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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수용 감독은 은퇴를 선언해야 했는가?

사전 심의제

사전 심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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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영상물은 오랜 세월 엄격한 검열을 받아왔다. 1966년 1월 27일 자율적 기구로 창립한 한국예술 · 문화윤리위원회는 약 10년간 활동 해오다가 1975년 12월 31일 법률 제2884호로 종전의 공연법(1961년 12월 30일 법률 제902호) 중 일부가 개정되면서 제25조 제3항에서 공연윤리위원회의 설치를 규정함으로써 해체되었다.각주1) 공연윤리위원회는 영상물 · 음반 검열의 총본산이었다. 그 횡포가 대단했다. 라제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혹시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라는 영화 제목을 기억하거나 들어봤는지. 만화가 이현세 씨의 인기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1986년 이장호감독이 스크린에 펼쳐낸 작품이다. 제목만 보고 '이장호 감독의 자기 이름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면 억측에 불과하다.

'공포'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영화 제목에 써서는 안 된다는 당시 공연윤리위원회(공륜)의 심의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서슬 퍼렇던 제5공화국 시절제목만 손을 댄 '외인구단'의 경우는 그나마 애교에 속했다. 같은 해 김수용 감독의 〈중광의 허튼소리〉는 공륜에 의해 13장면을 가위질 당한 만신창이로 겨우 극장에 걸렸다. 항의의 표시로 김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을 정도니 그 충격이 가히 짐작이 간다."
라제기, 「영등위 등급판정 시대착오」, 『한국일보』, 2009년 1월 31일.

당시(1986년) 공연물영상진흥협의회(공진협)는 '대중의 교란 목적을 가진 위험한 영화'라는 검열의 잣대를 들이댔다. 김수용은 이에 항의하기 위해 영화 감독직을 그만두었고, 1981년부터 연극영화과 교수로 나가면서 연을 맺었던 청주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1997년 일본에서 영화 제작 제의가 들어와 응하기도 했던 김수용은 2015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화는 수치가 아닙니다. 또 문화는 과학이 아닙니다. 일종의 과학이나 상식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창조에 의해 접근해야 합니다. 문화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문화는 새로운 것을 향해 자유롭게 발전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문화 산업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지금처럼만 이어지고 개발시키려는 정책이 어우러진다면 우리 문화 산업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문화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반드시 보장돼야 합니다."
박찬호, 「한국 문예영화의 거장, 김수용 감독을 만나다」, 『일요서울』, 제1089호(2015년 3월 16일).

1996년 6월 7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음반 사전 심의가 폐지되었다. 일률 심의는 전면 폐지되고 공연윤리위원회 직권에 의한 사후선별 심의만 상징적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음반 사전 검열은 1933년 조선총독부 경무부가 음악을 통해 조선인들의 정서를 통제할 목적으로 실시했던 것인데, 그걸 없애는 데에 63년이 걸린 것이다.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공연윤리위원회(공륜)의 영화 사전심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헌법 제21조는 국가 행정권의 언론 ·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공륜의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 상영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규정한 구영화법은 헌법상 금지된 사전 검열에 해당돼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공륜이 민간인으로 구성된 자율적인 기관이라 하더라도 영화에 대한 사전 심의 제도를 채택하고 공연법에 의해 공륜을 설치토록 해 행정권이 공륜 구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했으므로 공륜을 검열 기관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만 "청소년이 음란 · 폭력 영화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유통단계에서 효과적으로 등급을 심사하는 것은 사전 검열이 아니다"고 밝혔다.각주2)

강한섭은 "1996년 10월 4일은 한국 사회사의 기념비적 날이 되었다. 그날 헌법재판소의 어른들이 어마어마한 판결로서 대한민국과 그 국민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히셨기 때문이다. 판결의 핵심은 두 가지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학문 및 예술의 표현 수단이므로 언론에 상응하는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둘째, 이렇게 중요한 영화를 공연윤리위원회가 사전에 심의하여 자르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소식을 전해들은 영화인들이 환희에 겨워 졸도하고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마땅히 보아야 할 영화와 장면들에서 격리 당해온 국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도 좋을 일이었다. 영화인들은 딴따라에서 예술가로 격상되고 국민들은 박탈되어온 '볼 권리를'되찾았으니 말이다."
강한섭, 「이제 게임은 끝났다」, 『어떤 영화를 옹호할 것인가』(필커뮤니케이션즈, 1997), 338쪽.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1997년 3월 17일 국회는 개정 영화진흥법을 통과시켰는데, 주요 내용은 종전의 사전 심의제를 등급 심의제로 바꾸되 등급 외 영화 전용관은 불허하고, 공륜은 폐지하는 대신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를 신설하며, 이 기구로 하여금 6개월간 등급부여를 보류할 수 있게 한 것 등이었다. 그러나 등급 외 영화 상영 기관이 없다는 점과 보류 조항이 다시 문제가 되어 한동안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각주3)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는 1999년 6월 8일부터 그 명칭을 다시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 바꾸었다. 영등위는 ① 영화, ② 비디오, ③ 게임물, ④ 가요 음반, ⑤ 무대 공연 등 다섯 부문을 심의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활동을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란이 끊이질 않아 200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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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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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법과 윤리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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