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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건축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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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포룸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새 정치의 정통성을 홍보하는 '문화센터'
요약 테이블
시대 로마제국 전기

“오, 위대한 마르스 신이여, 이 가슴은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나이다. 내게 더욱더 큰 힘을 내려 주소서. 내가 저 원수들을 무찌르면 당신에게 신전을 지어 바치리다.”

기원전 42년, 21세의 젊은 옥타비우스는 전투에 임하기에 앞서 군신 마르스 앞에서 이렇게 맹세했다. 그는 안토니우스와 연합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군대를 마케도니아의 필리피에서 격파했는데, 이 전투에서 패배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자살하고 말았다.

최고의 홍보 매체, 건축

“나는 벽돌로 된 로마를 물려받고 대리석으로 된 로마를 만들었노라.” 아우구스투스가 임종할 때 자신의 업적을 뒤돌아보며 이와 같이 말했다고 수에토니우스는 기록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말이 과장이 적당히 섞인 서사적인 표현일 수는 있지만 허풍이나 자화자찬만은 아니었다. 건축사(建築史)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말은 공화정 시대의 수수하고 근엄한 건축에서 제정 시대의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공화정 시대가 끝나고 제정 시대에 접어들면서 로마에는 특히 외적인 변화가 많았다. 즉, 황제들은 각자 자신의 치세를 웅대한 건축물을 통해서 남겼는데 당시 건축물만큼 자신의 업적을 더 잘 홍보할 수 있는 매체는 없었던 것이다.

비아 데이 포리 임페리알리(Via dei Fori Imperiali)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그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길을 따라 콜로세움 쪽으로 향할 때, 왼쪽에 먼저 트라야누스 황제, 그다음에는 아우구스투스, 그다음에는 네르바 황제의 동상이 보인다. 뭇솔리니는 포룸 지역 유적들의 상당 부분을 흙으로 덮고 대로를 만들면서 미안한 듯 그 위에 황제들의 동상을 세웠다. 즉 동상이 있는 곳에 각 황제들의 포룸의 유적이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포룸 앞에 세워진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을 보면, 그의 얼굴은 갸름하고 젊다. 그는 항상 젊은 모습으로만 등장하는 아폴로 신처럼, 나이든 자신의 모습을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인상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선하기만 하다. 아우구스투스는 바로 그 점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홍보하는데 치밀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오후의 태양빛이 그의 얼굴을 옆으로 비칠 때면 그의 눈빛은 매섭고 날카롭게 빛나는 듯하다.

아우구스투스 동상

젊고 갸름한 얼굴이지만 눈빛이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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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이미지로는 이미지가 되지 않는다. 홍보도 여러 번, 또 집중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는 것처럼, 아우구스투스는 여러 곳에서 집중적으로 자신을 홍보했다. 그 당시 최고의 홍보매체는 건축물과 기념비였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존의 포룸 로마눔 안에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기념비를 여러 곳에 세웠는데, 그 예로 해상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사투르누스 신전에는 바다의 신 트리톤의 조각을 덧붙였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신전 옆에는 악티움과 파르티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개선문을 세웠는가 하면, 로스트라 연단 옆에는 자신의 기마상을 세우기도 했다. 또 곳곳에 자기가 베누스 여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성한 가계의 피를 이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이 알리려고 했다. 그러니까 포룸 로마눔은 새 왕조의 선전장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홍보성 건축물과 기념비가 너무 많이 세워지자, 포룸 로마눔은 원래의 기능인 정치 · 경제의 중심지로서의 성격을 잃고 있었다.

고전적인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건축

대대적인 ‘홍보 전략’을 실행하는 데 기존의 포룸 로마눔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바로 동쪽에 있는 퀴리날레와 에스퀼리노 언덕 사이, 그리고 서민들이 몰려 사는 수부라(Subura)와 경계선을 이루는 부분까지의 대지를 구입하여 새로운 포룸을 세웠다. 그는 이 포룸을 건설하기 위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랬던 것처럼 전리품으로 기존의 주택지를 구입하여 터를 닦은 후, 기원전 23년에 포룸 율리움과 비슷한 모양의 새로운 포룸을 착공하여 기원전 2년에 완공했다. 이 포룸에서 중심이 되는 건축물은 ‘복수의 신 마르스’에게 바쳐진 거대한 신전이다. 이로서 아우구스투스는 40년 전 군신 마르스 앞에서 한 맹세를 지키게 되었다.

