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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로마공화정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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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상 된 유적들이 즐비한 포룸 로마눔과 경계를 이루는 북동쪽 담 너머에 ‘목수들의 성 요셉(San Giuseppe dei Falegnami)’이라는 조그만 16세기 성당이 있다. ‘성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아버지를 일컫는데, 요셉은 단순한 목수가 아니라 요즘으로 말하면 갈릴리 지역에서 목재소를 운영하던 중소기업 사장쯤 되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성당 이름에 ‘목수들의’라는 표현이 있으니 로마의 목수들과 무슨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성당은 도로면에서 한 층 위에 있는 테라스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데, 테라스의 난간에는 성당 이름보다 더 큰 글씨로 “MAMERTINUM(마메르티눔)”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작은 글씨로 “PRIGIONE DEI SS. APOSTOLI PIETRO E PAOLO(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의 감옥)”라고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다. 그리고 난간 한가운데에는 철창에 갇혀 있는 베드로와 바울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마메르티눔’이란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메르티눔은 로마 시내에 있던 유일한 감옥으로 그 흔적은 이 성당 바로 아래에 있지만 원래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감옥은 로마에서 정치범들이나 로마 시민권이 없는 외국의 죄수들 또는 포로들이 처형되던 곳이었다. 감옥의 정면 입구는 당시 환전상들이 있던 거리로 향해 있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은행가에 감옥이 있었던 셈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역사의 인물들
마메르티눔은 고대 로마의 감옥으로 인간적인 면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공간이다. 이 감옥은 형태가 다른 두 개의 공간이 아래위로 겹쳐져 있는데, 위는 마메르티눔, 아래는 툴리아눔(Tullianum)이라 했다. 마메르티눔은 죄수를 가두어놓는 곳이고 툴리아눔은 형을 집행하는 곳이었다. 사형수의 시체는 대하수구 클로아카 막시마를 통해 테베레 강으로 떠내려갔다고 하니, 당시 테베레 강은 상당히 오염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원적으로 볼 때 마메르티눔은 사비니인들이 섬기던 군신(軍神) 마메르스(Mamers)의 신전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고, 툴리아눔은 툴루스(tullus), 즉 ‘샘’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이 아래에 물이 솟는 곳이 있었고 지금도 물이 고여 있는 조그만 샘이 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에 의하면 마메르티눔 감옥은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오르는 비탈길에 있던 돌덩어리를 쌓아 만든 수조를 이용해 기원전 6세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커다란 돌덩이를 쌓아서 만든 이 감옥은 아마로 로마에 세워진 최초의 건축구조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곳이 처음에 티투스 리비우스의 말대로 수력(水力)공학에 밝았던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만든 저수조였는지 아니면 무덤이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공화정 시대부터 로마제국 말기인 서기 368년까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마메르티눔의 평면은 사다리꼴이고 천정은 투포 돌덩어리를 쌓아 올려서 만든 궁륭형인 반면, 툴리아눔의 평면은 원형으로 지름이 약 7미터 정도이고 천장의 높이는 사람 키보다 약간 높다. 그리고 벽은 모두 안쪽으로 곡면을 이루며 기울어져 있다. 마메르티눔의 바닥에는 아래층으로 통하는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당시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사형수는 이 구멍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진 후 사형을 당했던 것이다. 이곳은 로마의 대하수구 클로아카 막시마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아래의 공간은 협소하고 돌을 만지면 습기가 느껴지며, 바닥에는 마치 샘처럼 물이 고여 있는 구멍이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의 역사학자 살루스티우스는 이 감옥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감옥 안에 툴리아눔이라는 곳이 있다. 12페데스(피트) 지하에 있다. 이곳은 두꺼운 벽으로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 내팽개친 듯 버려진 상태를 보건대, 혐오스럽고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어둡고, 악취가 풍긴다.”
포로로 잡혀온 외적의 왕이나 적장은 로마군의 개선행렬에 끌려와서 열광하는 로마 시민들 앞에 보인 다음, 이 감옥으로 끌려와 마치 제사상에 올리는 돼지나 소처럼 도살당했던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에 패한 후 자살의 길을 택했는데, 만약 로마에 포로로 잡혀왔더라면 이와 같이 굴욕적이고 비참한 최후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이 겪은 생지옥?
3세기의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도 이곳에 갇혀 있었다고 하는데, 천사가 나타나 그의 쇠사슬을 풀어주고 감옥 밖으로 인도했다고 한다. 바티칸 궁에 있는 라파엘로의 벽화 〈베드로의 해방〉은 바로 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좁고 어두운 감옥과 천사의 눈부신 광채가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세 전설에 의하면 바울도 이곳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바울은 이곳에서 간수들을 감화시키고, 벽에서 샘이 솟게 하여 이 물로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베드로와 바울이 이곳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증빙할 만한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지만, 만약 이곳에 갇혀 있었더라면 그야말로 생전에 생지옥을 체험했을 것이다.
이 섬뜩한 감옥터 위에 1598년 ‘목수들의 대형제회’라고 하는 로마의 목수조합이 ‘목수들의 성 요셉 성당’을 세웠는데 이 성당과 악명 높던 고대 로마의 감옥 사이에 한 줄기의 따뜻한 인간적인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도 있다. 158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목수들의 대형제회’에게 매년 성 요셉 축제일 전야에 사형수 한 명을 사면해줄 수 있는 특권을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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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의 건국 이야기가 깃든 팔라티노 언덕의 로물루스의 집부터 기원후 4세기 초반 로마제국의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이전하기 직전에 세워지는 콘스탄티누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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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마메르티눔 –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정태남,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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