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건축으로 만
나는 100
0년 로마

카타콤베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부활을 기다리며 잠자는 곳
요약 테이블
시대 로마제국 후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 조직을 타파하기 위해 공무원이나 군대 조직에 침투한 기독교 신자들에 대해 일제 검거령을 내렸다. 서부황제 근위대에 세바스티아누스라는 젊은 장교가 있었는데,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서기 298년 사형대에 올라 동료 근위대 장교들이 쏘는 화살을 온몸에 맞고 쓰러졌다. 그의 유해는 비아 아피아에 있는 체칠리아 메텔라의 묘소 근처 지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후에 그는 성인으로 추서되어 이탈리아어로 산 세바스티아노(San Sebastiano)라 불렸다.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의 산 세바스티아노의 모습

ⓒ 21세기북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의 무덤이 있는 지역은 화산재가 축적되어 형성된 곳으로, 지하에는 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폿졸라나가 풍부했고, 폿졸라나를 채취하기 위해 파놓은 굴이나 웅덩이가 많던 곳이었다. 이곳을 그리스어로는 ‘kata kymbas’라고 불렀는데, ‘kata’는 영어의 at에 해당하는 전치사이고 ‘kymbas’는 ‘움푹 파인 땅’, 즉 ‘돌을 채취해내고 움푹 파인 곳’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kaka kymbas’는 ‘땅이 움푹 파여져 있는 곳에’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지하 공동묘지를 뜻하는 카타콤바(catacomba)라는 표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이탈리아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복수형인 ‘카타콤베(catacombe)’를 쓰고 있다. ‘카타콤베’는 원래 현재의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의 지하에 있는 묘소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2세기에 접어들면서, 로마에서는 동방의 종교와 유대인들의 관습과 기독교의 영향으로 시체를 화장하는 풍습에서 매장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로마 주변에는 공화정 시대부터 이미 별의별 종류의 묘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공동묘지를 만들 만한 장소가 더 이상 없었다. 그리하여 지하에 공동묘지를 만들어 시체를 매장하는 방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로마를 비롯해 이탈리아와 북부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에 카타콤베가 만들어졌다. 카타콤베는 시체를 매장할 작은 구덩이들이 갱도를 따라 층층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갱도들이 여러 층으로 이루어지면서 점차 그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지하에 ‘네크로폴리스’가 건설되기에 이르렀다.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란 그리스어로 ‘죽음(necros)’과 ‘도시(polis)’가 합성된 말로,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뜻인데, 다름 아닌 공동묘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카타콤베 내부

시신을 매장할 작은 구덩이들이 갱도를 따라 층층으로 만들어졌다.

ⓒ 21세기북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죽음에 대한 개념이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공동묘지를 코이메테리움(coementerium)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잠자는 곳’이란 뜻의 그리스어 코이메테리온(koimeterion)에서 유래한다. ‘공동묘지’를 이탈리아에서는 cimitero라고 하고, 영어에서는 cemetery라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공동묘지를 부활의 의미를 담아서 ‘잠자는 곳’이라고 하자, 이교도들도 덩달아서 공동묘지를 ‘잠자는 곳’이란 뜻의 라틴어 ‘도르미토리움(dormitorium)’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기숙사를 뜻하는 영어의 dormitory도 ‘잠자는 곳’이란 뜻이다.

서기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로마의 ‘네크로폴리스’가 기독교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간 이래로, 후세 기독교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무덤에 가능하면 가까이 묻히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카타콤베는 더욱더 크게 확장되었다. 5세기 말부터 카타콤베는 공동묘지로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곳에 묻힌 순교자들을 위한 예배는 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 후 순교자들의 유골은 로마 성내의 여러 성당이나 다른 도시로 옮겨졌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카타콤베에 숨어서 집회를 가졌다고 전해지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로마에서 현재까지 발굴된 카타콤베는 70여 개나 된다. 이 카타콤베들은 로마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거미줄처럼 얽힌 갱도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100킬로미터가 넘는다. 현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비아 아피아에 있는 산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와 성 칼리스투스의 카타콤베와 그 부근에 있는 도미틸라의 카타콤베 등이다.

