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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침해는 명예훼손과 어떻게 다른가?

프라이버시권

right of privacy
프라이버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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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프라이버시'라는 외래어가 널리 쓰이기 전엔 프라이버시권(right of privacy)을 주로 '사생활권'으로 불렀으나, 이젠 프라이버시권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라이버시권을 일본에선 내비권(內秘權), 중국에선 은사권(隱私權)이라고 부르고 있다.각주1)

우리 헌법상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된 핵심 조항은 헌법 제17조 "모 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사생활의 비밀 · 자유 불가침권)이며, 그 밖에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 제 16조 주거의 불가침, 제18조 통신비밀의 불가침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에 제정된 5공화국 헌법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보장을 규정하여 헌법상으로는 프라이버시권(사생활권)을 권리로서 인정하게 되었으나, 아직 법원에서는 프라이버시권을 별개의 권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대법원은 1969년 1월 31일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사실을 함부로 폭로, 유포할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된다고 판결해 명예훼손 규정의 확대로서 프라이버시권의 보호를 기하고자 한 판례를 남기고 있다.각주2) 권영성은 프라이버시권을 '협의설', '광의설', '최광의설'등 세 가지로 분류한다.

"프라이버시권에 관하여 제1설(협의설)은 그것을 '사생활의 평온을 침해받지 아니하고 사생활의 비밀을 함부로 공개 당하지 아니할 권리'로 이해하지만, 제2설(광의설)은 프라이버시권을 소극적으로는 '사생활을 함부로 공개 당하지 아니하고 사생활의 평온과 비밀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보장'으로 이해하나 적극적으로는 '자신에 관한 정보를 관리 · 통제할 수 있는 법적 능력'으로 이해한다. 이에 대하여 제3설(최광의설)은 프라이버시권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뿐만 아니라 주거의 불가침 · 통신의 불가침 등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파악한다. 프라이버시권을 제2설의 입장에서 이해할 경우,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곧 프라이버시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권영성, 『헌법학원론』 보정판(법문사, 2000), 423~424쪽.

그렇다면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는 어떻게 다른가? 유일상은 네 가지 차이점을 제시한다.

첫째, 사법적 보호법익으로서 사회적 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다르다. 전자는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거나 저하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를 뜻하나 후자는 사회적 평가와 상관없이 사회적 명성이나 인망 · 덕망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본인의 의사와 처벌과의 관계가 다르다. 명예는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사생활권 침해의 여부는 본인의 의사와 승낙 여부에 따라 불법행위의 성립이 좌우된다.

셋째, 진실성의 증명이 사법적 책임의 관건이 되는가 아닌가 하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사실의 적시(摘示)가 공공의 이해와 관련하여 공익을 도모하는 것일 때, 진실성 증명이 있으면 위법성이 조각되어 면책되나, 후자는 진실성 증명과 상관없이 침해의 정도가 문제된다.

넷째, 법적 장치가 있고 없음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민 · 형사상 충분히 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후자는 헌법 존중적 차원에서는 불법이나 형법상으로는 비밀의 침해나 업무상 비밀 누설의 경우에만 불법행위를 구성할 뿐이며, 그 밖에도 사생활의 평온을 무수히 해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각주3)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된 법은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널려져 있어 독립적인 프라이버시 보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존 법 가운데 소극적이고 좁은 의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된 걸로 볼 수 있는 법으로는 형법엔 제316조(비밀 침해)와 제319조(주거침입) 등이 있으며 경범죄 처벌법엔 제1조 1호(빈집 등에의 잠입), 24호(불안감 조성), 49호(무단 침입), 53호(장난 전화 등) 등이 있다.

1993년 12월 27일에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도 있다. 이 법은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제한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절차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통신 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함을 목적"(제1조)으로 제정되었지만, 범죄 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제5조), 국가 안보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제7조)를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제8조에는 법원의 허가 없이 48시간 동안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안기부 등 정보 수사기관의 활동 영역을 상당히 넓혀 주고 있다.각주4)

2001년 12월 29일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은 검사장의 승인만으로, 긴급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사후 승인으로도 통신 일시, 발 · 착신 통신번호, 통신 회수 등 '통신 사실 확인 자료'를 전기통신 사업자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 반발해, 2005년 5월 통신 사실 확인 자료 제공을 요청할 경우에도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통신비밀보호법이 개정되었다.각주5) 국정원은 도청 장비가 폐기된 후 휴대폰 감청이 불가능하여 범죄 수사에 제약이 많다고 계속 주장했는데, 이런 요청을 반영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2008년 10월 상정됨으로써 뜨거운 논란을 빚고 있다.각주6)

다른 사람의 인터넷 이메일을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읽으면 어떻게 될까?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처벌된다. 최초의 적용 사례를 보자. 2001년 1월 5일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인터넷에서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이용, 타인의 이메일을 몰래 읽은 홍 모 씨(24 · K대 의대 4년)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홍 씨는 2000년 10월 초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장 모 씨(22 · 여 · Y대 4년)의 이메일 계정에 침입해 장 씨 친구들이 보낸 편지 7통을 몰래 읽은 뒤 장 씨의 이메일 계정을 아예 지워버렸다. 장 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인터넷 접속 경로를 추적해 홍 씨를 붙잡았다.각주7)

그러나 공익을 위한 언론 보도의 경우엔 달리 볼 수 있다. 2006년 8월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득환 부장판사)는 '안기부 X파일'내용을 보도한 혐의로(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불구속 기소된 MBC 이상호 기자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이 씨의 보도 행위는 공적 관심사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정당 행위로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통신 비밀'과 '언론 자유'법리가 직접 충돌한 사안에 대한 판결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 '안기부 X파일'은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이 1997년 3회에 걸쳐 서울의 호텔 일식집 등에서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정치권 동향 및 대권 후보들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등에 대하여 논의한 대화를 도청한 것이다.

항소심은 2006년 11월 23일 원심과 다르게 이상호 기자의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대화의 내용이 공익을 위해 부득이하게 보도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고 평가하기엔 부족하고,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이 있었다고 평가하기에도 부족하며, 보도의 긴급성 사유도 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각주8)

신문윤리실천요강 제12조(사생활 보호)는 "언론인은 공익을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도 · 평론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4개 항을 제시하고 있다. ① (사생활 영역 침해 금지) 기자는 개인의 주거 등 사생활 영역에 허락 없이 침해해서는 안 된다. ② (전자 개인정보 무단 검색 등 금지) 기자는 컴퓨터 등 전자 통신기에 입력된 개인정보를 소유주나 관리자의 승인 없이 검색하거나 출력해서는 안 된다. ③ (사생활 등의 사진 촬영 및 보도 금지) 기자는 개인의 사생활, 사유물, 개인에 속한 기타 목적물을 동의 없이 촬영하거나 취재 보도해서는 안 된다. 다만 공인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 ④ (공인의 사생활 보도) 언론인은 공인의 사생활을 보도 · 평론하는 때에도 절제를 잃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시대엔 프라이버시 권리와 노출의 위험에 대해 얼마나 잘 인지하고 행동 요령을 숙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자유로움에서 차이가 벌어지는 이른바 '프라이버시 격차(privacy divide)'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각주9) 특히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개인 신상 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information self-determination)이 얼마나 보장되는가가 프라이버시 보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각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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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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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법과 윤리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미디어 법과 윤리』는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취재·보도 윤리, 언론사와 언론인 윤리, 저작권’ 등 미디어의 법과 윤리를 다루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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