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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로마왕정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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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기 753년 전의 일이다. 로물루스는 그를 따라온 무리들과 함께 테베레 강이 굽어보이는 팔라티노 언덕 위에 조그만 부락을 세웠는데, 이들의 자손은 나중에 북유럽을 제외한 전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중동지역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현재 팔라티노 언덕에는 ‘로물루스의 집(Casa di Romolo)’이라는 팻말을 붙인 움막터가 있다. 그런데 로물루스의 족보를 따지고 보면, 그는 이탈리아 본토 사람이 아닌 이른바 도래인(到來人)의 후손이다. 그의 족보는 트로이아 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로이아 전쟁의 난민 아이네아스의 후손들
기원전 1150년경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해가자, 분개한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아 정벌에 나섰다. 이후 10년 동안이나 트로이아 성을 공격을 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마침내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특공대 기습작전을 구상했다. 우선 그는 그리스군이 전쟁에 싫증이 나서 퇴각한다는 소문을 퍼뜨린 후, 해변에 거대한 목마를 남겨놓고 그리스로 되돌아가는 척했다. 그러자 트로이아 사람들은 적군이 물러난 줄 알고 승리의 기쁨에 빠졌다. 그러고는 거대한 목마를 아테나 여신에게 바친 제물로 여기고 성 안으로 들여놓았다. 트로이아의 제사장 라오콘은 적의 계략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목마가 성 안에 옮겨진 날 밤, 트로이아 사람들은 술에 취해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때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 특공대가 몰래 밖으로 나와 성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물러나는 척했던 그리스군이 다시 상륙하여 성안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난공불락의 트로이아 성은 어이없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불타는 트로이아를 극적으로 탈출한 사람 중, 미(美)의 여신 베누스와 인간 안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네아스(Aeneas)가 있는데, 기원전 1세기의 문호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아스의 일대기에 의하면 그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아이네아스는 베누스 여신의 보호 아래 늙은 아버지를 업고 어린 아들과 일행을 데리고 불타는 트로이아를 몰래 빠져 나와 지중해로 방랑의 길에 올랐다. 그가 시칠리아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죽어버렸고,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가려 했으나 배가 풍랑을 만나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해변으로 밀려가고 말았다.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는 아이네아스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그런데 아이네아스와 디도 여왕이 서로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자 이를 보다 못한 유피테르 신은 아이네아스에게 이탈리아 반도로 떠나라고 명했다. 아이네아스는 아쉬움을 남기고 카르타고를 몰래 떠나는데, 이를 알게 된 디도 여왕은 멀리 떠나는 배를 바라보면서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카르타고는 기원전 800년대 중반에 세워졌기 때문에 디도 여왕은 아이네아스와 같은 시대가 아닌 적어도 300년 후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와 디도를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숙명적인 대립을 암시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리고 늙은 아버지 안키세스를 굳이 등장시킨 것은 로마인들이 조상 숭배를 매우 중요시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이후 아이네아스는 라틴족이 사는 라티움(Latium)의 서해안에 도착했다. 라티움은 이탈리아어로는 라찌오(Lazio)라고 하는데 한반도로 치면 경기도쯤 된다. 아이네아스는 라틴 왕의 딸 라비니아 공주와 결혼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 이름을 공주의 이름을 따서 라비니움(Lavinium)이라고 지었으며 그가 데려온 트로이아 사람들과 라티움의 원주민들을 함께 통치했다. 그 후 그의 아들 아스카니우스(Ascanius)는 알바 산 기슭에 알바 롱가(Alba Longa)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곳을 라티움의 수도로 삼았다.
쌍둥이 형제를 젖먹여 키운 늑대
대략 200년이 지난 후 아스카니우스의 후손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 형제가 라티움을 공동으로 통치했는데, 아물리우스는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형 누미토르를 쫓아내고 그의 딸 레아 실비아를 베스타(Vesta) 여신의 성화(聖火)를 지키는 처녀제관으로 만들어버렸다. 처녀제관은 몸을 항상 정결하게 해야 하는데 만약 불을 꺼뜨리거나 처녀성을 잃는 경우에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졌다.
