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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로마제국 전성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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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야누스 황제의 포룸과 바실리카 울피아는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여러 모로 극히 보수적인 건축물이고, 어떻게 보면 의도적으로 옛날 건축을 답습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예전의 건축에 비하면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도 새로운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다키아 전쟁 상황을 기록한 원기둥과 같은 혁신적인 요소도 있긴 하다. 그런데 원기둥의 경우 형태상으로 매우 새롭기는 하지만 내용적으로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아우구스투스의 아라 파치스의 개념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다. 트라야누스 포룸도 100년 전 아우구스투스 포룸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로마제국 초대 황제의 건축을 표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정치적인 홍보를 위해 세운 공공건축의 형태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전혀 다른 면을 보여주는 건축이 있다. 포룸과 같이 철저하게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건축 바로 옆에 콘크리트와 벽돌만을 사용한 매우 자유로운 형태의 건축물이 있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들은 건물을 설계할 때 형태적으로 좌우대칭이 되는 것을 신성한 법칙처럼 받아들이고 이것을 철저하게 지켰다. 지형이 불규칙해서 건물을 좌우대칭으로 세울 수 없을 경우에는 융통성을 발휘하여 지형에 알맞은 형태의 건물을 세웠다. 그리하여 유기적이고 자유스러운 형태의 건축물도 세워질 수 있었는데, 이와 같은 건축물은 콘크리트와 벽돌로 세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 콘크리트와 벽돌로는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형태의 건축
트라야누스 포룸의 동쪽에는 마치 포룸 유적의 배경처럼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유적지가 있다. 건축물이라면 당연히 좌우대칭이어야 하던 시대에, 이 유적지의 건축물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먼저 이 유적지와 트라야누스 황제의 포룸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반원형으로 돌아가는 곡면으로 된 엑세드라가 눈길을 끈다. 그 뒤쪽 언덕 너머에는 중세에 세워진 높은 벽돌탑이 있어서 멀리서도 이곳의 위치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이 유적지에 관한 사료는 별로 없기 때문에, 당시에 어떻게 불렸는지 알 수 없다. 현재는 ‘트라야누스의 시장들’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메르카티 디 트라야노(Mercati di Trajano)’라고 부르는데, 단수가 아닌 복수를 쓴 것은 이곳이 재래식 노천시장이 아니라 건축가가 구석구석 계획한 상업용 다층 건물들이 모여 있는 단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퀴리날레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이 마주치는 지점을 깎아 만든 테라스를 중심으로 170개 이상의 점포들이 도열해 있었다고 하니까 요즘으로 치면 ‘쇼핑센터’ 또는 ‘쇼핑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마에서 시장은 전통적으로 포룸 로마눔 지역에 형성되어 있었지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평화의 포룸’을 세우고 나서 시장터가 이곳으로 옮겨졌다. 시장 건물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착공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에 사용된 벽돌에 찍힌 직인을 보면 그가 죽은 후에 설계가 완전히 변경되어 서기 2세기 초반에 완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곳에 시장을 만든 것은 퀴리날레 언덕의 깎인 부분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그것을 감추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 시장터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트라야누스 원기둥 높이와 일치하기 때문에 원래 언덕 높이에 해당한다. 이 ‘쇼핑몰’은 퀴리날레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이 마주치던 곳을 계단식으로 깎아서 만든 터 위에 세운 것으로, 경사진 땅을 최대한 이용했으며 다른 기념비적인 건축과는 달리 상업건축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기능 위주로 설계되어 있다. 시장터 중간부분에 만들어진 테라스는 외부통로 구실을 한다. 중세시대 실제 테라스에 면한 점포에서 음료수를 팔았는지는 모르지만 ‘음료수의 길’이란 뜻의 비아 비베라티카(Via Biberatic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 트라야누스 포룸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 포룸과 시장 사이의 시각적 관계도 세심하게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라야누스 포룸과 같은 지면에 있는 커다란 반원형 공간 엑세드라는 트라야누스 포룸의 벽선 밖으로 튀어나온 엑세드라를 받아주는 듯하면서도, 딱딱할 정도로 철저하게 좌우대칭으로 설계된 포룸에 형태상 매우 자연스럽게 접목되어 있다. ‘볼록 엑세드라’와 ‘오목 엑세드라’ 사이의 공간은 길이고 엑세드라 뒤쪽으로 부정형으로 펼쳐지는 공간들은 지형을 따라 유기체처럼 배치되어 있다.