무언의 메시지

이집트나 에트루리아의 무덤에서 고대인들의 종교와 사상과 예술을 접할 수 있듯이, 카타콤베에서도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을 엿보게 해주는 예술을 접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의 예술이란 1세기부터 6세기까지의 예술을 말하는데, 근본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묘소를 장식하는 관습은 지중해 연안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지하 묘소에서 보이는 예술은 서사적이거나 신화적이다. 역사적 에피소드 또는 종교의식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림이나 조각, 상징물 등이 주류를 이룬다.

카타콤베의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카타콤베의 벽화나 조각, 석판 또는 벽면에 새겨 넣은 형상들과 낙서를 보면 모두 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부활과 관련된 주제가 많다. 그중에는 이교도들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기독교화 한 것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카타콤베의 석관에서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은 선한 목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양을 어깨에 메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을 그리스도로 각색한 것이다. 또 이교도들은 공작새를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데 사용했는데, 초기 기독교 신자들 역시 공작을 신앙의 상징물로 받아들여 깊은 의미를 부여해, 공작새는 단순히 영원한 삶이 아니라 ‘영혼의 영원한 삶’을 상징하게 되었다. 한편 이도교 가운데 내세관이 있던 사람들은 저승의 삶을 어둠침침한 그늘과 비밀과 신비의 구름에 휩싸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교도의 예술에서는 죽음이란 고통과 슬픔, 그 자체였다. 반면에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죽음은 더 이상 음침하고 슬픈 것이 아니었다.

카타콤베에는 닻이나 물고기처럼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는 표시들이 있다. 닻은 위험한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도착하여 정박할 때 쓰인다. 따라서 안정과 안전, 그리고 희망을 의미한다. 닻을 거꾸로 그리면 그리스 알파벳의 타우(T)가 되는데, 이는 십자가와 비슷하다. 따라서 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이라는 안전한 항구에 다다르는 것을 뜻했던 것이다. 또한 물고기는 기독교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상징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다. 물고기는 그리스어로 ΙΧΘΥΣ인데, 이것을 라틴식 표기로 옮기면 ICHTHYS가 된다. 이 말은 공교롭게도 Iesus(예수) CHristos(그리스도) THeou(신의) Yios(아들) Soter(구원자)의 첫 글자를 모은 것도 된다. 이 표현은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고백을 함축한 것으로, 비문(碑文)이나 낙서에서도 종종 보이는데, 초기 기독교인들의 무언의 기도를 듣게 해준다.

기독교도의 상징 물고기와 그리스도의 상징인 X와 P를 겹친 무늬

그리스 문자 X와 P는 라틴문자로는 CH와 R이다. 즉 Christos(크리스토스, 그리스도)를 뜻한다.

ⓒ 21세기북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카타콤베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를 보면, 몇 가지 제한된 색깔만을 쓰고 있으며, 붓놀림은 간단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어떻게 보면 1800년대 말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차이가 있다면 인상파 그림은 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흐린 경향이 있지만, 카타콤베의 그림에서는 대상이 명확하다.

양을 어깨에 메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을 그리스도로 각색했다

ⓒ 21세기북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건축이나 예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카타콤베에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무덤을 만들고 또 그것을 장식하면서, 죽은 자들이 다시 일어설 날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는’ 어두운 공간을 신앙의 빛으로 밝히려고 한 흔적은 뚜렷하다.

카타콤베의 예배소

ⓒ 21세기북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카타콤베에서는 말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이곳 분위기 자체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타콤베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또 겉모습에 혼을 잃고 살아가는 병든 현대인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 메시지는 소리가 없다. 그러나 분명하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정태남 집필자 소개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도이, 로마대학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등 ..펼쳐보기

출처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 저자정태남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의 건국 이야기가 깃든 팔라티노 언덕의 로물루스의 집부터 기원후 4세기 초반 로마제국의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이전하기 직전에 세워지는 콘스탄티누스..펼쳐보기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카타콤베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정태남, 21세기북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