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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법으로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는가?
방패법
shield law미국 언론계에선 취재원 비닉법(秘匿法) 또는 방패법(shield law)이라 불리는 법을 연방 차원에서 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다만 거의 대부분의 주들이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방패법을 만들어 주 법원에서 시행하고 있거나 판결 등의 형태로 언론인의 취재원 보호 특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州)마다 허용 정도가 달라 비일관성(inconsistency)이 가장 심각한 문제며, 또 법원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문제가 지적되었다.각주1)
연방 차원의 방패법안(federal media shield law)이 2007년 10월 16일 하원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경고에도 불구하고 398대 21이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기자는 취재원이나 취재원 관련 정보를 국가 안보 범죄에 해당하는 테러 용의자 체포 등에 직결되는 경우가 아니면 공개를 강요받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다. 또 전화 회사나 인터넷 회사도 기자의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법안 통과 뒤 "언론의 자유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안보에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 법안이 기자들에게 광범위한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기밀정보 유출에 대한 조사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권 행사 입장을 밝혀왔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상 · 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법안이 성립된다.각주2)
결국 연방 방패법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 법의 적용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누구를 '기자'로 보고 무엇을 '언론'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는 '1인 저널리즘'이 가능해진 인터넷 시대엔 딜레마다.각주3) 예컨대, 미국의 비디오 블로거인 조시 울프(Josh Wolf)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촬영한 2005년 시위 동영상 제출을 거부했다가 226일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가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라면 그렇게까지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 클레이 셔키(Clay Shirky)는 "이제 언론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자격 제한이 없어졌으니 이 새로운 현실에 맞춰 기자의 특권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각주4)
언론계의 모든 이들이 다 언론의 취재원 보호권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나오는 정보들이 선의의 내부 고발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치적 목적을 띤 '정보 흘리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컬럼비아대학 언론학과장인 니컬러스 레먼(Nicholas Lemann)은 "요즘은 그런 사례의 95%가 어떤 동기를 갖고 정보를 흘리는 경우다. 이들을 '내부 고발자'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각주5)
언론인들 가운데에도 취재원 보호를 위한 연방 입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반대론의 논거로는 ① 취재원 보호는 기자의 직업상 윤리이므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난도 감수해야 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② 어느 특정 계층의 특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전통으로 삼아온 언론인들이 그들만의 특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만들도록 요구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③ 무책임하거나 공명심이 앞선 기자가 근거도 없이 기사를 쓰고선 문제가 되면 있지도 않은 취재원을 보호한다는 식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 ④ 재판에서의 진술거부권은 의회가 사법권에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삼권분립의 원리에 위배된다 등이다.각주6)
반면 유럽은 언론의 취재원 보호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96년 3월, 언론인의 취재원 보호는 정당하다는 판결이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내려졌다. 유럽인권재판소가 3월 27일 취재원 공개를 거부한 영국 잡지 『엔지니어』의 기자 윌리엄 굿윈에게 법정모욕죄를 선고한 영국 법원의 판결은 부당하다고 파기한 것이다. 재판소는 "취재원 보호는 언론 자유의 기본적 조건 가운데 하나"라며 "이런 보호가 없다면 취재원들이 공익과 관련된 정보를 대중에 전달하는 언론을 돕는 일을 주저하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 대해 이든 화이트 국제언론인보호연맹(IFJ) 사무총장은 언론 자유를 위한 "기념비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각주7)
2000년 3월 11일 유럽 의회는 기자의 취재원 보호 권리를 인정하는 권고안을 채택, 회원국에게 시행을 요구했다. 이 권고안은 정보 제공자를 알아내기 위한 언론사 사무실 압수 수색, 기자들에 대한 도 · 감청을 언론 자유에 대한 유럽인권협약의 중대한 위반 사항으로 간주, 금지시켰다. 또 기자의 취재원 보호를 언론 자유의 개념으로 포함시킨 유럽인권법원의 1996년 판례를 각국에서 원용토록 했다.각주8)
2007년 2월 27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월간 『치체로』 압수 수색 사건에 대해 7대 1의 압도적 찬성으로 "언론사 기자에 의한 정부 기밀의 단순한 공개는 압수 수색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결정했다. 이 사건은 독일 수사 당국이 2005년 9월 이라크 내 알 카에다 지도자 알 자르카위를 다룬 기사에 독일 연방수사국(BKA)의 기밀 서류가 인용되었다는 이유로 정치 잡지 『치체로』의 편집실과 브루노 시라 기자의 집을 수색한 데서 비롯되었다. 수색 과정에서 문제의 기밀 서류가 실제로 발견돼 시라는 공무상 기밀 누설 방조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에 『치체로』의 볼프람 바이메르 편집국장은 2006년 11월 압수 수색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밝힌 결정 요지는 다음과 같다.
