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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왜 재판은 가끔 '미디어의 서커스'가 되는가?
O. J. 심슨 사건
1995년 O. J. 심슨(O. J. Simpson) 살인 사건의 재판은 거의 광기에 이른 미디어와 그 부추김을 받은 여론 앞에선 재판부조차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가 하는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미식축구 스타로 엄청난 돈을 번 흑인이 백인 아내와 그녀의 남자 친구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았으니, 이 어찌 흥미진진한 사건이 아니었으랴.
심슨 재판을 둘러싼 언론의 과열 보도 경쟁은 '미디어의 서커스'가 되었다. CNN은 588시간을 중계했고, '법정 TV'는 656시간, '엔터테인먼트 TV'는 935시간에 걸쳐 사건 관련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재판을 시작부터 끝까지 방송한 뉴스 방송사와 토크 라디오 방송사의 시청취율은 거의 두 배로 상승했다. 신문 잡지들도 똑같이 미쳐 돌아갔다. 사건 관계자들도 한탕주의 유혹에 빨려 들어갔다. 심슨은 말할 것도 없고, 검사, 재판관, 배심원, 피해자 가족, 친구들 등이 수기를 써 출간했다. 사건 직후 출판된 책이 50권이 넘었다.각주1)
배심원이 선발되어 재판의 종결까지 걸린 시간은 372일, 배심원 선발 후 호텔에 격리 당해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걸린 시간은 266일이었다. 이는 찰리 맨슨 재판에서 격리된 225일이라는 기록을 깬 것이었다. 로스앤젤레스시가 재판에 사용한 돈은 약 900만 달러였는데, 그중에서 배심원 격리에 든 돈이 300만 달러였다.각주2)
심슨 사건의 재판장인 랜스 이토(Lance A. Ito)는 재판의 진행 기간 중에 '법정에서의 카메라 추방안'을 내놓았다가 언론 자유 침해라는 TV사의 총공세에 밀려이 재판을 '미디어의 서커스'로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심슨은 재력을 총동원해 유능한 변호사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은 불리한 증거를 숨기고 증인을 매수하고, 선서를 토대로 거짓말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옥죄는 등 승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와 관련, 유일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개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심슨의 변호사들은 피살된 부인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알코올중독자 또는 마약중독자라는 점을 공개하고, 피해자의 포르노 출연 경력 등 사건과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는 사실들을 들춰냈다. 또한 법률 전문가들의 사생활도 마구 공개했는바, 담당 판사의 신경쇠약 치료 경력, 저명 변호사의 부인 학대 습관, 미모의 여성 주임 검사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재판 때문에 집에 돌아가지 못해 전 남편으로부터 친권 위양 소송을 당한 것 등이 그것이다. ······ 심슨 재판으로 호황을 누렸던 케이블TV는 또 다른 먹이를 찾는 야수 떼처럼 또 다른 사건 사냥에 나서고 있는 게 오늘날 세계 초일류국인 미국 미디어의 현주소이다."유일상, 「법정 공개와 피의자 인권, 알 권리」, 『언론중재』, 통권 58호(1996년 봄), 41~42쪽.
심슨 재판 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재판 취재의 일부를 제한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첫째, 심슨 사건의 경우처럼 증인이 사건에 관한 정보를 파는 걸 불법화했다. 둘째, 배심원이거나 배심원이었던 자가 재판 종료 90일 이내에 자신의 경험을 써서 돈을 받는 걸 경범죄로 규제했다. 셋째, 변호사와 재판 당사자들이 법정 밖에서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규제하는 '개그 오더(Gag Order)', 즉 '누설 금지 명령'이 도입되었다.각주3)
그럼에도 재판 전 홍보(prejudicial publicity)가 공정 재판에 미치는 악영향은 과대평가된 면이 있다는 걸 지적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배심원들을 언론 보도에 쉽게 놀아날 수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본 건 아니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상업적인 TV와 신문들이 세인의 관심을 끈 재판 후 배심원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그들과 인터뷰를 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 되었는데, 이런 인터뷰는 도덕적으론 문제의 소지가 있을망정 법적으론 배심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게끔 허용되고 있다.각주4)
그러나 1997년 11월, 연방 제5순회항소법원은 루이지애나주의 두 신문이 평결 심의 과정에 대한 배심원들과의 인터뷰를 제한한 원심결정을 파기해달라고 신청한 항소를 기각한 바 있다. 그 결정 내용은 기자들의 배심원들과의 인터뷰가 사법부의 권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범위에서 아주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결정에 대해 신문사 측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나라의 다른 모든 곳에서는 배심원들이 언론사와 자유롭게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심원들은 자기의 주관에 따라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고, 책도 쓰고, 잡지에 기고도 하고, 토크쇼에도 출연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재판부의 결정으로 배심원에 대한 기자의 취재 활동이 제약되고 언론의 활동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배심원들은 말할 자유가 있지만, 기자들에게는 물을 수 있는 자유조차 없게 되었다.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처사다."「미 항소법원은 배심원들의 평결심의과정에 대한 언론사의 인터뷰를 제한한 원심결정을 지지」, 『언론중재』, 통권 67호(1998년 여름),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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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O. J. 심슨 사건 – 미디어 법과 윤리,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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