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미디어 법과
윤리
왜 검찰은 가끔 언론사 압수 수색에 들어가는가?

한국의 취재원 보호권

한국의 취재원 보호권

ⓒ Microgen/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 언론기본법에 언론인의 취재원에 관한 진술거부권이 인정된 바 있다. 언론기본법 제8조는 "언론인은 그 공표 사항의 필자, 제보자 또는 그 자료의 보유자의 신원이나 공표 내용의 기초가 된 사실에 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예외 조항이 너무 많아 사실상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 조항은 한 번도 적용되지 않은 채 폐기되었다. 팽원순은 "이들 예외 조항은 국가의 형사 사법권과의 가능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지나치게 확대해서 적용된다면 취재원 보호를 위한 진술거부권 제도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각주1)

시늉일망정 악법(惡法)으로 욕을 먹었던 언론기본법이 취재원 보호권 이외에도 제1조에 '알 권리'의 보호를 법 제정의 목적으로 직접 규정했고 제6조에 '언론의 정보 청구권' 조항을 따로 설치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6조는 여러 예외 조항을 두긴 했지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공공단체는 신문, 통신의 발행인 또는 방송국의 장(長)이나 그 대리인의 요구가 있을 경우에는 공익 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던 것이다.각주2) 이는 5공화국 정권이 공격적으로 시도한 여론 조작술의 산물이었겠지만, 선의 해석을 하자면 독일법을 많이 참고한 탓에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취재원에 관한 진술거부권은 취재원 비닉권(秘匿權), 취재원 보호권이라고도 한다. 현재 한국에서 취재원 보호권은 인정되고 있는가?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선 전문 직종에 대한 업무상 비밀을 인정해주는 차원에서 기자들의 취재원 보호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우리의 경우 형사소송법 제149조(업무상 비밀과 증언 거부)와 민사소송법 제286조(증언거부권)는 변호사, 변리사, 공증인, 공인회계사, 세무사,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종교의 직에 있는 자 또는 이러한 직에 있던 자는 직무상의 비밀에 대한 증언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기자는 해당되지 않는 걸로 간주되고 있다.

임병국은 "민사소송이든 형사소송이든 막론하고 명문의 규정이 없는 기자에게는 증언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자가 증언을 거부한다거나 언론기관이 제출 명령에 응하지 아니하는 경우 그 제재 수단이 미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기자가 받게 될 불이익은 경미하기 때문에 소송법상의 증언 의무나 제출 의무가 공공연히 유린될 우려가 있다. 우리의 법제에 의하면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소환된 기일에 법정에 출석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법원은 구인을 명하거나, 결정으로서 그로 인한 소송비용의 부담을 명하고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임병국, 『언론법제와 보도』(나남, 1999), 471~472쪽.

양재규(언론중재위원회 법무상담팀장)는 취재원 공개 거부가 문제되는 영역을 네 가지로 유형화했다. 첫째, 기자가 증인으로 채택되어 취재원에 대한 증언을 요구당하는 경우다. 둘째, 기자가 수사 절차상 참고인으로 소환되어 취재원에 대한 진술을 요구당하는 경우다. 셋째, 기자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민 · 형사상 소송을 당하여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취재원을 공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다. 넷째, 수사기관에서 기자가 소유 · 소지하고 있는 취재원 관련 물적 증거를 압수 · 수색하고자 하는 경우다.각주3)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해결'이 '법적 해결'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기자의 진술 거부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사 압수 수색이다. 1997년 6~7월 압수 수색에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정부 당국이 언론 보도와 관련 기자들에게 취재원 공개를 요구하거나 자체적인 취재원 색출 작업을 벌이는 사례가 여러 건 발생했다.