어느 여름날 강가에서 레아 실비아는 잠이 들었다. 바로 그때 전쟁의 신 마르스가 이곳을 지나다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그만 그녀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레아 실비아는 쌍둥이를 낳게 되는데, 이 사실을 안 아물리우스 왕은 크게 노하여 아기들을 조그만 뗏목에 실어 강에 띄워 버리도록 했다. 그런데 뗏목이 팔라티노 언덕 근처 강변의 무화과 나뭇가지에 걸려 멈추었다. 이때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늑대가 이들을 발견하고 젖을 먹여 키웠고, 다시 파우스툴루스라는 양치기가 이들을 발견하고 데려다 키웠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암늑대는 로마의 상징이 되었다.
쌍둥이 형제는 양치기로부터 각각 로물루스(Romulus), 레무스(Remus)란 이름을 얻었고, 성장한 다음 자신들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알바 롱가로 가서 아물리우스 왕을 처단하고 늙은 외할아버지 누미토르를 왕위에 세웠다. 그러고는 추종자들을 데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먼 길을 떠났다.
고대인들의 도시 건설 의식
로마가 건국되기 전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에는 에트루리아라는 엄청난 선진국이 있었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를 세울 때 까다롭고 복잡한 에트루리아의 도시 건설 의식을 그대로 따랐다. 이 의식은 대부분 주술적이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과학적인 근거도 있었다. 먼저 신관은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동서남북의 땅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확실히 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하늘을 관찰하는데, 새가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신의 뜻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일정 기간 동안 양을 방목했다. 그러고 나서 양을 제물로 바치면서 양의 간의 상태를 보고 기(氣)가 있는 땅인지를 판정했다. 그리고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를 이용해 도읍의 경계선을 판 다음에야 비로소 집과 성곽을 세울 수 있었다. 이러한 의식은 로마인들이 다른 곳에서 식민도시를 건설할 때도 수세기 동안 그대로 적용되었다. 특히 기원전 1세기에 『건축론(De Architectura)』을 저술하여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친 비트루비우스는 새로운 도시나 요새를 건설할 때, 양의 간을 점검하는 의식을 절대로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간의 상태가 좋다는 것은 그곳의 초목이 좋다는 뜻이고, 초목이 좋다는 것은 주변 환경이 좋다는 뜻이 아닐까?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가 자신들을 발견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는 언덕이 두 개 있고, 그 사이로 테베레 강으로 흐르는 냇물이 있었다. 이 두 언덕의 이름이 이탈리아어로 팔라티노(Palatino), 아벤티노(Aventino)이다.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을,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새로운 도읍지로 선호했다. 형제간에 뜻이 맞지 않자 그들은 이 두 언덕에서 각각 새를 더 많이 보는 자의 뜻에 따라 도읍지를 정하기로 했는데,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서 새를 더 많이 봤다. 새는 신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새를 더 많이 봤다는 것은 유피테르 신의 뜻이 더 강하다는 뜻이었다. 로물루스는 양치기들의 수호 여신인 팔레스(Pales)의 축제가 팔라티노 언덕에서 열리는 4월 21일을 로마의 건국일로 잡고, 이 도읍지의 이름은 자기 이름을 따서 로마(Roma)로 정했다고 한다.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 주변에 소가 끄는 쟁기로 직선으로 고랑을 파고 성곽을 쌓았다. 고랑을 파고 성곽을 쌓은 곳의 안쪽은 성역(聖域)이란 뜻이다. 그런데 동생 레무스는 이를 무시하고 로물루스가 쌓은 성벽을 발로 걷어차고 경계선을 넘었다. 그러자 로물루스는 신성한 구역을 무단으로 침입한 동생을 죽이고 만다.
