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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 교회의 선교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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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가톨릭 교회는 19세기에 와서 처음으로 세계적인 존재로서 면모를 드러냈다. 이러한 교세 확장은 2가지 요인, 즉 아프리카·아시아에서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 국가로서 출현한 것과 그리스도교의 선교정신이 부활한 것에서 기인한다.

초기 아프리카 선교

아프리카 북부에서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수세기에 걸쳐 북부 아프리카는 대부분 이슬람화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의 선교는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지역에서 토속 종교인들이 저항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노예매매를 했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노골적으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초기 아시아 선교

아시아에서의 가톨릭 교회는 16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스페인 사람들의 아시아 탐험으로 인해 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충돌이 발생했다. 아시아인들은 이슬람 교도들과 달리 역사와 운명에 대한 성서적인 견해를 접촉한 적이 없었다.

불교·도교·유교·힌두교 신자들은 신·시간·역사에 대한 서양의 견해와는 판이한 세계관을 신봉하고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동양적인 생활방식, 인생관, 동양의 제의, 동양적인 종말관을 과연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상대적인 고립상태에 있던 중국과 일본이 서양인들에게 스스로를 개방하는 중요하고도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9세기 중국에서는 성당·병원·학교 등과 같은 가톨릭 기관들을 친숙하게 볼 수 있었다. 1900년에 발생했던 의화단 사건은 서양 문물에 대한 중국인들의 저항이 다시 고개를 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의화단 운동

텐진에서 의화단 단원들의 모습

ⓒ wikipedia | Public Domain

일본에서는 나가사키[長崎] 부근의 한 섬에 고립된 분파를 이루고 있었던 가톨릭 교도들을 제외하고는 16세기 포교 활동의 결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언제나 소수의 국민들만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1949년 중국에서 공산주의가 정권을 장악하자 가톨릭 선교 활동과 가톨릭 예배는 끝을 맺게 되었다.

중국 특유의 가톨릭 정신은 남아 있어 로마 가톨릭 교회에 충실한 측과 중국인 자치 가톨릭 교회를 지지하는 측으로 분리되었다. 전후 일본의 가톨릭 교회는 각 종교의 부활과 새로운 세속적 사조에 밀려 침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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