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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로마제국 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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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에는 에트루리아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끼치지 않은 곳이 없다. 연극도 마찬가지였다. 연극은 원래 에트루리아에서는 장례의식의 일부였고,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신 숭배의식의 일부였다. 즉 에트루리아나 그리스 사람들은 연극을 통하여 신들을 즐겁게 하고, 신들의 가호를 빌었던 것이다. 로마는 그들로부터 ‘연극’을 물려받았다. 로마에서 연극은 처음에 광장이나 시장과 같이 열린 마당에서 공연되었으며, 관객들은 이런 공연을 서서 지켜보았다. 로마 초기에는 상설무대나 객석이라는 것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145년경부터 연극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서 종교의식과는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인 장르로 발전했다. 아울러 관중들은 편히 앉아서 연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공화정 시대의 사회는 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전통을 지키려던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보수파 정치인들은 로마의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연극과 같은 공연이 시민들의 도덕을 저해한다고 생각하여 상설극장을 짓는 것을 금지했다. 그 대신, 공연 후에 쉽게 철거할 수 있는 목조로 된 극장을 세우는 것만은 허가했다. 그때부터 로마에는 연극을 할 수 있는 건축물이 등장하게 되었다.
로마 최초의 상설극장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55년, 폼페이우스는 로마에 처음으로 석조극장을 세워 연극에 대한 보수적인 관습을 타파했다. 로마 역사상 처음으로 상설극장을 세웠긴 하지만, 보수파의 눈치를 보느라 관객석 뒤쪽에 베누스 신전을 세워 반원형의 관객석이 마치 신전으로 향하는 계단처럼 보이게 했다. 폼페이우스 극장의 모습은 현재 조금도 남아 있지 않고, 극장이 있던 자리에는 다른 건물들만 들어서 있다. 폼페이우스 극장이 세워진 지 몇 십 년 지난 기원전 13년, 코르넬리우스 발부스가 새로운 상설극장을 세웠는데 이 극장은 현재 무대 하부 공간만 조금 남아 있다.
폼페이우스 극장과 발부스 극장에 이어 로마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상설극장이 바로 마르켈루스 극장으로, 이탈리아어로는 마르첼로 극장(Teatro di Marcello)이라고 한다. 이 극장은 기존의 그리스식 극장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로마 극장 건축의 전형이 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보통 비탈진 지형을 이용하여 반원형극장을 만들었고, 무대 뒤에 보이는 풍경이 그대로 무대 배경이 되었다. 반면에 로마인들은 천연지형과 관계없이 원하는 곳에 벽체를 쌓아올려 반원통형극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대 배경은 뒤에 멀리 보이는 경치가 아니라 ‘무대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무대의 배경과 막으로서 여러 가지 장식을 갖추었다.
