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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는 미국과 영국 두 나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인간 의식을 철저히 탐구하면서 심리소설, 현대소설의 기틀을 확립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생애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으며, 33세 무렵부터 영국을 정주지로 택하고 말년에는 영국으로 귀화했다. 유럽 전통과 대비되는 미국적 가치를 그려 마크 트웨인과 함께 19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양대 작가로 꼽히는 등 미국 문단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헨리 제임스는 1843년 4월 15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헨리 제임스(아들과 동명이다)는 종교 철학자였으며, 장남인 형은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이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이주민 집안으로, 할아버지 윌리엄 제임스(장손자와 동명이다)는 미국 최초의 백만장자이다. 헨리 제임스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6개월간 파리와 런던 등지를 여행한 것을 시작으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가족과 함께 제네바, 런던, 파리 등 유럽 대륙에서 보냈다. 때문에 유럽 각국 문화에 친숙했으며, 청년 시절에도 주로 유럽에서 생활한 탓에 미국인이었으나 미국에서 보낸 시간은 극히 적었다.

또한 아버지 헨리 제임스 1세는 너대니얼 호손, 랠프 월도 에머슨, 토머스 칼라일 등 당대 미국의 주요 철학자, 작가들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이런 환경은 그와 형에게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어렸을 때는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다가 16세 때 제네바에서 과학학교를 다녔고, 본에서 독일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17세 때에는 뉴포트에서 지내면서 소방수로 자원해 활동하던 중 척추 부상을 입었는데, 이 부상으로 남북전쟁 때 입영을 면제받았다. 19세 때 하버드 법과대학에 진학했으나 대학 생활은 뒤로 하고 발자크, 호손 등의 작품만 읽으며 보내다 10개월 만에 중퇴했다.

21세 때 가족과 함께 보스턴 케임브리지에 거주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콘티넨털 먼슬리〉 지에 첫 단편소설 〈실수의 비극〉을 비롯해 몇 편의 평론을 익명으로 발표했다. 그러던 중 〈애틀랜틱 먼슬리〉 지의 편집자였던 윌리엄 딘 하월스와 교분을 맺으면서 이 잡지에 본명으로 단편소설 〈어느 해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등 소설과 평론을 꾸준히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몇 편의 단편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으며, 이 시기에 이미 줄거리보다는 등장인물의 정신 활동에 초점을 맞춘 심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로부터는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 한편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이따금 미국에 들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 조지 엘리엇을 만났으며, 그녀의 작품 몇 편에 대한 평론을 〈애틀랜틱 먼슬리〉에 게재하기도 한다. 그는 엘리엇과 호손을 전범으로 삼아 꾸준히 습작을 한 끝에 28세 때 첫 장편소설 《파수꾼》을 펴낸다. 그리고 오랜 여행 경험을 토대로 여행기를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련의 여행기와 평론들에서 그는 미국인과 유럽 인의 시각 차이, 미국인으로서 미국 바깥 외국 문명과 접촉하면서 받은 내적 충돌을 보여 주었다. 소설 《로더릭 허드슨》, 기행문 《대서양 횡단 스케치》, 《열정적 순례자》 들은 이런 기반에서 탄생했다.

32세 무렵 그는 파리에 살면서 〈뉴욕 트리뷴〉의 파리 특파원 생활을 하는 한편,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에밀 졸라, 공쿠르 그리고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의 모파상과 교류했다. 특히 그는 투르게네프에게 크게 감화를 받았는데, 소설가는 '줄거리'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며, 작중 인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주인공의 인생 경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논지에 크게 공감했다. 그러면서 장편소설 《미국인》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소설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으나, 이후 《유럽인》, 《데이지 밀러》, 《여인의 초상》 등으로 이어지는, 신세계와 구세계의 문화와 가치관의 충돌, 유럽과 미국 가치관의 차이를 대조하고, 유럽인과 미국인의 전형을 창조한 작품들의 시발점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데이지 밀러》는 미국 상류층 청년 윈터본이 유럽 여행 도중 만난 자유분방한 미국인 여성 데이지 밀러와의 일화를 그린 것으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미묘한 심리 변화, 그녀를 만남으로써 벌어진 유럽과 미국, 즉 구세계와 신세계의 문화 충돌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으로 제임스는 현대 문학계의 거장으로 군림하게 되었으나 미국에서는 자국 여성을 모독하는 작품이라면서 큰 비난이 일기도 했다.

