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고대 유럽의 인종

다른 표기 언어

그리스인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BC 2000년경 그리스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미케네 문명은 크레타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BC 1200년경에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또다른 민족인 도리스족(도리아인)이 그리스를 침략했다. 이들이 그리스로 이주한 뒤, 여러 부족이 무질서하게 활동한 암흑시대가 2세기 동안 이어졌다(암흑기). BC 8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와 흑해 주변 및 지중해 건너편에 그리스 식민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식민주의). 이리하여 그리스인들은 중동지방의 선진 문화와 접촉하게 되었다.

이들은 천문학과 연대학 및 수학에 관해서는 이민족의 지식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업적인 유럽의 철학과 과학에 토대를 놓은 것은 스스로 타고난 능력을 통해 이룩한 것이었다. 척박하고 섬이 많은 그리스 본토의 지형은 강한 개인주의를 촉진했고 이 개인주의는 자체의 복잡한 사회구조와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자치를 누리는 정치적·종교적 공동체인 도시국가를 낳았다(폴리스). 권력의 융합은 도시 사이의 동맹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동맹의 효율성은 주로 맹주 역할을 맡은 도시의 지도력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자립의 욕망은 결코 끊이지 않았고 동맹은 되풀이해 깨지곤 했다. 내분이 계속되었음에도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의 침입(BC 490, BC 480~79)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주요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고 이 분쟁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스인들은 BC 4세기 마케도니아에 정복당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지역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스는 아카이아 동맹을 결성해 독립을 회복하고자 했지만 이 동맹은 BC 146년에 로마의 침공으로 무너졌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뉜 뒤, 동로마 제국에서는 그리스인들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비잔틴 제국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까지 아나톨리아의 잠재적 침략자들에게 맞서 유럽을 지켰다.

로마인

인도유럽어족의 이탈리아어파에 딸린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이 BC 1000년경부터 이탈리아에 들어와 원시 지중해 인종과 섞였다.

그후 일리리아인과 그리스인 및 켈트족이 밀물처럼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다른 이탈리아 부족들과 동족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던 로마인들은 식민지를 건설함으로써 로마의 세력과 영향력을 확대했다(로마사). BC 3세기에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에는 로마 식민지들이 점점 들어섰고, 이 식민지의 문화는 철저히 로마화했다.

로마의 가장 큰 업적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것이었다. 2세기에 로마 제국은 아프리카 북부와 아시아 서부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유럽에서 로마 제국의 영토는 지중해의 모든 나라와 스페인·갈리아 및 브리튼 섬 남부를 포함했고, 아시아에서는 파르티아 제국에 접경해 있었다. 로마 제국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자유무역 지대를 형성했고 이 지역은 팍스 로마나('로마 지배에 의한 평화') 덕분에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국제무역). 로마화를 촉진한 것은 주로 군대였지만 로마의 행정과 사회질서 및 경제적 요인도 그 일익을 담당했다.

로마화를 위한 가장 결정적 조치는 도시 제도를 속주까지 확대한 것이었다. 각 지방과 부족의 고유한 제도는 '키비타스'라는 통치 형태로 바뀌었다. 이것은 선거를 통해 시민들이 구성한 시 정부가 그 도시를 둘러싼 지방 행정에 참여하는 통치 형태였다. 로마 시민의 지위를 얻는 사람도 훨씬 많아져 212년에는 자유인으로 태어난 모든 백성에게 시민권이 주어졌다. 로마 시민들이 누리던 평등권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로마 시민은 국가만이 시행할 수 있는 강제 조치를 통해 세습 계급으로 나뉘었다. 지방 정부는 중앙 권력의 압력 때문에 점점 효율성을 잃게 되었다.

로마 제국의 문화적 업적은 내전이나 침략자들(주로 게르만족)과의 전쟁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로마 문화의 특징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몇몇 특징은 제국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관습 속에 남아있다. 세속문화가 쇠퇴하던 시기에 국교로 인정된 그리스도교는 고대 세계의 문명을 흡수해 그것을 중세에 전달함으로써 새로운 창조력을 불러일으켰다.

이민족의 이동과 침략

게르만족은 BC 1800년경에 중부 독일에 살던 줄무늬토기 문화권(Corded Ware Culture)의 전부(戰斧)민족이 북해 동해안으로 이주해 그곳에 살고 있던 거석문화권의 주민과 합치면서 생겨났다.