『서울경제』는 1997년 5월 21일 삼성자동차가 국내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친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을 처음 보도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지검은 『서울경제』 산업부 정 모 기자에게 "삼성자동차 보고서 보도 경위에 대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가 필요하다"며 검찰에 출두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서울경제』 산업부 측은 "삼성 보고서가 실제로 존재하는데다 그 내용도 언론 보도를 통해 백일하에 드러난 상태"라며 "진정서가 접수됐다는 이유만으로 취재 윤리의 가장 원론적인 단계인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6월 29일자 『한국일보』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된 「고가군 장비 일부 낮잠」 보도가 3급 군 기밀에 해당된다며 기무사를 통해 내부 제보자 색출 작업을 벌였으며, 안기부는 7월 3일과 13일 황장엽 씨 보도와 관련 『국민일보』와 『세계일보』 편집국을 각각 방문해 해당 기자들을 상대로 보도 경위를 조사했다. 정부 당국의 그런 강수는 기자들에게 심리적 위축감을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각주4)

2003년 8월 4일 청주지방법원은 SBS 방송국 건물을 대상으로 SBS가 방영한 청와대 부속실 실장 양길승 씨의 유흥업소 출입 장면 등에 관련한 제보 비디오테이프 원본 및 제보문, 기타 취재와 관련된 녹음 등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을 시도했으나 SBS 기자 등과의 물리적 충돌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압수 수색에 찬성한 안상운 변호사는 "이 사건은 SBS가 적극적으로 취재를 한 것이 아니라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테이프를 받아 보도한 것이다. 제보자가 방송사에 테이프를 보낸 것은 공개를 전제로 한 것이며, 이미 일부 장면이 보도로 나갔다. SBS와 제보자 사이에 테이프를 비밀로 하겠다는 약속도 없어 보인다. 당사자의 동의 없는 몰래카메라 촬영은 불법적인 행위이므로 공익 목적으로 제보를 한 것인지 여부는 당사자를 조사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고 주장했다.각주5)

압수 수색에 반대한 오양호 변호사는 "압수 수색 필요 사유를 보면 해당 방송에 의해 양길승 씨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내사 사건상의 범죄 사실을 수사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되어 있는바, 이러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사실상 친고죄에 준하는 반의사불벌죄로 기본적으로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과연 이러한 개인적 법익의 침해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방송국의 건물을 수색할 수 있는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돼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고 주장했다.각주6)

2007년 7월 검찰이 월간 『신동아』가 6, 7월호에 보도한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의 출처를 확인하겠다는 이유로 동아일보사 전산실 서버에 대한 압수 수색을 시도했다. 검찰은 "후보자에 대한 흑색 선전은 선거 풍토 개선 차원에서 엄정하게 수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이 보고서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것일 수도 있는 만큼 언론사가 어떻게 이를 입수하고 보도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각주7) 이에 『동아일보』는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물리적으로 저지하고 7월 30일 3개 면에 걸쳐 '취재원 보호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7월 30일자 사설 「언론 자유 흔드는 검찰의 본보 압수 수색 시도」를 통해 "수사기관이 기사 출처를 밝혀내려고 기자들의 e메일 계정을 압수 수색하는 것은 기자가 생명처럼 여기는 취재원 보호 원칙을 짓밟는 것"이라며 "언론 자유를 심대하게 위협하는 과잉 수사로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이 사설에서 "자유언론이 취재원을 보호하지 못하면 권력의 비리 등에 관해 취재하기도, 제보를 받기도 어려워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된다"며 "검찰이 출처를 밝히려는 '최태민 보고서'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긴박한 사안도 아니"고 "정치적 논란의 대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각주8)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정윤회 '국정개입'은 사실」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이른바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사건 보도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 보도 뒤, 청와대 비서관 · 행정관 8명이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 등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면서 '취재원 보호'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해당 기사를 쓴 이 신문의 조현일 기자는 "검찰에서 두 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지만 취재원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며 "취재원 보호의 원칙을 깨지 않겠다. 취재원을 밝히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고 말했다.각주9)

이 사건과 관련, '취재원 보호법'을 만들겠다고 나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배재정은 이렇게 말했다. "언론의 자유와 직업윤리에 반해 취재원을 공개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제보자나 취재원에 대한 압수 수색을 금지하고 언론인의 증언에 대한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한다고 알려지면서 긴장했던 일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취재원 보호와 관련한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

배재정은 "추측성 기사, 개인 인격을 침해하는 기사가 범람하는 현실에 비춰 봤을 때 취재원을 무작정 보호해야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언론 생태계가 건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취재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마저 회피하거나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다. 언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개별 기자가 윤리 의식을 제고하는 것과 법이 보호막이 돼 보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각주10)

언론인의 취재원 보호권에 대해선 학자와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다. 허영은 "취재의 자유는 신문의 자유의 불가결한 내용"이라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취재원 보호권을 역설한다.