요절한 조카를 위하여
캄피돌리오 언덕을 오르다보면 남쪽으로 콜로세움과 비슷한 모습을 지닌 유적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마르켈루스 극장이다. 현재 이 극장은 바깥벽 부분만 조금 남아 있고, 그 앞에는 아폴로 신전 유적의 기둥이 앙상하게 서 있다. 공화정 시대에는 이곳에 목조로 된 가설극장이 있었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곳에 석조로 반원형극장을 착공했다. 극장의 위치가 아폴로 신전 바로 옆인 이유는 이 지역에서 열리던 아폴로 신을 숭배하는 축제에 이미 오래 전부터 연극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신전은 그리스에서 건너온 아폴로 숭배의식이 로마에서 처음으로 행해지던 때인 기원전 431년에 세워졌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부관이던 가이우스 소시우스(Gaius Sosius)가 아우구스투스와 손잡은 후인 기원전 36년에 신전을 전면적으로 개축했다고 해서 소시우스의 아폴로 신전(Tempio di Apollo Sosiano)이라고 한다. 아폴로 신전 옆 또 다른 유적터는 비아 아피아를 건설한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기원전 296년에 벨로나 여신에게 바친 신전터로 추정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착공한 이 극장을 기원전 17년에 완성하고, 기원전 13년(또는 기원전 11년)에 누이 옥타비아의 아들 마르켈루스에게 바쳤다. 고대 로마에서는 건물의 명칭에 건축을 계획하거나 시작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으니, 마르켈루스 극장이 아니라 율리우스 카이사르 극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이루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하면서 유독 이 극장의 이름만큼은 조카의 이름을 붙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 공화정으로 복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오리엔트 전제군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정치체제를 슬그머니 굳혀버렸다.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공화정이 완전히 막을 내리고 제정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는 자기 혈통의 신성함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만방에 선전했으며, 자신의 권력을 이어받을 사람을 자신의 핏줄에서 찾았다. 그런데 그는 자식이라곤 딸만 있었기 때문에 딸을 조카 마르켈루스에게 시집보내고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원전 23년 마르켈루스가 19세에 그만 요절하고 말았으니, 자신의 핏줄을 이어줄 후계자를 잃은 충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조사(弔辭)를 들으면서 아우구스투스와 옥타비아는 눈물을 삼켰을지도 모른다.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는 결국 황비 리비아와 그녀의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티베리우스가 되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클라우디우스 가문 출신이었다. 이리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점으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황제까지를 ‘율리오-클라우디우스 왕조’라고 부른다.
콜로세움 외벽의 전형
마르켈루스 극장의 평면은 지름 130미터에 높이 약 32.6미터, 총 1만 5000명의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필요에 따라 2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극장의 바깥 모습을 보면 각 층마다 사용된 기둥들의 양식이 모두 다르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리스에서 들여온 도리스 양식, 이오니아 양식, 코린토스 양식 외에 에트루리아에서 들여온 투스카니아식(이탈리아어로는 토스카나 양식, 영어로는 터스칸 양식)과 이오니아식과 코린토스식을 결합한 혼합 양식 등, 모두 다섯 가지의 기둥 양식을 주로 사용했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들은 단순히 건축물을 장식하기 위해서만 여러 가지 양식의 기둥을 첨가하지는 않았다. 즉 각 기둥마다 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건물을 미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마다 양식이 다른 기둥을 사용했던 것이다. 기둥을 세우는 본래의 목적은 위에서 내리는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것이지만 고대 로마 건축에 사용된 기둥들은 구조적으로 별다른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건물에 표현력을 주고, 건축물이 더욱더 웅변적이 되도록 한다.
극장의 바깥벽을 보면, 1층은 두터운 느낌을 주는 도리아식과 흡사한 토스카나식 기둥이고, 2층은 다소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되어 있다. 극장의 3층은 모두 허물어지고 현재 다른 건물이 그 자리에 세워져 있긴 하지만, 원래는 가볍고 날렵한 느낌을 주는 코린토스식 기둥으로 되어 있었다. 위로 갈수록 건물의 하중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와 같은 순서로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양식의 기둥을 수직으로 배치한 것은 매우 논리적이다. 극장의 바깥에서 보기에도 형태적인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미적 논리는 100년 후에 세워진 콜로세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 극장은 세월이 지나면서 큰 수난을 당했는데, 서기 370년경에는 테베레 강의 섬에 세워진 다리를 복구하는데 극장의 일부가 뜯겨 나갔고, 1000년이 지난 13세기 후반에는 교황과 황제에 대항하여 투쟁하던 로마의 귀족들이 요새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 16세기에는 극장의 윗부분이 카에타니 가문의 아파트로 개축되어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이 아파트는 마르켈루스 극장이라는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용도 변경한’ 여러 예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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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의 건국 이야기가 깃든 팔라티노 언덕의 로물루스의 집부터 기원후 4세기 초반 로마제국의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이전하기 직전에 세워지는 콘스탄티누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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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마르켈루스 극장 –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정태남,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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