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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고전주의 운동을 부흥시키다
프리드리히 실러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출생 | 1759년 11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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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05년 05월 09일 |
국적 | 독일 |
대표작 | 〈군도〉, 〈돈 카를로스〉, 〈빌헬름 텔〉 등 |
괴테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고전주의 작가로, 작품마다 새로운 수법과 내면적 자유의 테마를 추구했다.
실러는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이자 사상가, 역사가이다. 〈군도〉, 〈돈 카를로스〉, 〈빌헬름 텔〉과 같은 희곡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독일 연극의 기본 레퍼토리 중 하나이며, 그의 미학 이론은 당대 독일 내외에서 고전주의 운동을 부흥시켰다.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1759년 11월 10일 독일 뷔르템베르크 마르바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실러는 군인이자 외과의사였는데, 아들 실러의 이름에 있는 귀족의 호칭 '폰'은 후일 국민 시인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귀족 칭호를 받으면서 붙은 것이다.
실러는 군인이었던 부친의 근무지 변경에 따라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슈바벤의 슈베비슈 그뮌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루트비히스부르크에서 라틴어 학교를 다녔다.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14세 때 고향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제후인 카를 오이겐 공작의 명령으로 그가 창설한 카를 사관학교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하다가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엄격한 기숙사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낀 그는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괴테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시와 희곡을 습작하기 시작했다.
19세 때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 연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으며, 이듬해 사관학교 시절 습작했던 희곡 〈군도〉를 완성하고 익명으로 자비 출판했다. 〈군도〉는 지방 영주 모어 백작의 장남 카를이 친동생 프란츠의 모략으로 집에서 쫓겨난 후 도적단의 두목이 되어 기존의 사회 질서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카를의 자유주의적 이상은 곧 부하들에 의해 훼손되고, 그는 기존 질서가 아무리 부패했다 하더라도 폭력과 무법은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함을 깨닫고 법의 처벌을 받기로 한다. 결말만 보면 기존 사회 질서를 옹호하는 듯 보이지만, 여기에서 카를이 순교자적으로 그려짐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사상을 억압하는 부패한 사회 질서를 더욱 효과적으로 비판한다.
당시는 유럽 대륙에 자유주의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절대 왕정에서 시민 사회로 이행하던 시기로, 문학은 이런 자유주의의 선봉에서 당시 지식인 및 시민 계급의 변화하는 정서를 표현하고 촉구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질풍노도 운동 역시 기존 절대 왕정 체제와 계몽주의 사상의 억압 아래 자유롭게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발산하려는 정서가 표출되면서 일어난 것이다. 자유주의적 사상을 담은 〈군도〉는 출간 이듬해 만하임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그 파격성과 급진성으로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젊은 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데, 몇몇 청년들은 이 작품을 따라서 직접 도적단을 결성할 정도였다고 한다.
실러는 이 작품으로 일약 천재 작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작품에 내포된 혁명 정신 때문에 오이겐 공작의 노여움을 샀다. 그는 공연 첫날 공작의 허가 없이 국경을 넘어 만하임 극장에 갔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2주간의 구류와 저술 금지령을 받았다. 실러는 이에 반항하여 만하임으로 도망치면서 방랑길에 올라 곤궁하고 파란 많은 삶을 살게 된다. 〈군도〉는 이런 억압 속에서도 독일 각지에서 상연되었고, 1792년에는 파리에서 상연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프랑스 정부는 실러를 프랑스 명예시민으로 위촉했다.
실러는 연이어 〈피에스코의 모반〉, 〈간계와 사랑〉을 완성하고, 만하임 극장과 1년간 전속 계약을 맺었다. '한 공화주의자의 비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피에스코의 모반〉은 16세기 제노바를 배경으로 독재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은 인간의 몰락을 그린 작품이고, 〈간계와 사랑〉은 귀족 청년과 하류 계층 소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두 작품 모두 당시 사회와 인습을 비판하고 있으며, 1784년 만하임 극장에서 상연되었다. 〈간계와 사랑〉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실러는 전속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실러는 친구 쾨르너의 도움으로 라이프치히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2년여 동안 쾨르너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시 〈환희의 송가〉각주1) , 소설 《범죄자》, 희곡 〈돈 카를로스〉 등을 집필했으며, 역사 연구를 시작했다.
