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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토르발스와 스톨먼은 게이츠에 반대하는가?

카피레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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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레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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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MS)의 독재를 무너뜨릴 자비로운 혁명가." 1991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컴퓨터 네트워크 운영 체계인 리눅스(Linux)를 개발한 핀란드 헬싱키 대학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 1969~)를 가리키는 말이다. 리눅스 체계와 관련된 업종이 미국 주식시장에서 상한가를 치고 한국에서도 큰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가운데 그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2000년 세계 경제계의 주목을 받을 경영인 12명, 또 다른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1세기 세계 경제 혁명을 이끌어 나갈 인터넷 시대의 '뉴 디지털 기업인' 12명에 모두 포함되었다.각주1)

컴퓨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기록으로 벨연구소에서 데니스 리치(Dennis Ritchie)와 케네스 톰프슨(Kenneth Thompson)이 유닉스(Unix)를 개발한 건 1969년이었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바로 그해에 핀란드의 한 저널리스트 가정에서 출생했다. 리누스 토르발스의 나이 열 살 때 통계학 교수였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코모도 컴퓨터(Commodore Vic-20)를 선물했다. 그때 이후 토르발스는 늘 컴퓨터를 끼고 살았으며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 그는 헬싱키대학에 들어가서도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간 그때에 이미 "나는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라고 하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토르발스의 강한 자부심에 자극을 준 건 유닉스였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그간 마이크로소프트 운영 체계를 써왔지만 더욱 강력한 유닉스 시스템을 원했다. 당시 유닉스는 PC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값이 수천 달러에 이르렀다. 대학생 신분에 그걸 살 돈이 있을 리 없었다. PC에서 유닉스를 쓸 수는 없을까? 토르발스는 "내가 직접 만들어버리지 뭐" 라는 결심을 했고 그걸 실행에 옮겼다. 토르발스가 직접 만든 작품은 조잡했지만 자신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그게 바로 오늘날 리눅스(Linux)로 알려진 공개 유닉스 운영 체계의 맹아였다. 토르발스가 자신만의 운영 체계를 인터넷에 띄우면서부터 리눅스의 역사는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토르발스에겐 필요가 없었던 기능까지 지적하며 다양한 제안을 했고 그런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이러한 참여가 시사하듯이,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리눅스 운영 체계 코드는 비밀이 아니다. 무료로 배포하는 개방 체계다. 다른 전문가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0대 컴퓨터 마니아도 리눅스에 들어가 코드를 이모저모 살펴본 다음 토르발스에게 제안을 할 수 있다. 해커들도 리눅스를 개선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자발적인 참여자들의 쇄도 이후 토르발스는 리눅스를 유지하고 업그레이드 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는 참여자들의 각종 제안을 읽는 데만도 하루 평균 2시간, 그걸 나름대로 검증하는 데엔 하루 평균 2~3시간을 소비했다. 그의 석사 학위 논문도 리눅스에 관한 것이었다. 토르발스는 그런 식으로 리눅스 제국의 중추 신경절 역할을 해냈었다.

이제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운영 체계보다 기술적으로 더 우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리눅스 애호가들의 정열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그들의 정열은 거의 종교적이다. 그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악惡의 제국'으로 보고 리눅스를 '구세주'로 간주한다. 그들의 리눅스 제국 건설은 이윤 추구에 미친 자본주의 탐욕에 대한 도전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은 이들의 도전을 '소스 코드 공개 운동(open-source movement)'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토르발스의 생각은 그런 열성적인 '신도'들의 생각과는 좀 다르다. 그는 "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돈을 버는 것엔 개의치 않는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 체계가 불량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각주2)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적 결함이 판매를 강조하는 이윤 추구욕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업과 관련해 정치적 명분은 내세우지 않는다. 왜 힘들여 만든 걸 공짜로 주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가 내놓는 모범답안은 '인정'과 '재미'다. 남들에게서 인정을 받는 게 좋고 그렇게 일하는 게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토르발스는 처음엔 사람들이 리눅스를 다른 사람에게 파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걸 디스크에 옮기는 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1992년에 생각을 바꿔 GPL(General Public License)과 FSF(Free Software Foundation)의 이름으로 등록을 해 GPL이 저작권(copyright)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FSF가 부르는 바에 따르면 카피라이트(copyright)가 아니라 카피레프트(copyleft)이다. 토르발스는 한 푼의 커미션도 받지 않았다. 그는 그 조건으로 리눅스 시스템을 팔 수는 있으나 코드의 변화는 공개하게끔 규정했다. 나중에 토르발스의 마음이 바뀌더라도 그 자신은 이득을 취할 수 없게끔 한 것이다.