청동기시대에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부로 퍼졌고 독일 내륙으로 더 깊이 침투했다. 게르만족이 호박(琥珀) 교역을 통해 지중해와 접촉한 것은 순수한 농경문화권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의 발전을 촉진했지만, 철기시대에는 켈트족과 일리리아인 때문에 지중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게르만족의 문화는 쇠퇴했고 기후 조건의 악화와 인구 증가 때문에 새로운 땅을 찾아 좀더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인구이동). 그리하여 중부 유럽의 켈트족과 일리리아인은 갈수록 심한 압박을 받게 되었다. 게르만족 선발대는 BC 200년 이전에 이미 도나우 강 하류에 도착했지만 마케도니아 왕국 때문에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BC 2세기말에 도나우 강이 범람했다. 유틀란트 반도에서 내려온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 및 암브로네스족은 점점 불어나는 홍수에 쫓겨 켈트족과 일리리아인이 사는 지역으로 뚫고 들어가 로마 세력권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그들은 BC 113년 카린티아(지금의 오스트리아 케른텐)에 처음 나타났고, 이어서 프랑스 남부에 나타났으며, 마침내 이탈리아 북부에 진출했다.

BC 102년 로마인들은 튜튼족을 완전히 무찔렀고 이듬해에는 킴브리족의 군대를 섬멸했다. 그러나 슈바벤 부족은 독일 중부와 남부를 가로질러 꾸준히 이동했으며, 켈트족은 갈리아 지방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오비스투스가 이끄는 게르만족이 라인 강 상류를 건너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순트가우에서 승리를 거두어(BC 58) 그들의 진출을 막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로마는 라인 강과 도나우 강 유역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이 두 강의 건너편에 있던 게르만족은 70년경부터 게르만-라이티아 성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지역으로 밀려났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떠난 게르만 부족들(고트족·반달족·부르군트족 등)이 150년부터 비수아 강 하류와 오데르 강에서 밀려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소동은 다른 게르만 부족들한테도 퍼졌으며 그 결과 로마와 마르코만니족 사이에 벌어진 전쟁(166~180)은 이탈리아 자체를 위협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성공적인 원정으로 로마는 마르코만니아와 사마르티아를 속주로 얻었지만 그가 죽은 뒤에는 이 속주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알레마니족이 마인 강을 거슬러 올라와 게르만 성벽에 이르렀다. 고트족은 200년경 동쪽으로 흑해에 이르렀다. 해마다 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 부족들은 도나우 강 하류를 건너거나 바다를 건너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침략했고 키프로스 섬까지 원정해 약탈을 자행했다.

로마는 나이수스(지금의 유고슬라비아 니슈)에서 거둔 승리(269)로 마침내 그들의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258년에 알레마니족과 프랑크족은 국경 방어선을 돌파해 라인 강 오른쪽 연안에 정착한 뒤, 갈리아와 이탈리아 쪽으로 끊임없이 침투했다. 로마는 제국 전역에 있는 도시를 요새화했다. 프랑크족과 작센(색슨)족은 갈리아 북해안과 브리튼 섬 해안을 약탈했으며 그후 3세기 동안 게르만족의 침입은 서로마 제국의 재난이 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게르만족의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르만족은 로마 군대에 들어가 제국 영토의 이주민으로 정착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공적을 세움으로써 로마 군대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375년에 중앙 아시아의 훈족동고트족을 공격했다. 이 사건은 동게르만족에게 심각한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훈족은 물러가지 않고 계속 배후에 남아서 많은 게르만족과 그밖의 부족들을 차츰 정복했다.

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족은 겁에 질린 나머지 도나우 강의 국경을 뚫고 로마 제국 안으로 몰려 들어왔고, 발칸 반도는 또다시 게르만 군대의 전쟁터가 되었다. 로마 제국은 아드리아노플(지금의 터키 에디르네)에서 참패한 뒤(378), 모든 적을 제국의 영토에서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인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아드리아노플 전투). 로마는 추방할 수 없게 된 부족들을 '동맹자'로 제국 안에 정착시켰다.