"『치체로』 편집실에 대한 수색과 그곳에서 발견된 문서의 압수는 언론 자유에 대한 신문사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 편집실 수색은 편집 작업에 대한 침해가 동시에 이뤄지는, 언론 자유에 대한 침해다. 수사 당국은 (편집실 압수 수색으로) 편집 원(原)자료에 접근할 가능성을 열어 놓음에 따라 언론 자유에 대한 기본권에 의해 보장된 편집 작업의 비밀과 취재원과의 신뢰 관계를 침해했다. 그 침해는 헌법적으로 정당화되지도 못했다. 하급법원은 압수 수색을 정당화하는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헌법상 보장된 취재원 보호(Informantenschutz)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송평인, 「독일-프랑스의 언론 자유 관련 사건」, 『동아일보』, 2007년 7월 30일.
기자에 의한 정부 기밀의 단순한 공개는 기밀 누설 방조 혐의를 받는 기자에 대한 압수 수색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비밀 소지자가 기자에게 정보를 넘기는 순간 이미 기밀 누설 행위는 끝났다. 이에 이어지는 기자의 공개 행위에서 방조 행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범죄행위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취재원을 찾는 것이 목적인 한 언론사에 대한 압수 수색은 헌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그러한 압수 수색은 헌법적으로 보장된 취재원 보호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2007년 5월 프랑스에서는 전직 대통령과 총리가 개입한 권력형 음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수사 판사가 주간지 『카나르앙셰네』의 편집실을 압수 수색하려다 실패했다. 토마 카쉬토 수사 판사는 『카나르앙셰네』 편집실에 진입하려다 잡지사 측이 열쇠를 제공하지 않자 열쇠공까지 불러 압수 수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반발에 밀려 약 2시간 뒤 압수 수색을 포기했고 이후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당시 카쉬토 수사 판사가 수색의 이유로 든 것은 이 잡지가 2006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개설한 것으로 추측되는 계좌가 일본에 있다"고 보도한 데 따라 이 기사에서 인용된 정보 요원 '필리프 롱도'의 비밀 보고서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카나르앙셰네』 측 변호인 장폴 레비는 공권력의 간섭 없이(without interference by public authority) 정보를 얻고 전할 자유를 규정한 유럽인권협약 10조를 들면서 "수사 판사가 법에 따라 수색할 권리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유럽 인권협약과 배치되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했다.각주9)
2008년 5월 프랑스 하원은 기자가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크게 강화한 '언론 취재원 보호법'을 통과시켰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기자가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가 크게 강화된 점이다. 법률에 "기자들의 취재원 비밀 유지는 공공의 이익과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 보호된다"고 명문화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자들은 수사 · 재판 전 과정에서 취재원을 밝히지 않아도 사법상의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다. 현재는 수사 과정에서 기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심문할 때만 취재원에 대한 묵비권이 인정된다. 만일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나 수사 판사, 검사 등의 취재원 공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자에게 3,750유로(약 6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라시다 다티 프랑스 법무부 장관은 "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취재원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수사팀 또는 재판부는 기자에게 심문하는 것 이외의 방식으로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 테러와 관련된 취재원의 경우 큰 인명 피해 등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보호 규정에서 예외로 했다.각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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