다. 에드워드는 빅토리아 시대 중류층 가정에서 심성이 여린 어머니와 고모들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당대의 미덕인 성실함과 겸손함, 예의, 분별력을 배우며 자랐다. 그러면서 그는 영국 중산층의 특징 중 하나가 감정, 열정에 대한 두려움임을 깨달았다. 이런 성장 배경은 후일 그의 작품의 한 축이 된다.
8세 때 이모할머니인 매리앤 손턴이 사망하면서 조카 손자인 그에게 유산을 남겼고, 이 유산으로 포스터는 후일 작가로서 자립할 경제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11세 때 예비학교인 이스트본의 켄트하우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으며, 14세 때는 턴브리지 학교로 통학했다. 학창 시절은 끔찍했다. 내성적이고 조숙했던 그는 기숙학교에서 향수병에 시달렸으며,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중산층 아이들의 속물적인 성격과 억압적인 교사들에게 환멸을 느끼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또한 학우들에게 괴롭힘까지 당했다. 후일 그는 이때를 일컬어 가장 불행했던 시기였다고 말했으며, 영국 사립학교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19세 때 어머니와 함께 이사한 턴브리지 웰스 지역 역시 중산층들이 모여 살던 교외 지역인데, 그는 이곳을 학교와 마찬가지로 폐쇄적이고 억압적이며 속물적인 사회로 보았다. 그러면서 중산층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보이고 사회 비판적 면모를 띄게 된다. 이 턴브리지 학교는 《기나긴 여행》에 등장하는 소스턴 학교로, 턴브리지 웰스는 《천사들도 발 딛기 꺼리는 곳》, 《기나긴 여행》 등에 등장하는 소스턴 마을의 모델이 된다.
17세 때에는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에 들어가 고전을 공부했다. 포스터는 이 시기에 휴 메러디스와 친밀하게 지내면서 기독교 신앙을 버렸고, 그를 따라 4학년 때 역사를 전공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내 동아리인 '사도회(Apostle)'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버트런드 러셀,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블룸즈버리 그룹 로저 프라이, 레너드 울프 등을 만나 교류했다. 케임브리지 시절 그는 지적, 정신적으로 해방감을 느꼈으며, 사도회 그룹과 교류하면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22세 때 고전과 역사에서 우등으로 졸업시험을 통과하고, 어머니와 함께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특히 밀라노를 거쳐 피렌체에서 한 달여간 머물렀는데, 이때 머물렀던 호텔과 경험을 토대로 《전망 좋은 방》을 착상했다.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면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그 안의 내적 긴장감, 내적 자아의 해방 등을 탐구하게 되었으며, 이는 그의 소설에 있어 주요 주제가 된다. 포스터는 오랜 작가 생활 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해외를 여행하고 외국에서 체류했는데, 이런 경험들을 자신의 작품의 기초로 삼곤 했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는 목신 판이 14살의 영국 소년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통해 소년과 주변인들이 느낀 감정의 대립을 다룬 첫 단편소설 〈공포 이야기〉를 썼다.
1년여간의 여행 끝에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런던 노동자대학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다가 이듬해 다시 그리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이 시기에 휴 메러디스와 애인 사이가 되었으나 메러디스는 다른 사람과 1906년 결혼한다. 이 무렵부터 포스터는 자살 충동에 시달렸으며, 옥스퍼드 대학 유학생인 인도 청년 사이드 로스 마수드에게 동성애적 감정을 느낀다.
24세 때인 1903년, 포스터는 케임브리지 친구들과 함께 월간지 〈인디펜던트 리뷰〉를 창간하고, 에세이 〈매콜니아 상점들〉을 게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듬해 이 잡지에 단편 〈목신을 만난 이야기〉를 발표했다. 그는 잡지 편집 및 산문 게재, 케임브리지 대학 문화 강연 등을 하면서 장편소설 집필에 착수했다. 이듬해 첫 장편 《천사들도 발 딛기 꺼리는 곳》이 출간되었고, 호평을 받으며 성공리에 작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이어서 장편소설 《기나긴 여행》(1907), 《전망 좋은 방》(1908), 《하워즈 엔드》(1910), 단편집 《천국의 합승마차》(1911)를 발표했다.
1908년, 《전망 좋은 방》을 출간한 이후부터 그는 활발하게 문학 평론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와 친밀하게 지냈는데, 포스터가 그녀의 첫 소설 《출항》에 대한 서평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1910년에 출간된 《하워즈 엔드》는 포스터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그 스스로도 가장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으며, 여성판 교양소설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지성적이고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슐레겔 가의 자매들과 보수적이고 세속적인 윌콕스 가 사람들의 대립과 화해를 묘사하면서, 에드워드 시대의 사회 변화와 현대 사회에서 희생된 가치관에 대한 치유를 시도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포스터의 여타 작품들처럼 탁월한 인물 묘사, 실제적이면서 아름다운 대화, 인간의 감정과 오만, 분노, 오해, 위선이 낳을 수 있는 재앙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1912년에 인도 여행을 떠났으며, 마수드와 재회하고 인도를 주제로 한 소설을 착상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모리스》의 집필과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잠시 중단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는 적십자사의 일원으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일했으며, 〈이집션 메일〉 등의 이집트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신문 서평과 에세이 작업에 몰두했으나 그는 자신의 창작력이 고갈되었다고 느꼈다. 이에 포스터는 두 번째로 인도를 방문하여 자료 조사를 한 뒤 1924년, 15년여 만에 장편소설 《인도로 가는 길》을 펴냈다. 영국 식민 지배하에 있던 인도 갠지스 강 언덕을 배경으로, 인도인과 영국인 사이에 벌어지는 인종 대립 문제를 보여 주면서 인간 상호 간의 이해를 탐구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포스터는 20세기 위대한 소설가로 자리매김했으나 이후 더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동안 발표했던 단편들은 1928년 소설집 《영원의 순간》으로, 동성애를 다룬 《모리스》가 그의 사후인 1971년 발표되었을 뿐이다.
46세 이후로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그는 소설 비평과 이론 확립에 힘썼는데, 그의 강연을 모아 묶은 《소설의 양상》은 소설 비평론의 주요 저작으로 꼽힌다. 래드클리프 홀의 동성애 소설 《고독의 우물》,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등이 음란물 판정을 받고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을 때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항의했으며, 1920년대 후반에는 국제 펜클럽 회장을 지냈다. 1930년대 중반 파시즘이 대두되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정치 활동에 투신했다. 1946년에는 모교의 명예교수가 되어 케임브리지에서 지내며 강연했다. 또한 시민 자유를 위한 국민평의회NCCL 의장으로 영국의 자유주의 법제 확립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정치적 사상을 담은 《민주주의에 만세 이창》을 출간하기도 했다. 1951년 명예 훈위를 받았으며, 1969년에는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1964년 85세 때 뇌일혈로 쓰러진 이후 병원 생활을 반복하다가 1970년 킹스 칼리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쓰러져 6월 7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후 장편소설 《모리스》, 소설집 《다가오는 생애》, 미완성 작품 《북극의 여름》, 《비망록》 등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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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 희곡, 수필 등 문학의 여러 장르를 막론하고 세계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 100인의 작가를 소개한다. 중세의 암흑을 깬 영혼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 사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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