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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왜 '음란'의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운가?

음란

obscenity, 淫亂

음란(淫亂)이란 무엇인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새 우리말 큰사전』을 찾아보다 웃고 말았다. '음란하고 난잡함'이라는 정의가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동어반복(同語反覆)이 아닌가. 또 다른 사전엔 "주색에 빠짐, 성생활이 문란함"이라고 나와 있지만, 이것 역시 만족스럽지는 않다.

무어라 '음란'의 정의를 내리건 각자 막연히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이 더 정확한 답이 아닐까? 법률적으로 정확한 개념은 내로라하는 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각자 견해가 다르거니와 또 이제부터 우리가 살펴볼 내용이므로 한두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리는 건 일단 보류하기로 하자.

음란은 영어로는 obscenity고, 유사 개념으로는 외설(猥褻)이 있다. 앞서 언급한 『새 우리말 큰사전』엔 외설은 "남녀 간의 난잡하고 부정한 성행위, 또는 남의 색정(色情)을 자극하여 도발시키거나, 또는 자기의 색정을 외부에 나타내려고 하는 추악한 행위"라고 설명되어 있다.

용어상의 혼란은 미국에서도 심각한 것 같다. 미국의 언론법학자 돈 펨버(Don R. Pember)교수는 obscene을 사전에서 찾으면 'indecent, lewd, or licentious'라고 나와 있는데, licentious를 그 똑같은 사전에서 찾으면 'lewd, or lascivious'라고 나와 있으며, lascivious는 'lewd or lustful'로 나와 있으며, lustful은 'obscene or indecent'로 나와 있어, 처음에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고 푸념한다.각주1)

아무래도 국어사전이나 영영사전으론 안 될 것 같다. 전문가들의 해설을 들어보기로 하자. 한병구는 "음란(obscenity)이란 용어는 라틴어의 ob-caenum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본래 '오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상영 금지(off-the-scene)라는 의미로 사용되면서 점차 일반화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란이라는 용어는 외설pornography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그 원래 뜻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유기천은 '음란이란 용어는 독일 형법의 Unzucht의 번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구법시대에는 외설이라고 불렀다'고 언급하고 있다. 외설, 즉 pornography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의 창녀(pornoi)와 문서(graphos)의 합성어로서 원래는 '매춘부에 관해서 쓴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두 용어는 사실상 동일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음란이란 용어로 통일해서 쓰기로 한다."
한병구, 『언론과 윤리법제』 증정판(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196쪽.

김병국은 "우리 형법의 음란죄에 관한 규정은 대체로 일본법을 본보기로 한 것인데 다만 용어상으로는 일본은 외설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동의어라 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 구형법상의 용어도 외설이었고 일반적으로는 '외설'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으며 신문윤리실천요강이나 광고윤리실천요강에도 외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음란이나 음란물이라는 용어는 막연한 것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데 형법의 규정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음란이 무엇을 뜻하는지 표현하고 있지 않아 판례에 의할 수밖에 없으나 대체로 일본과 비슷하다."
김병국, 「음란과 검열」, 한병구 편, 『언론법제통론』(나남, 1990), 293-294쪽.

김일수는 "음란은 외설보다는 개념의 폭이 좁고 그 정도가 심하다"고 본다. 그는 "'외설'은 단지 미적 · 도덕적 감정을 해하는 것으로서 원초적 본능의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해방되어 있는 상태를 지칭하는데 반해, '음란'은 오로지 또는 주로 보는 사람들에게 성적 흥분을 자극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일반적인 사회적 가치 관념과 일치하는 성적 품위의 한계를 현저히 일탈한 경우를 말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란이라는 용어는 독일 형법의 Unzucht를 번역한 말인데, 구법시대에는 외설이란 용어를 대신 사용했다. 그러나 독일 학자들은 외설(Das Obszöne)과 음란을 구별하여 쓴다. 사전적 의미로도 obszön은 '수치를 모르는, 무례한, 음탕한'등의 뜻으로, 음란(unzüchtig)은 '성 윤리에 반하는, 부도덕한'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 음란은 강간과 추행의 죄에 규정된 추행과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추행'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자기 또는 타인의 성욕을 자극 · 만족시킨다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를 개념 필연적 요소로 하고 있으나, '음란'은 이러한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대상물이 일반인의 성욕을 자극 · 흥분시키기에 적합한 객관적인 인상 · 표현을 중시한다."
김일수, 『새로 쓴 형법각론』제3판(박영사, 2000), 645쪽.

