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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
이집트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집트 공항부터 카이로로 들어갈 때까지 곳곳에 있는 람세스 2세(Ramses II)의 유물들이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20미터나 되는 대형 조상에 감탄하고, 근래에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거의 전부 진품이라는 데 놀란다. 우리나라는 2,000년 전 삼국시대 초기의 유물도 많지 않은 것에 비하면 부러운 점이다.
기자에 있는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여 년 전, 즉 4,500년 전에 건설된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엄청난 숫자와 규모를 자랑하는 람세스 2세의 유물들을 생각하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람세스 2세는 제18왕조의 말기인 기원전 1303년(1290년이라는 설도 있음) 이집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프라메스는 원래 제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호르엠하브의 재상이었는데 1295년경 호르엠하브가 후손 없이 사망하자 파라오가 되면서 람세스 1세로 개칭하고, 새로운 왕조인 제19왕조를 세웠다.
람세스 1세는 1년 4개월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였고 이어서 그의 아들 세티 1세가 파라오가 된다. 아버지 세티가 즉위할 때 여덟 살이었던 람세스 2세는 열 살 때 이미 국방의 책임자 지위에 올랐다. 기원전 1279년 세티 1세가 50세의 나이로 죽자 람세스 2세는 ‘우세르-마아트-라’라는 이름으로 나이 스물넷에 파라오에 올랐다.
우와디 에세부아(Ouadi es-Seboua)의 신전에서 발견되는 기다란 리스트에 의하면 람세스 2세는 67년간 나라를 통치하면서, 최소한 정부인 6명이 있었고 후처 여러 명과 후궁들이 있으며 왕자 55명과 공주 55명이 있다. 그가 워낙 오래 살았기 때문에 많은 자식이 일찍 죽었는데 그가 88세(90세라는 설도 있음)경에 죽었을 때 13째 아들인 미네프타가 왕위를 계승했을 정도였다.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90년경 또는 기원전 1286년,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왕과 세계 전쟁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카데시 전투’를 벌여 이집트가 당대의 제국임을 세계에 알렸다. 카데시 전투에서 승리한 람세스 2세는 국내외 상황이 안정되자 곧바로 대형 공사에 착수한다(실제로는 무승부 또는 패배로 추정). 그는 북쪽의 나일 강 삼각주에 있는 타니스로부터 남쪽 누비아 지방의 아부심벨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전역에 걸쳐서 방대한 도시들과 기념물들을 건설하여 ‘건축의 대왕’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곳에서는 람세스의 치적으로 거론되는 아부심벨 신전과 카데시 전투의 개관에 대해서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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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람세스 2세 – 미스터리와 진실, 인물편, 이종호, 북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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