확정된 영역의 경계선을 포메리움(pomerium)이라고 하는데 포메리움은 단순히 정치적 · 군사적 경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포메리움 안쪽은 성역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며, 어떤 일은 금지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철저히 금지된 것은 포메리움 영역 안에 사람의 시신을 매장하는 일이었다. 죽은 영혼이 사람이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것을 불길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겠지만, 실제로는 위생문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포메리움의 개념은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팔라티노 언덕 위에서 갓 태어난 로마는 주변의 땅을 조금씩 차지해나갔으며 아울러 로마의 포메리움도 넓어졌다. 이렇게 해서 넓혀진 영역을 우릅스(Urbs)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결국 로마를 지칭하게 됐고, 나중에 ‘도시’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참고로 영어에서 ‘도시의’라는 뜻의 urban이란 단어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로물루스의 집
로마 건국에 관한 전설은 앞서 얘기한 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 25~30개 정도는 그리스 사람들이 쓴 것인데, 공식적인 로마 건국 이야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일부 그리스인들은 아이네아스를 로마 창건의 시조로 묘사하기도 한다. 사실 아이네아스의 이야기는 이미 기원전 6세기에 에트루리아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고, 로마 가까이 있는 베이이(Veii)나 라비니움(Lavinium)과 같은 남부 에트루리아 도시에서는 아이네아스 숭배의식도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웃 도시의 ‘인기 있는 인물’을 들여오면서, 그들의 조상 로물루스를 아이네아스의 후손으로 살짝 접목시킨 것으로 보인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관한 이야기가 로마 지역에 국한된 전설이든지 아니면 후세에 만들어낸 이야기이든지 간에 로마 역사의 첫 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굳어져 있다. 사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독일 학자들과 일부 유명한 이탈리아 학자들은 기존에 쓰인 로마 초기의 역사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로마왕정 시대와 관련된 전설뿐 아니라 심지어 로마공화정 시대의 역사까지도 무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40~50년 사이 상황은 바뀌고 있다. 전설이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줄 만한 유적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로마의 남서쪽에는 아이네아스의 이야기와 관련된 리도 디 에네아(Lido di Enea, 아이네아스의 해변.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이네아스를 간단히 ‘에네아’라고 한다)와 라비니오(Lavinio)라는 조그만 휴양도시가 있긴 하지만, 전설에 등장하는 라비니움은 내륙 쪽에 있는 프라티카 델 마레(Pratica del Mare)라는 곳으로 밝혀졌다.
또 팔라티노 언덕에 있는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 밑에서 기원전 9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묻혔다고 추정되는 철기 시대의 주거 유적지가 세 군데 발굴되었다. 이것은 움막집을 떠받치고 있던 돌 기초인데, 크기는 각각 4미터×2.5미터 정도가 된다. 그 주변에서는 로마의 건국 전설에서 언급된 고랑과 성곽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에 의해 기원전 8세기 중반 경에 이곳에 조그만 부락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는데, 이것은 로마의 건국 연대인 기원전 753년과 거의 일치한다. 이 부락에 로물루스라는 사람이 살았고, 또 이곳을 로마로 불렀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그렇지만 이곳은 당시 팔라티노 언덕 근처에 있었던 여러 부락 가운데 하나였고, 또 이곳을 중심으로 로마가 생성되고 발전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옛날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들보다 고대의 사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수긍하면 전설이란 허무맹랑한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팔라티노 언덕의 움막터를 ‘로물루스의 집(Casa di Romolo)’이라고 부르고 있다. ‘로물루스의 집’이라는 말 속에는 로물루스가 전설의 인물이 아닌, 실재의 인물로 판명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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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의 건국 이야기가 깃든 팔라티노 언덕의 로물루스의 집부터 기원후 4세기 초반 로마제국의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이전하기 직전에 세워지는 콘스탄티누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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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로물루스의 집 –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정태남,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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