그런가 하면 김택환은 "어떤 물건(또는 표현)이 '음란하다거나 포르노그라피다'라고 말을 하면 그것은 이미 도덕적인 선악의 판단의 거친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성 표현물'이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한다.

"적어도 학문적으로 판단할 때에는 이러한 도덕적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보다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음란물이나 포르노그라피라는 용어보다는 '성 표현물(sexual representation)'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성 표현물이란 어떤 도덕적 가치판단도 개입되지 않은 개념으로 이는 인간의 신체, 성기, 성행위 등을 외부적으로 표현한 일체의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 표현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성을 표현한 일체의 표현물이 포함되기 때문에 상당히 포괄적인 물건을 대상으로 고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택환, 『영상커뮤니케이션의 자유와 윤리 : 영상(film) 통제 및 심의제도에 관한 연구』(커뮤니케이션북스, 1998), 75쪽.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다만, 우리는 법적으로 '음란' 개념을 따지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표현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앞서 펨버의 푸념도 상식 차원의 개념 정의가 어려우니 법적으로 따져보는 수밖엔 없지 않겠느냐는 말로 들린다.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주로 사용되는 용어는 음란이다. 한국에서의 통설과 판례에 따른 음란 개념의 3대 기준은 ① 그 내용이 함부로 성욕을 자극 또는 흥분시키거나, ② 보통인의 정상적 수치심을 해하고, ③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대법원 1982.2.9)

김일수는 음란성에 관해 우리 판례와 학설에 나타난 기준들을 ①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② 평균인(보통인) 표준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③ 작품 전체를 평가하는 전체적 고찰 방법에 따라야 한다, ④ 법적 판단이어야 한다, ⑤ 전문가적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등과 같이 다섯 가지로 요약해 제시하고 있다.각주2)

또 김일수는 "예술의 자유도 헌법상 기본권적 가치 체계의 일부로서 최상위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 의해 제약받는 기본권"이라고 전제한 뒤, 음란물을 '형법적 음란물'과 '예술적 음란물'로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란성 정도가 낮은 외설물은 형법적 음란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만화나 주간지, 스포츠신문에 실린 글 중에서 외설적 표현이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형법적 음란물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예술적 음란물'은 아직 예술의 자유 보장 한계 안에 있으므로 형법적 음란물에서 제외해야 한다. 예술적 음란물에서 음란성은 보통 작품 전체를 위해 어떤 메시지를 담는 부분으로 쓰인다. 예술적 상상력에 의해 음란성은 여기서 예술적 미로 승화되어 있다. 이에 반해 감성적 쾌락이나 지적 쾌락이 아니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관능적 쾌락만을 주로 추구할 때, 그것은 참다운 예술 · 문학일 수 없다. 예술 · 문학에서 추구하는 쾌락은 정신적 대결이나 미적 · 지적 쾌락이기 때문이다."

음란과 관련된 문제들은 도덕과 성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 두 가지 관점 모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언론인들이나 지식인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고급한 것인 반면 성 표현의 자유는 저급한 것이라는 확신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와 관련, 언론인들도 성 표현을 추구하고자 하는 동료 언론인들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한국 음란법의 억울한 희생양이 된 마광수 교수에 대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다수 문인들이 냉소를 넘어서 혐오를 보낸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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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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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법과 윤리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미디어 법과 윤리』는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취재·보도 윤리, 언론사와 언론인 윤리, 저작권’ 등 미디어의 법과 윤리를 다루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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