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시대 | 로마제국 전기 |
---|
로마의 중심지에는 광장마다 건물 모퉁이마다 크고 작은 분수들이 물을 뿜고 있다. 분수는 기쁨과 활력을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로마의 길을 걸으면 즐겁고 재미가 있다. 영국의 시인 셸리는 “로마의 분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로마를 본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로마의 중심지 안에는 역사적인 ‘족보’가 있는 분수만 손꼽아보아도 100개가 넘는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분수라면 스페인 광장에 있는 조각배 분수와 나보나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4대강을 의인화한 분수, 그리고 트레비 분수를 꼽을 수 있다.
1762년에 완성된 트레비 분수는 로마 후기 바로크 시대의 걸작으로 로마를 상징하는 기념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로마의 분수이다. 트레비 광장의 북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르네상스식의 폴리(Poli) 궁의 벽면은 높이 20미터, 가로 26미터가 되는데, 이 벽면에는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어서 마치 커다란 무대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조각군의 한가운데에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가 바다의 신 트리톤이 몰고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거대한 조개껍질 모양의 마차에 올라서 있다. 두 마리의 말은 각각 고요의 바다와 격동의 바다를 상징한다. 오케아노스의 좌우에 있는 조각들은 각각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며, 그 앞에 펼쳐진 넓은 수반(水盤)은 바다를 상징한다. 그런데 로마 후기 바로크의 명작 트레비 분수가 고대 로마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물 있는 곳으로 병사를 안내한 처녀
트레비 분수의 배경을 이루는 벽면을 보면, 윗부분에 두 개의 조각이 좌우에 있다. 하나는 아그리파가 수로 건설 계획을 검토하는 모습이고, 하나는 한 처녀가 로마 병정들을 안내하는 모습이다. 전설에 의하면, 새로운 수원지를 찾고 있던 아그리파의 부하들 앞에 웬 처녀가 나타나 그들을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고 한다.
로마 주변의 높은 지대에는 비나 눈이 녹아 땅속에 스며들어서 이루어진 수맥이 많다. 상수원은 일반적으로 지하에 있어 지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상수원을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아그리파와 같은 시대의 건축가이자 토목엔지니어였던 비트루비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해 뜨기 직전에, 손 위에 턱을 괸 채로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 들판을 보라. 만약 땅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곳이 보이면 그곳을 파보면 된다. 또 놋그릇을 구덩이에 놓고 하룻밤 기다려라. 만약 아침에 놋그릇 안에 이슬이 끼어 있으면, 그 아래에 물이 있다.”
물이 있는 곳을 발견하여 수로 건설 계획을 확정하면 원로원에서 예산을 확보하고, 오늘날의 측량기사에 해당하는 리브라토르(librator)가 물이 완만한 경사를 따라 흐를 수 있는 지형을 정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공사를 개시할 수 있었다. 수로를 라틴어로 아쿠아이둑투스(aquaeductus)라고 하는데, ‘아쿠아(aqua)’는 ‘물’이란 뜻이다.
기원전 19년, 아그리파는 처녀가 알려준 곳을 상수원으로 하여 로마에 물을 공급하는 지하수로를 만들었다. 이 수로의 이름은 ‘처녀의 수로’라는 뜻의 라틴어 아쿠아 비르고(Aqua Virgo)라 했는데, ‘처녀’라는 말에는 물이 그만큼 맑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 수로는 하루에 10만 입방미터의 물을 로마에 공급했으며, 수로의 길이는 20킬로미터가 넘었다. 아그리파는 이 수로를 통해 자신이 판테온 부근에 세운 아그리파 목욕장과 수영장에 물을 공급했고, 이 물을 이용해 로마에 자그마치 160개나 되는 분수를 만들었다.
이 수로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방치되었다가 1453년에 복구되어 오늘날까지도 물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수로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로마의 명물 트레비 분수를 비롯하여 스페인 광장의 ‘조각배 분수’, 나보나 광장의 ‘4대강의 분수’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로마의 수로
로마는 건국 이래 400년 이상 동안 테베레 강이나 지하수 층에서 물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부터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물의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에 외부에서 물을 끌어오지 않으면 안 됐다. 그리하여 수로를 건설하여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오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지하의 암층을 뚫고 지하수로를 만들거나 지상에 고가수로를 세워 로마 시내에 물을 항시 공급했다.
로마에 처음으로 세워진 수로는 아쿠아 아피아(Aqua Appia)이다. 기원전 312년 두 명의 집정관 카이우스 플라우티우스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착공하여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그다음해인 기원전 311년에 완공한 것인데,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비아 아피아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수로는 길이가 16킬로미터이며, 하루에 3만 4000입방미터의 물을 공급했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인 1세기말까지 로마는 수로가 모두 9개나 세워져 있어서 매일 자그마치 100만 입방미터나 되는 무궁무진한 양의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 후 로마에는 모두 11개의 수로가 갖추어졌으니, 당시 지구상에서 인구비례로 따져볼 때 1인당 물을 그렇게 많이 공급받던 도시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기원전 8세기 중반 로마의 건국 이야기가 깃든 팔라티노 언덕의 로물루스의 집부터 기원후 4세기 초반 로마제국의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이전하기 직전에 세워지는 콘스탄티누스..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처녀수로, 아쿠아 비르고 –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정태남, 21세기북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