게르만족은 보조금을 받았고 그 대가로 군대에 병력을 공급했다. 제국은 차츰 게르만화했으며 군대의 게르만화는 거의 완전히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발칸 반도를 통해 들어온 게르만 부족들 가운데 그곳에 정착한 부족은 하나도 없었다. 395년에 제국이 동서로 나뉜 뒤, 동로마 제국 황제들은 수도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게르만족을 서로마 제국 쪽으로 쫓아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5세기초부터 서로마 제국은 수많은 이주의 무대가 되었다. 서고트족은 발칸 반도에서 이탈리아로 밀고 들어와 410년에는 로마를 잠시 점령하기까지 했다.

406~407년에 슐레지엔 지방 및 그보다 훨씬 동쪽에 살던 게르만족과 그밖의 부족들(반달족·알라니족·수에비족·부르군트족)은 훈족을 피해 라인 강을 건너 스페인까지 침투했다.

반달족은 그후 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에 독립국가를 세웠다. 이것은 게르만족이 로마 영토에 세운 최초의 독립국가였다. 훈족의 왕 아틸라가 일부 게르만족과 합세해 서쪽으로 진격하자, 로마군 사령관 아이티우스는 카탈루냐(지금의 프랑스 샬롱쉬르마른) 평원 전투(451)에서 게르만족의 지원을 얻어 아틸라를 무찔렀다(카탈루냐 평원 전투). 발칸 반도는 3번째로 동게르만족에게 끔찍한 침략을 당했고 유틀란트 반도의 주트족과 앵글족 및 색슨족은 브리튼 섬으로 건너갔다.

프랑크족과 알레마니족은 마침내 라인 강 건너편에 정착했으며, 부르군트족은 론 강 유역을 따라 세력을 확장했고, 서고트족은 스페인을 거의 다 차지했다. 476년에 게르만 용병들은 이민족으로 로마 장군이 된 오도아케르를 이탈리아 왕으로 선언했고, 오도아케르는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켰다. 이로써 서로마 제국은 막을 내렸다(로마사). 그러나 동로마 제국에서는 황제의 지배가 계속되었고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함락될 때까지 수많은 포위 공격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5세기말경에는 서로마 제국 영토에 정착한 이민족들은 대부분 로마의 관습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문화접변). 이민족 지도자들은 로마의 명문집안과 혼인을 맺고 황제 칭호를 채택했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게르만족은 유럽에 그들 부족의 고유한 제도와 민족적 관습, 고도로 발달한 서사시를 비롯한 구전과 예술적 전통을 들여왔다.

그들의 영향력은 로마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중부 유럽에서 가장 강했고, 로마 문화가 확립되어 있던 북부(브리튼 섬)와 서부(갈리아) 지역에서는 게르만족의 영향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가장 많이 로마화한 남부 지역에서는 가장 약했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중부 유럽 지역에서는 고대 고지 독일어가 발달했고, 브리튼 섬에서는 앵글로색슨어가 발달한 반면, 남부지방에서는 공통된 라틴어의 유산을 토대로 한 중세 로망스어가 발달했다.

6세기부터 새로 나타난 게르만족 세력은 그들 고유의 이교문화를 고수하면서 동화에 저항했다.

작센족은 북부 유럽 라인 강 동쪽에 정착했다. 아바르족과 그들의 동맹 세력인 슬라브족은 비수아 강과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꾸준히 서쪽으로 이동해 도나우 강에서 동로마 제국의 허약한 수비를 무너뜨린 뒤, 남쪽의 발칸 반도와 서쪽의 중부 유럽으로 밀고 들어왔다. 567년경에 아바르족은 이미 헝가리 평야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했고 796년 샤를마뉴 대제에게 패배할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었다.

동슬라브족은 580년대에 시르미움과 싱기두눔(지금의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을 공격해 성공한 뒤 발칸 반도로 침투했고, 다른 부족들은 북쪽과 서쪽으로 이동해 결국 엘베 강 연안의 작센족 가까이에 정착했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은 합세해 626년에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지만 실패했고 이로써 이들 이교도의 세력 팽창은 막을 내렸다.

슬라브족은 2세기가 넘도록 발칸 반도를 점령했지만 결국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동로마 제국에 흡수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Daum백과] 고대 유럽의 인종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