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윤리 어떤 경우에 미디어 생산물의 유포를 중지시킬 수 있는가?
사전 유지 청구권
부작위 청구권사전 억제(prior restraint)는 이미 예고된 어떤 미디어 생산물로 인해 권리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측에서 법원에 그 생산물의 유포를 중지시켜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발생하는데, 그러한 요청의 권리를 한국에선 사전 유지(留止)청구권 또는 부작위(不作爲, 방해예방) 청구권이라고 한다. 법원이 부작위 청구권을 받아들일 경우 '유지(留止)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차지(差止)명령이라 하고 영 · 미에서는 금지 명령(injunction)이라고 한다.각주1)
박용상은 부작위 청구권에 대해 "사전적 구제로서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작위 청구권은 인격권 또는 기업권을 침해하는 표현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에는 그 중지를, 그러한 침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사전에 그 발표 또는 전파를 하지 말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라고 정의를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예훼손과 특히 프라이버시의 침해로 인하여 피해자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받게 되고 사후 구제 수단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므로 이들 권리의 보호에 충실하자면 이러한 사전적 구제 수단이 인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부작위 청구권은 본안 소송으로 제기할 수도 있고, 그 이전에 가처분 절차에 의해서도 실행할 수 있다. ······박용상, 『언론과 개인법익: 명예, 신용, 프라이버시 침해의 구제제도』(조선일보사, 1997), 176~177쪽.
우리의 경우에는 민사소송법의 가처분 절차에 의해 인쇄 또는 출판 및 배포 금지 등의 가처분을 구한 사례가 소수 있을 뿐 그에 대한 이론적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못한 것이 실정이었다. 그러다가 대법원은 최근에 이르러 분유 제조업체 간의 비방광고로 인하여 인격권 침해 및 영업 손실의 불법 행위가 문제된 사건에서 부작위 청구권의 근거와 성질 등에 관하여 이론적 입장을 표명하게 되었다."
대법원이 이론적 입장을 표명한 사건은 '남양유업 대 파스퇴르 분유사건(대법원 1996.4.12)'이다. 원고 남양유업 주식회사 등 기존 유가공업체는 유아용 조제분유 시장을 지배해왔는데, 분유업계의 후발주자로 출발한 피고 파스퇴르 분유 주식회사는 1990년 이 시장에 뛰어들어 판매망을 개척하기 위해 대대적인 광고 공세를 폈다. 문제가 된 일간지 광고의 내용은 원고 회사는 비식용 분유를 만드는 기계로 조제분유를 제조하고 있으며, 법령상 사용 금지된 원료 또는 화학 첨가제를 사용한다는 취지로 원고를 비방하는 것이었다.
이미 피고를 상대로 이 광고 행위의 부작위 및 그 위반 시 광고 1건에 대해 금 7,000만 원의 배상을 명하는 가처분 결정을 받았던 원고는 이 비방광고의 금지 및 합계 금 35억 2,000만 원의 지급을 구했다. 이 사건 본안 사건의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비방광고의 부작위 청구를 인용하면서 장래 위반 시에는 그에 대한 제재로서 위반 광고 1건에 대해 금 7,000만 원의 지급을 명하고, 이미 행해진 비방광고에 대한 대응 광고를 위해 필요한 비용으로서 1매체당 금 1,300만 원 합계 금 6,500만 원 및 위자료로서 금 3억 원의 지급을 명했다.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각주2)
성낙인은 사전 유지 청구권이 행사될 수 있는 요건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침해 행위의 계속성과 급박성이 있는 경우에 다른 구제 수단에 의해 피해 구제가 실효성을 기할 수 없는 경우라야 한다. 둘째, 비례의 원칙에 비추어 침해 행위에 의해 피해자가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사전 유지에 의하여 가해자가 입는 손해보다 더 큰 손해가 있어야 한다. 셋째, 공공성과 진실성에 비추어 침해 행위가 '위법성조각사유'가 없어야 한다. 넷째, 언론에 의한 사전 검열의 위헌성과 우려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결정에 의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며, 이 경우 민사소송법상의 가처분 절차에 의해 행해질 것이다.각주3)
위법성조각사유(違法性阻却事由)란 "형식적으로는 불법행위로서 범죄가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범죄행위 또는 불법행위로서의 성격이 정지되는 여러 가지 사유를 말한다."각주4) '조각'이란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자면, 위법성이 없다고 검찰이나 법원이 인정하는 경우를 뜻한다. 자주 논란이 되는 게 바로 방송 금지 가처분이다. 1994년 이후부터2003년 5월까지 방영 금지 가처분 신청의 대상 프로그램은 27건으로, 주로 문화방송 〈PD수첩〉, 〈시사매거진2580〉, 서울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이었다. 이중 10건에서 신청인의 요청이 수용되어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방영 금지되었다.각주5)
특히 종교와 관련된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의 경우엔 폭력이 따라붙곤 했다. 문화방송은 1999년 5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의 이단성 등을 폭로하는 내용의 〈PD수첩〉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만민중앙교회 측이 낸 방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일부 내용을 제외했으나 신도들의 방송사 난입으로 방송이 한때 중단되었었다.
2000년 5월 3일 문화방송은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방영 금지 가처분 제도가 헌법상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문화방송은 청구서에서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하기 전에 방영을 못하게 하도록 할 수 있는 방영 금지 가처분 제도가 규정돼 있는 민사소송법 714조 2항은 언론에 대한 사전 검열을 금지하는 헌법에 위배되며 헌법 37조 2항의 과잉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문화방송은 이어 "언론인이 양식과 소신에 따라 보도 내용을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법원의 판단에 의해 방송 내용이 결정된다면 보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치명적인 왜곡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며 언론의 사회 비리 고발 노력이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각주6)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1년 8월 30일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방영 금지 가처분 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방영 금지 가처분은 행정권에 의한 금지 처분이 아니라 사법부가 당사자 간 분쟁에 관해 결정하는 것으로서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 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각주7)
2001년 9월 3일 전국언론노조는 성명을 통해 법원의 방영 금지 가처분 명령은 "사법의 이름을 빌린 사전 검열"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인의 "소신과 양식에 따라 프로그램의 내용과 수위를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고 항상 법원의 판단에 의지해야 한다면 언론 자유는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각주8)
2015년 3월 16일 방송된 케이블TV CBS TV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에서는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을 관찰 카메라에 담아 신천지의 실체를 샅샅이 파헤치는 모습이 방영되어 충격을 주었다. 방영 전, 신천지는 법원에 이 프로그램의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기각 당했다.각주9)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