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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후기의 로마 가톨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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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권의 전성기(12~13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흔히 그의 개혁 기반이 될 만한 전임 교황이나 그의 개혁정책을 이어받은 진정한 후임 교황이 없었던 개혁자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 중세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황권의 역사는 그레고리오 7세와 그의 신봉자들의 업적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면서도 중세교황권의 특징이었던 무능함은 그레고리오와 그의 신봉자들이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였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국가'와 '교회'를 서로 다른 사회적 실체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는 통합된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직분을 수행했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적 역학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자인 황제에게까지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했다. 향후 2세기 동안 교황청은 정치문제에 대해 직접적·간접적으로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교황직이 기본적으로 명예직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 교황의 지도력은 결국 교회를 지배하는 교황의 군주정치로 바뀌고 말았다. 또한 성직 겸임(성직록을 하나 이상 소유하는 것)이나 13세기 중엽부터 교회개혁자들이 잘못을 지적했으나 시정되지 않은 채 지속되던 비거주 성직록 소유(관할구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성직록을 소유하는 것) 등 특유의 성직록 남용 문제가 나타났다. 마침내 교황권은 개혁을 촉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신앙의 시기

교황권 아래 계층에서는 신앙부흥운동이 일어났다.

12세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신심이 깊거나 세속적이거나 근본적으로 신자들이었으며, 또한 종교적인 동기와 관심(십자군운동, 수도원 창설, 교회 건축, 교육 및 자선사업 원조 등)이 교양있는 시민과 행정가들 생활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12세기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신앙의 시대였다. 이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스페인의 도미니코 등의 지도 아래 설교와 가르침, 선행에 헌신하는 탁발수사회가 생겨났다.

13세기는 또한 사상과 신학, 예술 영역의 활동이 왕성했고 성숙을 이룬 시기였다. 전체적으로 유럽의 13세기는 주교들과 대학교육을 받은 성직자들이 교구와 본당 조직을 개선하고 많은 악습을 개혁하려고 노력한 시기였다. 13세기의 마지막 25년은 점차 가톨릭 교회에 대한 적대감과 핍박이 몰아치기 시작한 시기였다.

스콜라 신학의 황금시기는 갑작스런 종말을 맞게 되었고 종교재판소(이단자들을 다루기 위해 1229년 설립한 교회재판소)와 교황청 법원은 이단 혐의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판결을 내림으로써 증오심을 유발했다(→ 종교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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