엑세드라 아래층에는 11개의 점포가 원호(圓弧)를 따라 도열해 있는데, 점포의 안쪽 벽은 축대처럼 언덕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고, 안쪽 벽에 수직을 이루는 약 8미터의 세로벽은 점포들을 똑같이 구획할 뿐 아니라 안쪽 벽을 보강해주는 기능을 한다.
엑세드라의 양쪽 끝에 있는 실내 공간은 강당이나 학교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 천장 역시 반구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엑세드라의 왼쪽 끝 바깥벽을 보면 윗부분은 내부를 밝히는 여덟 개의 커다란 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그림자는 장식이 거의 없는 바깥벽에 강한 음영효과를 준다. 여덟 개의 창이 차지하는 면적은 바깥벽 면적의 3분의 2 정도이고, 바깥벽은 궁륭형 천장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벽체로 이루어져 있다.
트라야누스 시장터는 넓고 크지만 목욕장이나 궁전과 같은 다른 공공건축에서 보이는 거대한 실내 공간은 찾아볼 수 없다. 어디까지나 시장이라는 기능을 충족하기만 하면 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퀴리날레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널찍한 입구 홀은 유일하게 위아래로 틔어 있는 실내 공간으로 옛날에도 시장터의 입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가 아폴로도로스
위대한 지도자는 각 분야에 훌륭하고 뛰어난 참모들을 잘 선택하고 그들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다. 전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던 데 뛰어났던 트라야누스 황제가 거느린 뛰어난 참모들 중에는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가 있다. 그의 이름을 라틴식으로 표기하면 아폴로도루스(Apollodorus)가 되는데, 그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출신의 그리스계 사람으로 아르키텍투스(architectus), 즉, 건축가였다. 물론 당시는 건축가와 토목공학자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그는 토목엔지니어이면서 건축가였다.
그런데 누가 트라야누스 시장을 설계했을까? 당시의 건축가의 이름이 지금까지 알려진 예는 그리 많지 않으니 확실히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트라야누스 황제의 오른팔 건축가 아폴로도로스가 가장 유력하지만, 그가 설계했다고 확정지을 만한 사료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공간 구성이 극히 고전적이며 보수적인 트라야누스 황제의 포룸과 이와는 정반대로 공간 구성이 극히 현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운 시장터를 비교해볼 때 쉽게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성격의 건축이 매우 자연스럽고 또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 정도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축가는 아폴로도로스 밖에 없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아폴로도로스는 교량 축조에 관한 연구 논문도 남겼다고 하지만, 불행히도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트라야누스 원기둥에는 도나우 강 다리 기공식을 하는 트라야누스 황제 곁에 서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아폴로도로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다키아 원정 때 도나우 강에 석조다리를 단시일에 놓아 적을 놀라게 했는데, 전쟁 중에 다리나 요새를 순식간에 건설하는 것은 적의 심리를 제압하는 강한 무기가 되었다. 라인 강을 건너는 목조다리를 불과 열흘 만에 놓아 적을 놀라게 했던 옛날의 카이사르처럼, 트라야누스 황제도 아폴로도로스의 능력을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다키아 전쟁이 끝난 다음, 로마에서 트라야누스 포룸과 다키아 전승기념 원기둥을 비롯하여 도무스 아우레아가 있던 언덕 위에 거대한 트라야누스 목욕장을 세운 그는 당대 최고의 ‘아르키텍투스’였고, 평화 시에는 황제의 오른팔이 되어 로마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트라야누스 황제의 건설 야망을 실현시켜준 장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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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의 건국 이야기가 깃든 팔라티노 언덕의 로물루스의 집부터 기원후 4세기 초반 로마제국의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이전하기 직전에 세워지는 콘스탄티누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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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트라야누스 시장터 –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정태남,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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