《여인의 초상》은 미국 여성 이사벨 아처가 자유와 독립적인 생활을 꿈꾸며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좌절을 겪으면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플로베르 등의 사회적 사실주의 문학으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심리적 사실주의' 분야를 개척한 작품으로, 인간 행위를 내면적인 동기에 의해 세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 구조와 의식의 흐름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이 작품은 20세기 현대소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전범으로 여겨지며,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후 헨리 제임스는 한동안 사회소설에 손을 대 사회개혁가와 혁명가를 다룬 《보스턴 사람들》, 《캐서마시마 공작부인》 등을 발표했다. 《보스턴 사람들》은 《데이지 밀러》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유럽인을 엄격하고 보수적인 보스턴 사람으로 대치시켜 개작한 작품인데, 이 작품이 실패하면서 그는 우울증을 겪는다. 이후 6여 년간 극작에 손을 댔으나 희곡에는 재능이 없었던지 제작자들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외면받아 극작을 포기하고 다시 소설로 회귀했다. 그러나 극작을 통해 그는 묘사 방식, 극적 장면 교체, 제한된 시간 안에서 긴밀하게 이루어지는 사건 진행 방식, 등장인물들은 모른 채 관객들만 아는 정보 전달 기법 등을 습득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후기의 대표작들인 《에스펀 문서》, 《나사의 회전》, 《비둘기의 날개》, 《대사들》, 《황금의 잔》 등이다.

전기의 대표작이 《여인의 초상》이라면, 후기의 대표작은 《나사의 회전》이다. 이 작품은 한적한 영국 시골 저택에서 한 가정교사가 체험한 유령 이야기인데, 가정교사의 시선에서 다른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 나가면서 모호한 암시와 복선들을 통해 독자의 심리마저 조종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부터 심리 묘사와 암시가 더욱 정교하고 치밀해지며, 제임스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둔 '인식(perception)'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이에 따라 외부 사건들 사이의 연관 관계는 더욱 줄어든다. 《비둘기의 날개》, 《대사들》, 《황금의 잔》은 제임스 스스로가 꼽은 최고의 작품이다.

한편 말년에는 20년 만에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 정경》을 비롯해 《영국 기행》, 《이탈리아 기행》 등의 기행문과 자서전 《아들과 아우의 노트》, 자기 소설에 대한 해설을 모은 《소설의 기교》, 《작가론》과 같은 비평서도 썼다. 《소설의 기교》는 이후 영미권에서 소설 이론의 명저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상아탑》, 《과거에 대한 의식》 등의 실험소설들은 완성하지 못한 채 남겨졌다.

1910년경부터 신경 쇠약을 앓기 시작했으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이 참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실망하여 이듬해 영국으로 귀화했다. 헨리 제임스의 작품들은 《데이지 밀러》와 《나사의 회전》을 제외하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했으며, 난해하기만 하다, 실생활과 괴리가 크다 등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작품 활동 초기부터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신화적 통념, 유럽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으로서 유럽인과 미국인의 전형을 구체화한 공으로, 생전에도 위대한 문학가이자 유럽과 미국 사이 대서양 횡단 문화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영국으로 귀화한 이듬해인 1916년에는 조지 5세로부터 명예 훈장을 받았다. 그해 2월 28일, 런던 첼시의 저택에서 뇌출혈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가족묘에 안장되었다. 사후에는 의식의 흐름 운동의 선구자로서, 소설의 위대한 개혁가로 추앙받았으며, 그의 소설 비평에서 현대의 소설 비평 이론의 기본적인 용어들이 도출되었다. 1976년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구역에 기념비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