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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몰래 취재 또는 속임수에 의한 취재는 어떤 경우에 정당한가?
위장 취재
기자의 위장 취재는 미국 언론의 오랜 전통이다. 이미 1890년대에 『뉴욕월드』가 기자를 정신병자로 가장해 잠입시켜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환자들이 받는 대우를 보도한 이래로 수많은 위장 취재가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취재 기사엔 종종 퓰리처상도 주어졌다. 1971년 『워싱턴포스트』의 벤 배그디키안(Ben H. Bagdikian, 1920~)은 신문사와 펜실베이니아주 법무장관의 양해를 얻은 다음 죄수로 가장해 수개월 동안 10여 개의 주 교도소를 취재해 보도했다. 교도소장조차 그가 기자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당시 배그디키안의 계획을 승인했던 그의 상관 벤저민 브래들리(Benjamin C. Bradlee, 1921~2014)는 7년 뒤인 1979년 퓰리처상 심사위원이 되었을 때에 그해의 수상 후보인 『시카고선타임스』의 위장 취재에 의한 기사를 취재 방법의 윤리성을 문제 삼아 제외시켰다. 『시카고선타임스』는 4개월 동안 '미라지 바'라는 술집을 차려놓고 기자를 종업원으로 위장시켜 시청 공무원들의 비리를 취재 · 보도해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브래들리는 "우리 언론인들이 속임수를 밝혀내기 위해 수만 시간을 사용하는 지금 이 시대에, 신문이 속임수를 사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 기사를 수상작에서 제외시킨 것이다.각주1) 브래들리의 이런 모순에 대해 유진 굿윈(H. Eugene Goodwi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브래들리의 비밀 취재 방법에 대한 반감은 닉슨 대통령 시대에 있었던 워터 게이트 사건에서 정부의 거짓을 폭로하는 데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사건 보도에서 그의 신문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 당시 기자들이 수천 시간을 들여 관리들의 거짓을 폭로하다 보니 우리는 남을 속일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브래들리는 말한다. '신문이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취재를 하면서 어떻게 정직과 성실을 위해 싸울 수 있겠는가? 만일 경찰이 기자를 가장하여 수사를 한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장하여 취재를 하겠는가?'"유진 굿윈(H. Eugene Goodwin), 우병동 옮김, 『언론윤리의 모색』(한나래, 1995), 127쪽.
그러나 정도와 상황의 문제일 뿐 기자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하는 취재는 지금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일부는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예컨대, 좋은 식당을 소개하는 기자, 상인들의 서비스를 조사하는 소비자 담당 기자, 여행사나 여행사의 서비스를 조사하는 여행 담당 기자 등이 기자 신분을 감추는 것은 정당화된다.각주2)
그 밖의 다른 경우에도 기자 신분을 속이는 것이 용인되고 있다. 피터 벤저민슨(Peter Benjaminson)과 데이비드 앤더슨(David Anderson)은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1990)에서 "기자는 종종 고전적인 윤리 문제에 봉착한다. 그것을 했을 때도 욕을 먹고 하지 않았을 때도 욕을 먹는 경우다. 이중 거래를 하는 공직자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 독자들은 윤리 문제를 들먹여 기자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기사를 쓰지 않았을 때는 부정한 공직자가 배를 불리고 그에 따라 공중은 피해를 보게 되는데도 말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기자들이 속임수에 의한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민주 사회에서의 공중의 알아야 할 권리는 공직자들이 속임을 당하지 않아야 할 권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론적 근거 위에서 말이다. 그러나 속임수에 의한 취재는 사실이 공표되었을 때 개인이 입는 피해보다 그것이 은폐되고 있을 때 공중이 받는 피해가 더 크다고 인정될 때에 한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기자는 다른 방법으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때는 절대로 수상스러운 수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어느 쪽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에 기자들은 쉽게 부정직한 쪽을 택한다. 중요한 전제는 사회가 부패로 인해 생기는 불편으로 잃는 것보다 정확한 보도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전문 언론인들은 개인적인 윤리 문제를 이유로 독자들에게 알려야 할 정보를 보류하려 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표는 공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유진 굿윈(H. Eugene Goodwin), 우병동 옮김, 『언론윤리의 모색』(한나래, 1995),149~150쪽.
영국은 어떤가? 1994년 7월 30일 영국의 PCC(언론불만처리위원회)는 『선데이타임스』가 의회의 특권 남용에 관한 기사를 만들기 위해 속임수 취재를 한 것은 공공의 이익에 적합한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평결했다. 이 사건은 『선데이타임스』의 기자가 실업가로 위장, 두 사람의 의원에게 접근해 각각 1,000파운드(약 125만 원)씩을 건네주면서 특정 회사와 의약품에 관한 질문을 의회에서 행하도록 부탁했는데 두 의원이 이 부탁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관한 취재를 근거로 한 기사가 1994년 7월 10일자 『선데이타임스』에 게재된 후 의회는 자금 제공을 받은 그레이엄 리딕 의원과 데이비드 트레드닉 의원의 행위가 특권 남용에 해당되는가의 여부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각주3)
우리나라의 신문윤리실천요강 제2조(취재 준칙)의 첫 항이 '신분 사칭 · 위장 및 문서 반출 금지'라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이게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조(취재 준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개인 또는 단체를 접촉할 때 필요한 예의를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또는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개인을 위협하거나 괴롭혀서는 안 된다.
① (신분 사칭 · 위장 및 문서 반출 금지) 기자는 신분을 위장하거나 사칭하여 취재해서는 안 되며 문서, 자료, 컴퓨터 등에 입력된 전자정보, 사진 기타 영상물의 소유주나 관리자의 승인 없이 검색하거나 반출해서는 안 된다. 다만 공익을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와 다른 수단을 통해 취재할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정당화될 수 있다.
② (재난 등 취재) 기자는 재난이나 사고를 취재할 때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피해자의 치료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재난 및 사고의 피해자, 희생자 및 그 가족에게 적절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③ (병원 등 취재) 기자는 병원, 요양원, 보건소 등을 취재할 때 신분을 밝혀야 하며 입원실을 포함한 지역을 허가 없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또한 기자는 허가 없이 환자를 상대로 취재하거나 촬영을 해서는 안 되며 환자의 치료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
④ (전화 취재) 기자는 전화로 취재할 때 먼저 신분을 밝혀야 함을 원칙으로 하며 취재원이 취재 요청을 거절한 경우 거듭된 통화의 연속적인 반복으로 취재원을 괴롭혀서는 안된다.
⑤ (도청 및 비밀 촬영 금지) 기자는 개인의 전화 도청이나 비밀 촬영 등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가장 자주 문제가 되는 건 '몰래카메라'의 사용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언론인의 30퍼센트 정도는 몰래카메라를 사용한 취재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 김경호(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몰래카메라의 사용이 위법행위를 구성한다 하더라도 면책사유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지, 그리고 윤리적 비판으로부터 합리적으로 보호받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원칙과 기준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며 다음 5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취재 대상이나 내용이 지대한 공적 관심사이어야 한다. 둘째, 동일한 정보를 얻기 위한 대체 취재 수단이 부재한 상황이어야 한다. 셋째, 몰래카메라의 사용이 정상적인 언론 활동의 일환으로 사용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프로그램의 성격이나 목적, 마감시간의 압력, 사용된 정보원과 보도 내용의 신뢰성 등에 따라 따져볼 수 있다. 넷째, 사생활이 보호되는 사적 공간에서의 몰래카메라 사용은 경계해야 한다. 다섯째, 외주제작사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해당 방송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각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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