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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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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술과 황홀경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 신화에서는 바코스이다. 테베의 왕인 카드모스의 딸이지만 프리기아의 대지의 여신인 세멜레와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디오니소스라고 알려져 있다.
디오니소스는 수액, 즙, 자연 속의 생명수를 상징하므로 그를 기려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는 의식을 행했다. 이러한 디오니소스 축제는 미케네 문명 이후 여성들 사이에서 세력을 넓혀갔다. 디오니소스 숭배는 소아시아, 특히 프리기아와 리디아에서 오랫동안 성행했다.
디오니소스는 예언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트라키아에 신탁소가 있었다. 의식에서는 자연의 생식력을 상징하는 남근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징물로는 담쟁이덩굴 화관, 티르소스, 칸타로스 등이 있었다. 모습은 턱수염이 난 남자나 연약한 청년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디오니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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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Dionysos), 로마 신화에서는 바코스(Bacchos)이며, 술과 황홀경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트라키아와 프리기아에서 전래했지만, 출생과 죽음 및 원래 크레타의 여신인 아리아드네와의 결혼에 얽힌 기이한 전설은 그에 대한 숭배가 헬레니즘 시대 이전 미노스 문명의 자연종교로 복귀한 것이었음을 암시해준다.

가장 널리 퍼진 전설에 따르면, 카드모스(테베의 왕)의 딸이지만 원래는 프리기아의 대지의 여신인 세멜레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디오니소스라고 알려져 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세멜레를 질투한 나머지, 세멜레를 부추겨 제우스가 참모습으로 나타나게 해달라고 소원하게 하여 그가 정말 신인지 확인해 보도록 했다. 제우스는 그 요구에 순순히 응했으나, 인간인 세멜레가 견뎌내기에는 그의 힘이 너무 컸던 까닭에 세멜레는 제우스에게서 나온 번갯불에 타죽고 말았다. 하지만 제우스는 세멜레의 태내에 있던 아들을 자기 넓적다리 속에 집어넣어 달이 찰 때까지 키웠다. 이렇게 해서 디오니소스는 2번 태어나게 되었고, 그뒤에는 헤르메스 신이 상상의 장소인 니사로 그를 데려가 바코스 숭배자들의 손에서 자라도록 했다.

디오니소스는 수액(樹液), 즙, 자연 속의 생명수를 상징하는 존재로 간주되었으므로 그를 기려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는 의식이 성행했다.

이러한 디오니소스 축제(바코스 축제)는 미케네 문명 이후 여자들 사이에서 세력을 넓혀갔으나 남자들은 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테베의 왕 펜테우스가 바코스 숭배자들의 행동을 염탐하려 하다 들켜 몸이 갈갈이 찢겼으며, 아테네인들은 디오니소스 숭배를 멸시한 벌로 성불구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가정을 버린 채 언덕으로 모여들어, 사슴가죽옷을 입고 담쟁이덩굴관을 쓴 차림으로 제례 때 외치는 소리인 '에우오이!'(Euoi)를 질러댔다. 그들은 티아시(성스러운 무리)를 이루어 티르소이(회향나무 가지에 포도덩굴의 잎을 엮어 매고 끝을 담쟁이덩굴로 장식한 것)를 흔들면서 피리와 팀파니의 반주에 맞추어 장작불 옆에서 춤을 추었다.

디오니소스 신의 영감을 받게 되면 이 바코스 숭배자들에게 신비한 힘이 생겨 뱀과 동물에게 마법을 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모파기아(omophagia:날고기먹기) 축제에 탐닉하기 전에 산 제물을 갈갈이 찢을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고 여겨졌다. 바코스 숭배자들은 이 신이 제물로 바치는 짐승의 몸으로 화한다는 믿음에서 그를 브로미오스(외치는 자), 타우로케로스(소의 뿔을 지닌 자), 타우로프로소포스(소의 얼굴을 한 자)라는 이름으로 찬양했다.

디오니소스 숭배는 소아시아, 특히 프리기아와 리디아에서 오랫동안 성행했으며 아시아의 여러 신에 대한 숭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어머니 세멜레를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다고 하며 또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페르세포네와 연관되기도 했지만, 이 신이 저승과 원래부터 관계가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디오니소스는 예언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델포이의 사제들로부터 아폴론과 거의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트라키아에 신탁소를 갖고 있었고, 나중에는 포키스의 암피클레이아에 있는 병을 치료하는 신전의 후원자였다.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 가운데는 사티로스 같은 풍요의 정령도 있었으며, 의식에서는 자연의 생식력을 상징하는 남근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디오니소스는 가끔 짐승의 모습을 취했으며 여러 동물과 연관되었다. 그의 개인적인 상징물로는 담쟁이덩굴 화관, 티르소스(지팡이), 칸타로스(손잡이가 2개 달린 큰 술잔) 등이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초기 미술에서는 턱수염이 난 남자로 그려졌으나, 그뒤에는 연약한 청년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바코스 축제는 도자기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였으나, 바코스의 비밀 집회장소는 BC 186년에 발표된 원로원의 칙령에 따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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