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아카이아 동맹

다른 표기 언어 Achaean League

요약 고대 그리스의 아카이아 지역에 있던 도시들이 결성한 동맹(BC 3세기).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부의 아카이아 지역에 있는 12개 도시들은 코린트 만 건너편에서 쳐들어오는 해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BC 4세기에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이 동맹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 해체되었다. 남아 있던 10개 도시는 BC 280년에 동맹을 재건해 시키온의 아라토스가 앞장서서 동맹에 가입했다. 이어서 아카이아 이외 지역 도시들도 똑같은 조건으로 동맹에 가입시킴으로써 동맹은 큰 힘을 얻었다.

동맹의 활동은 처음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마케도니아인을 추방하고 그리스인의 지배를 회복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일은 BC 228년경에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스파르타 왕인 클레오메네스 3세가 역시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지배권을 노리고 공격해 오자 아카이아 동맹은 완전히 붕괴할 위험에 빠졌다. 아라토스는 스파르타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마케도니아와 동맹을 맺었고,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3세 도손은 스파르타를 정복해 마케도니아의 동맹국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지배(BC 224~221)가 다시 시작되었다.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아카이아는 로마와 동맹을 맺고(BC 198) 마케도니아에 대항했는데, 이 새로운 정책으로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거의 전역이 아카이아 동맹에 가입하게 되었다. 동맹의 정책은 성공했지만 아카이아는 결국 스파르타(BC 192년 동맹에 가입했음) 및 팽창주의적인 로마와 충돌하게 되었고, BC 146년 동맹과 로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쉽게 승리한 로마는 그해 동맹을 해체했다. 그러나 그 직후 규모가 작은 동맹이 수립되어 로마 제국 시대까지 존속했다.

아카이아 동맹은 장군(스트라테고스) 2명이 이끌다가 BC 255년부터 1명의 장군이 이끌게 되었다. 이 장군은 해마다 동맹군 지휘관으로 선출되었는데, 1명의 장군이 2년 연속해서 재선될 수는 없었다. 장군은 10명으로 구성된 동맹 행정기구를 이끌었고, 이 10명의 위원은 다시 여러 도시 국가의 입법회의(Boulé)와 민회를 주재했다. 시민들의 회의체인 입법회의와 민회는 장군이 제안한 문제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할 수 있었다. 민회에서 투표할 수 있는 최저 연령은 30세였다.

아카이아 동맹의 연방 헌법에 따르면, 이 동맹에 속한 도시 국가들은 동맹의 중앙 행정의 테두리 안에서 거의 완전한 자치권을 갖고 있었으며, 외교정책·전쟁·동맹세 등의 문제만을 장군과 행정기구가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세계사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아카이아 동맹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