희곡 〈돈 카를로스〉는 16세기 스페인 왕궁을 배경으로 한 정치적 드라마이다. 펠리페 2세와 그의 아들 돈 카를로스, 돈 카를로스의 애정을 받았지만 결국 펠리페 2세의 세 번째 부인이 되는 엘리자베트, 자유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인 포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절대 왕정 체제, 네덜란드의 독립운동과 같은 정치적 문제를 그렸다. 실러는 기존의 자유주의적 정치관을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 주며, 인물들을 보다 복잡하고 철학적으로 그려 내면서 작가로서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특히 무운시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괴테의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와 함께 이후 독일 연극을 주도하는 시극의 효시가 된다.
1787년에는 독일 문학의 중심지였던 바이마르 지역으로 갔으며, 헤르더, 빌란트, 괴테 등과 교류했다. 그해에 〈스페인 통치에 따른 네덜란드 제국의 몰락의 역사〉 등을 발표하는데, 이듬해 이 작업을 토대로 괴테의 추천을 받아 예나 대학 역사학 교수가 되었다. 이곳에서 세계사 연구의 목적, 비극 이론에 대한 강의들을 했고, 《30년 전쟁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역사학자로서도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1790년, 실러는 샤를로테 폰 렝게펠트와 결혼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두 아들과 두 딸이 태어났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러는 과로로 각혈을 시작했으며, 남은 인생을 폐결핵에 시달리면서 연구와 집필 작업을 해 나갔다. 병중에 실러는 칸트의 저술을 읽고 칸트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1793년부터 〈우미(優美)와 존엄〉,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 〈소박한 문학과 감상적인 문학에 대하여〉, 〈숭고에 관하여〉 등의 미학 논문을 집필했다. 그는 심미적 행위와 윤리적 경험과의 연관 관계를 밝히려는 시도를 했으며, 이 논문들은 후일 현대 철학과 문예 비평, 미학 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95년부터 3년간 실러는 〈호렌〉 지를 발간하고 미학 사상과 사상시들을 발표했다. 괴테 역시 이 잡지에 시들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담시(譚詩, balladen)를 쓰고, 공동으로 단시(短詩) 〈크세니엔〉 414편을 지었으며, 문예와 인생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등 실러가 죽을 때까지 우정을 유지하며 문학적, 사상적으로 교류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서한을 묶은 《괴테-실러 왕복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이끈 두 거장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실러는 괴테와의 교우를 계기로 희곡 작업을 재개했다. 30년 전쟁 중 신성로마 제국 군대의 장군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을 그린 〈발렌슈타인〉 3부작,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를 다룬 심리극 〈마리아 슈투아르트〉, 잔 다르크를 다룬 낭만주의적 비극 〈오를레앙의 처녀〉, 폭압적인 정권에서 무법과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이념을 담은 민족극 〈빌헬름 텔〉을 썼다. 후기의 작품들 역시 정치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초기 작품들보다는 정치성이 약하며, 예술, 철학, 역사에서 인간 내면의 자유에 대한 이상을 그리는 데 더욱 중점을 두었다. 이 시기에는 자유주의적 이상에 관한 성찰이 담긴 철학적 서시라 할 수 있는 〈이상과 삶〉, 〈산책〉, 〈노래의 힘〉, 〈종(鐘)의 노래〉 등의 시들도 썼다.
1802년에 신성로마 제국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실러는 희곡 〈데메트리우스〉를 미완으로 남긴 채 1805년 5월 9일 결핵으로 인한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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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프리드리히 실러 – 문학사를 움직인 100인, 이한이,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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