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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광고는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가?
상업적 표현 원칙
commercial speech doctrine광고에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허용한 일련의 판결들이 정부의 광고 규제권을 전면 부인한 건 아니었다. 연방대법원도 허위 · 기만 광고는 여전히 규제의 대상임을 인정했다. 언론도 그 정도의 규제는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항변도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광고의 자유가 언론의 자유에 근접했을망정 여전히 언론이 광고에 비해 우위를 누리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다만 '상업적 표현(commercial speech)'에서 '상업적'보다는 '표현'에 더 무게를 두는 쪽으로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누적된 판결로 이른바 '상업적 표현 원칙(commercial speech doctrine)'이라는 게 형성되었다. 이 원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수정헌법 제1조는 불법적인 활동을 위한 광고를 보호하지 않는다. 둘째, 수정헌법 제1조는 허위, 기만, 오도하는 광고를 보호하지 않는다. 셋째, 정부는 합법적인 활동을 위한 진실된 광고의 경우 다음 2가지의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에 한해 규제할 수 있다. ①광고의 규제가 직접적으로 정부의 상당한 이익을 증진시킬 때, ②규제가 국가에 의해 주장된 이익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 광범위하지 않을 때.
이런 원칙이 나오게끔 하는 데에 기여한 주요 판결은 '센트럴 허드슨 대 공공 서비스 위원회(Central Hudson Gas & Electric Corp. v. Public Service Commission)'사건(1980)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회사의 전기 사용 광고를 금지시킨 건 정당한가? 정당치 않다. 그 광고는 불법적인 활동을 위한 것도 아니고, 허위 · 기만 · 오도도 없다. 에너지 절약이라고 하는 공익을 수행하는 데에 전기 광고 금지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것이다. 다른 대안들이 있다는 게 연방대법원의 판단이었다.각주1)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규제가 최소한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최소 제한적 수단의 원칙(the least restrictive means test)'이라고 하는데, 이 원칙은 연방대법원의 1989년 판결에서 '적합성(fitness)의 원칙'으로 대체되었다.
1989년의 판결은 뉴욕주립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식기 및 용기 제조업체인 터퍼웨어(Tupperware)의 후원을 받는 상업적 파티를 개최하기로 한 데서 발단이 되었다. 학교 당국은 이러한 행사는 교육적 분위기를 유지하고 학생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학교의 목적에 위배된다고 제소했다. 이에 학생들은 언론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맞섰다. 법정은 학교 당국의 금지가 옳다는 판정을 내렸다. 학교 당국의 제재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과연 최소한의 규제 수단이었는가? 이에 대해서 법정은 규제 당국(학교)이 그걸 보여 줄 필요는 없으며 규제 당국의 원래 목적과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광고 제재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가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각주2)
1993년 3월 24일 연방대법원은 '신시내티 대 디스커버리 네트워크(Cincinnati v. Discovery Network, Inc.)'사건에서 6대 3의 다수결로 시 당국이 전단 배포기의 설치를 금지한 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디스커버리 네트워크는 시내의 공터나 보도에 배포기를 설치, 무료지와 광고용의 삐라 등을 배포해왔는데 신시내티시 당국은 "공공의 장소에서는 누구도 광고전단을 배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시켰다. 연방대법원은 "정보나 의견의 자유로운 흐름은 그것이 광고의 분야라 하더라도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으며 신시내티시 당국은 상업광고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각주3)
1993년 4월 26일 연방대법원은 '에덴필드 대 페인(Edenfield v. Fane)'사건에서 8대 1의 다수결로 공인회계사가 직접, 시민에게 본인의 이용을 호소하는 것을 막은 플로리다주 정부 당국의 금지령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주 당국은 "공인회계사의 과도한 행위를 예방하고 그 직업상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금지령이었다고 설명했으나, 연방대법원은 "주 당국의 목적은 이론상으로는 인정될 수 있으나 금지령이 그 목적한 바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증명이 없거나 미흡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부가 금지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가 해악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금지령이 이 해악을 상당한 정도로 경감시킬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4)
1995년 2월 1일 샌프란시스코 연방고등법원은 수신자의 양해 없는 일방적인 광고의 팩스 송신을 금지한 연방법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연방법은 1992년 12월부터 시행되었다. 원고 측은 "팩스 광고는 자금이 적은 중소기업들에게는 값싸고 유력한 시장 참여의 방법이며 용지대는 불과 1페이지당 약 2센트(약 17원)로 읽고 싶지 않으면 버리면 된다. 불필요한 규제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용지대는 경우에 따라서는 1매에 40센트(약 320원)까지도 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연방고등법원도 "어쨌든 영리만을 목적으로 한 송신자의 행위에 의해 소비자는 까닭도 없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각주5)
1998년 11월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은 '인텔 대 하미디(Intel Corporation v. Hamidi)'사건 판결에서 인텔에서 해고된 하미디가 인텔 종업원들에게 자신의 부당 해고를 알리는 대량 이메일을 발송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대량 이메일이 스팸이냐 아니냐, 스팸은 광고로서의 '상업적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스팸 옹호자들은 스팸이 전통적인 광고로서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 자유로운 상업적 표현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스팸에 대한 금지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헌법으로 보장된 커뮤니케이션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었다.각주6)
미국 사람들은 좀 지독한 면이 있다. 우리 같으면 상식선에서 판단할 일도 악착같이 법정으로 끌고 가 끝장을 보려고 한다. 일방적으로 팩스 광고를 보내는 걸 금지한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소송을 제기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말이 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이는 미국이 전형적인 '기업사회'라는 걸 말해준다 하겠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에 따르면, 기업사회는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돼 나와 자율적인 것이 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를 말한다.각주7)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광고가 이미 우리 사회를 식민화했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미국보다는 좀 온건한 수준이긴 하지만, 한국도 광고를 표현 자유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8년 2월 27일 결정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광고도 헌법 제21조의 언론 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선고했으며, 2008년 6월 26일엔 방송법 제32조에 근거를 두고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대행하던 방송 광고 사전 심의 제도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방송광고 사전 심의 제도를 헌법 제21조 2항이 금지하고 있는 '검열'로 본 결정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이승선에 따르면, "일반 대중에겐 순식간에 '어마어마한'일이 벌어진 것으로 비춰졌지만 광고업계와 학계는 당연한 결정이 '너무 늦었다'는 반응을 보였다."각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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