"취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주는 뉴스'만을 편집 · 보도하는 경우, 그것은 이미 신문의 기능을 상실한 output의 창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재 활동도 다른 공공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컨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취재 활동, 중대한 국익을 해치는 취재 활동, 형법에서 금하고 있는 방법으로 취재하는 행위 등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취재의 자유에는 취재원 묵비권이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취재원을 밝히지 아니할 권리는 신문의 진실 보도 · 사실 보도 및 공정 보도를 위한 불가결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취재원 묵비권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취재원의 봉쇄 효과를 가져와 진실 보도의 공적 기능을 신문이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
허영, 『헌법이론과 헌법』 신정5판(박영사, 2000), 662쪽.

반면 박형상은 "우리나라에서 무기명 기사가 횡행하게 된 연유를 추측해보면 '그간의 강압적 독재 체제하에서 언론 자유를 지키는 수단으로 기사 작성자를 숨겨 권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 자유라는 낭만적 신화에 도취된 나머지 미국의 일부 주에서 제한적으로 채택한 취재원 비닉권에 관한 순진한 오해에 기인한 것 같다. 뉴스 정보원의 보호를 위해 정보원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 취재 기자도 밝히지 않는 게 보다 원칙적인 방법이아니겠느냐는 발상인 듯하다. 나아가 이런 발상은 한국의 법체계와 전혀 다른 미국의 법적 관행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취재원 비닉권 논쟁의 상황 조건이 되는 미국식 법정모욕죄 자체가 없을뿐더러(우리 형법 제138조 법정모욕죄와 전혀 다른 내용이다) 법체계상 진술거부권 및 증언거부권이 원칙적으로 주어지고 있으므로 취재원 비닉권을 특권으로 따로 논의할 여지가 없다. 또한 취재원 비닉권이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입법 예도 전혀 아니다. 어떻게든 특권이 될 수 없는 것이며, 무기명 기사 관행과도 아무런 논의의 연관이 없다. 다만 한국 법체계 하에서는 서경원 의원 사건에 연루된 윤재걸 기자의 사례처럼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 조항에서나 취재원 비닉권이 문제될 수도 있으나 이는 개별적 특권의 차원이 아닌 국가로부터의 언론 자유라는 본질적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박형상, 「언론으로부터의 자유와 법적 대응」, 김동민 편저, 『언론법제의 이론과 현실』(한나래,1993), 204~205쪽.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박경신 교수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폐지 등 관련 법을 국제 기준에 맞춰 나간 뒤 비닉권 도입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며 "현재 한국에선 무분별한 익명 보도도 문제"라고 말했다.각주11)

이부하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헌법 제21조에는 일반 국민과 기자 간의 언론 · 출판의 자유에 대한 차이를 두고 있지 않다. 또한, 취재원 공개 거부권(비닉권)이 우리 헌법 제21조에서 바로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 기자의 취재원 비닉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헌법 조문에서 직접적인 명문 규정을 찾기는 어렵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더욱이 취재원 비닉권이 헌법상 기본권이든 법률상 권리이든 취재원 비닉권에 의거하여 형사상의 책임이나 처벌을 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체적인 소송에서는 기자의 취재원 비닉권 행사와 사법상 추구하는 진실 발견의 공익 간의 이익형량의 절차를 통해 그 인정 여부가 판단되어야지 취재원 비닉권을 법률에 규정함으로써 경직된 권리로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부하, 「기자의 취재원 공개거부권(비닉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를중심으로」, 『언론중재』, 제132호(2014년 가을), 71쪽.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출처

미디어 법과 윤리
미디어 법과 윤리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미디어 법과 윤리』는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취재·보도 윤리, 언론사와 언론인 윤리, 저작권’ 등 미디어의 법과 윤리를 다루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Daum백과] 한국의 취재원 보호권미디어 법과 윤리,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