소스 코드 공개 운동'은 이미 리눅스 이전에 나온 것이다. 1984년에 FSF를 창설한 MIT 인공지능연구소 컴퓨터학자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 1953~)은 1983년에 GNU(GNU's Not Unix)라고 하는 무료 운영 체계 개발 작업에 착수했으며 나중에 리눅스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리눅스는 GNU 프로젝트의 하나일 뿐이다. 스톨먼은 1985년에 발표한 GNU 선언문을 통해 이후 카피레프트로 지칭되는 일련의 라이선스 규약을 발표했다.

"이 규약은 누구든지 이 라이선스에 동의하는 사람은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다운로드하거나 복제할 수 있고, 소스 코드를 수정하거나 분배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일한 조건은 소스 코드의 변경 사항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며, 코드를 이용한 새 소프트웨어 역시 GPL 라이선스에 따라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GPL 규약은 금세 인터넷의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정의식, 「“카피레프트 운동을 아십니까?」, 『노동일보』, 1999년 7월 20일, 7면.

스톨먼이 GNU 프로젝트를 시작한 동기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개발한 고성능 운영 체계가 한 컴퓨터 업체의 라이선스에 의해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존의 소프트웨어 저작권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각주3)

스톨먼은 컴퓨터 개발 초기의 왕성했던 상호협력 정신을 재건하자고 역설한다. 그는 1970년대 MIT에서 컴퓨터를 연구할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는 자유로웠고 연구 그룹은 모두 이를 공유했으며, 상업적 컴퓨터 회사조차도 자유 소프트웨어를 배포했고 프로그래머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정보를 나눠 가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유와 독점을 규정하는 법률에 의해 이 같은 분위기는 사라졌고 독점 소프트웨어 소유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높은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톨먼은 이 같은 독점의 장벽이야말로 자유의 구속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유 소프트웨어의 자유(free)는 공짜의 의미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말할 때의 자유라는 점을 강조했다.각주4)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나 출판업자에게 저작권이 중요한 것처럼 독자에게는 읽을 권리가 중요하다. 정보가 공유되지 않으면 미래의 사이버 사회는 열린 공동체는커녕 지금보다 더욱 폐쇄적인 불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다."
오완진, 「정보 독점 거부하는 ‘카피레프트’ 운동」, 『출판저널』, 1999년 4월 5일, 3면.

토르발스도 무료 시스템의 장점을 역설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수많은 사람의 협동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상업 시스템이 가질 수 없는 장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빌 게이츠(Bill Gates, 1955~)의 생각과는 다르다. 흔히 토르발스를 가리켜 빌 게이츠의 라이벌이라곤 하지만, 토르발스는 빌 게이츠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이츠는 1976년에 쓴 「애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Open Letter to Hobbyists)」라는 글에서 소프트웨어를 공유하는 것은 오히려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누가 아무 보상도 없이 그런 힘든 일을 하려 들겠는가? 이게 바로 게이츠가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엔 "토르발스가 있지 않은가"라는 답이 제기된 셈이다.

토르발스와 게이츠의 생각의 차이는 단지 컴퓨터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기심 대 이타심' 또는 '이기심 대 재미'의 대결 구도라고나 할까?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소스 코드 공개 운동'의 성과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다음에 이야기 할 'CCL 운동'도 바로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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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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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법과 윤리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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