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미스터리와
진실, 인물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문화 인물 미스터리

생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귀족의 후손이었던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으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열두 살 때 리옹 근처에 있는 앙베리외의 작은 시골 비행장에서 작은 비행기를 졸라 탈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19년 해군사관학교에 응시했지만 구두시험에서 불합격했고 다음 해 파리미술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1921년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가 되었으며 1922년 전투중대 중위로 파리의 주 공항인 부르제에서 공군 2년차를 마쳤다. 이때 작가 루이즈 드 빌모랭과 약혼했지만 이듬해 파혼했고 6월에 전역했다.

전역 이후 사무원과 트럭 외판원 생활을 했고, 본격적으로 작가 수업을 한 것은 1923년부터였다. 1926년 툴루즈의 라테코에르사에 들어가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우편 비행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생애와 문학에 결정적인 전기로 작용한다. 당시의 비행기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으므로 많은 비행사가 추락했다. 그의 업무는 우편 비행과 함께 추락한 조종사들을 찾는 일이었다.

1926년 『르 나비르 다르장』에 단편 「비행사」를 발표했고 1929년에는 아에로포스탈 아르헨티나 영업부장이 되었으며, 과테말라 출신 문인 엔리케 고메즈 카리요의 미망인 콩수엘로와 만나 1931년 4월 12일에 결혼했다. 이해 모로코의 경험을 토대로 한 『야간비행』을 발표하여 페미나상을 받았고 덕분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1934년에는 에어프랑스사에 입사해 사이공에서 활약했고 이듬해에는 파리-사이공 비행 기록을 세우기 위해 이집트로 출발했지만, 12월 30일 카이로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해 5일간 걸어가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1938년에도 뉴욕에서 이륙해 비행하다가 과테말라에서 추락하여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이듬해 1939년에는 『인간의 대지』가 출간됐고 같은 해 6월 미국에서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프랑스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는 등 작가로서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 1생텍쥐페리 부부
    • 21933년 비행기 앞에서 찍은 사진
    • 3베스트셀러 작가로 최전성기를 누린 1939년에 찍은 사진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감돌자 1939년 9월, 생텍쥐페리는 공군 대위로 복귀한다. 그러나 예전 비행에서 당한 사고로 좌반신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신체검사에서 전투기 조종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비행기 조종이었다. 프랑스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배경을 활용하여 공군 장성과 장관 등에게 청을 넣은 것이 주효하여 1939년 말부터 1940년 7월까지 2/33 전투비행 중대 소속으로 복무하며 위험한 고공 정찰, 촬영 임무를 수행했다. 인기 작가였고 연령도 동료 비행사들보다 높았지만, 그는 스스럼없이 동료와 어울리며 악조건을 견뎌냈다고 알려졌다.

비행기 조종사로 사는 삶을 고수한 생텍쥐페리

ⓒ 북카라반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40년 7월에 전역한 생텍쥐페리는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 진영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의 승리를 위해서는 미국의 개입이 절대적이라고 확신했다. 자신을 프랑스와 동일시하는 드골에 대한 불신감이 깊었던 데다가, 드골의 자유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대독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자 생텍쥐페리는 미국의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한다. 그는 모로코, 리스본을 거쳐 1940년 12월 31일 즉 1940년 마지막 날에 뉴욕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생텍쥐페리는 사실상 망명자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한 달만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의 전쟁 참전을 독려할 예정이었지만, 프랑스로 돌아가도 뚜렷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데다 미국 내에서 인기 작가가 되어 있었으므로 결국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았고 아내 콩수엘로도 미국으로 오게 했다.

1942년 여름 생텍쥐페리 부부는 뉴욕에서 기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롱아일랜드 노스포트 근처 이튼네크로 옮겼는데 이 집이 『어린 왕자』의 사실상의 산실이다. 1943년 4월 레이널앤히치콕 출판사에서 『어린 왕자』 영어와 불어판이 출간되었다. 놀랍게도 이 당시 발간된 영어판 초판은 3만 부, 프랑스어판 초판은 7천 부였다. 프랑스에서는 생텍쥐페리가 사망한 1945년 11월에야 책이 발간되었다.

프랑스 파리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된 두 가지 버전의 『어린 왕자』(왼쪽 아래와 오른쪽 위)

ⓒ Harry Zilber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린 왕자』가 출간되어 인기를 끌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장기화하자 생텍쥐페리는 지난날 동지들이 있는 2/33 비행중대에 합류하기 위해 뉴욕을 떠나 1943년 5월 알제리에 도착했다. 당시 알제리의 드골 임시정부는 유명 인사 생텍쥐페리가 참전하지 않는 것을 빗대 공공연히 비겁자로 비방하며 그의 책 『전시조종사』의 판매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텍쥐페리가 친구에게 “왜 내가 전투 비행기에 몸을 싣고 순정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단 말인가”와 같은 말을 한 것을 볼 때 매우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1943년 7월 생텍쥐페리는 튀니스에 주둔하고 있던 자신의 옛 비행중대에 복귀했다. 조종사 연령제한이 30세 전후이므로 전투기를 타기에 그의 나이 44세는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그의 비행기 조종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생텍쥐페리는 이때 “나는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점쟁이들이 내가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동료 조종사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것이 훗날 그가 자살했다고 알려진 이유 중의 하나다. 결국 그는 프랑스의 코르시카에 있는 새로운 기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도 나이가 많아 부대의 주력기이자 초현대식 항공기인 록히드사의 P-38(일명 번개) 쌍발기를 조종하는 것을 거절당했으나 그의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과 귀족이라는 연줄을 이용해서 또다시 출격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두 번째 출격에서 착륙하던 중 활주로에서 벗어나 기체에 심한 손상을 입히면서 출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계속된 비행기 사고에도 하늘을 날겠다는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아 1944년 4월 정찰비행만 한다는 조건으로 비행중대에 다시 복귀했다. 6월 29일에는 출동 순번이 아님에도 자신이 잘 아는 지역 정찰이라는 이유를 들어 출동을 자원했고, 엔진 고장으로 이탈리아 제노아 상공까지 넘어가 격추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1944년 7월 31일 아침 8시 45분, P-38을 탄 생텍쥐페리는 스위스 국경 근처인 프랑스 동부지방의 그르노블-안시 지역 지도를 작성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코르시카의 포레타 비행장에서 이륙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예정된 기지 귀환 시각은 오후 1시 30분 무렵이었지만 생텍쥐페리가 조종하는 정찰기는 기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60여 년 동안 생텍쥐페리의 실종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자기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싸운 외롭고 용감한 조종사였다는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마지막으로 조종했던 기종인 록히드사의 P-38

ⓒ 북카라반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호 집필자 소개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Dr. Ing.)와 '카오스 이론에 의한 유체이동 연구'로 과학국가박사(Dr. d..펼쳐보기

출처

미스터리와 진실, 인물편
미스터리와 진실, 인물편 | 저자이종호 | cp명북카라반 도서 소개

람세스에서 메릴린 먼로까지 역사 인물에 얽힌 세계 미스터리의 진실과 거짓을 밝힌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에 입각하여 동서양을 넘나들며 신과 인류가 남기고 간 수많은..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미스터리와 진실, 인물편, 이종호, 북카라반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