마르스 신전의 기둥

그 높이는 자그마치 15미터나 된다. 이 신전은 아우구스투스 포룸의 중심이 되는 건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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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포룸은 가로 85미터, 세로 125미터로 그 면적이 1헥타르가 넘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사이의 긴밀한 연계성을 강조하듯이 포룸 율리움과 정확히 직각을 이루며 맞붙어 있다. 이 포룸의 광장 양쪽은 기둥들이 늘어선 회랑 형태로 되어 있었으며, 광장과 수부라의 경계 부분에 ‘복수의 군신 마르스’ 신전이 담벼락에 바짝 붙어 세워져 있었는데,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 포룸의 내부 분위기를 완전히 압도했고, 신전의 정면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포룸 안의 베누스 신전과 매우 흡사했다.

아우구스투스 포룸과 주변의 포룸들

1. 포룸 로마눔, 2. 율리우스 카이사르 포룸, 3. 아우구스투스 포룸, 4. 네르바 포룸, 5. 트라야누스 포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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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시대 건축의 특징은 대략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공화정 마지막 2세기 동안에 풍미했던 건축 양식, 건축 재료, 건축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이탈리아 반도 자체 내에서 생성된 양식과 헬레니즘의 영향이 뒤섞인 것이었다. 둘째는 기념비 건축에서 대리석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대리석을 사용함으로써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건축은 고전적인 취향이 강해졌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우구스투스 포룸이다.

현재 이 유적을 보면 먼저 복수의 군신 마르스 신전의 입구 계단과 세 개의 원기둥이 눈에 띄고, 그 뒤에 페페리노라고 하는 커다란 돌 블록을 쌓아서 세운 높은 돌담벽이 포룸과 수부라 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벽은 신전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삼각형으로 된 신전 지붕의 흔적도 보인다. 벽의 높이는 거의 30미터나 되는데, 그것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서민 지역인 수부라 지역은 화재가 매우 잦았기 때문에 불길이 포룸 쪽으로 번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방화벽인 셈이다. 이 벽을 보면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보다는 담벼락 너머 살던 당시 서민들의 애환이 상상되기도 한다.

아우구스투스 포룸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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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룸에서 건축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기둥이 길게 늘어선 양쪽 회랑 뒤에 붙어 있는 커다란 엑세드라(exedra)이다. 엑세드라는 곡면 벽체로 이루어지는 반원형의 공간을 말하는데, 이것은 그리스 건축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로마 건축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 요소이다. 이곳은 바실리카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강의나 법정이 열리기도 했다.

아우구스투스 포룸의 평면도

1. 율리우스 카이사르 포룸, 2. 아우구스투스 기마상, 3. 복수의 군신 마르스 신전, 4. 회랑, 5. 엑세드라, 6. 수부라(서민 거주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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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포룸은 근본적으로 아우구스투스를 찬양할 뿐 아니라 그가 로마의 전통을 지켜오면서도 신의 섭리와 가호 안에서 로마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자임을 돋보이게 했기 때문에, 엑세드라와 회랑 아래에는 아이네아스로부터 율루스와 로물루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과 영웅들의 형상들이 세워져 있었고 신전에는 아이네아스의 어머니인 베누스 여신과 로물루스의 아버지인 군신 마르스를 비롯하여 신격화된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의 신상이 안치되어 있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칼과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에게 패하여 빼앗겼다가 아우구스투스가 평화적으로 다시 돌려받은 로마군 휘장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는 신전 앞에 펼쳐진 광장 한가운데에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개선마차를 탄 개선장군과 같은 자신의 형상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우구스투스의 포룸은 로마 시민들 바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홍보물’이었다. 이 홍보물은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제정(帝政)’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정통성을 까마득한 전설과 연계시켜 만방에 설득하고 홍보하고 시민들을 세뇌하는 데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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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 집필자 소개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도이, 로마대학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등 ..펼쳐보기

출처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 저자정태남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의 건국 이야기가 깃든 팔라티노 언덕의 로물루스의 집부터 기원후 4세기 초반 로마제국의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이전하기 직전에 세워지는 콘스탄티누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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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우구스투스 포룸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정태남,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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