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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보수·우익 여론을 대변하는 정통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정치 담당 선임해설위원인 피터 오본이 2015년 2월 공개적으로 낸 사직서 ‘나는 왜 텔레그래프를 떠났나’가 발단이 되어 영국 언론계는 물론이고 대기업과 정치권이 발칵 뒤집힌 사건을 말한다. 오본은 사직서에서 경영진이 광고 수입에 급급해 편집권을 훼손하고 언론 기능을 마비시키는 ‘치명적 순간’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본은 2012년 말 HSBC은행의 탈세 의혹 보도가 무마된 것을 편집권이 훼손된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그는 HSBC은행의 광고 중단 위협 때문에 회사 경영진이 편집진에게 의혹을 축소하도록 지시했다고 폭로하면서 “회사가 진실 보도의 의무를 저버리고 독자들에게 일종의 사기를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 BBC는 연일 관련 뉴스를 취재해 내보냈다. 경쟁지인 『가디언』은 “『텔레그래프』 사주가 운영하는 ‘요델’이라는 택배회사가 2012년 12월 에이치에스비시로부터 2억 5천만 파운드(약 4200억 원)의 대출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텔레그래프』와 HSBC은행의 유착 가능성을 제기했다.
『텔레그래프』는 2월 20일 1면에서 익명 기사를 통해 『더 타임스』의 모기업인 뉴스UK의 사업국 직원 2명이 자살한 사태가 광고주 업무와 관련 있다고 암시하고 『가디언』도 애플과 같은 거대 광고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쓴다면서 『더 타임스』와 『가디언』도 광고주에게서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고 역공을 가했다.
이에 앞서 『텔레그래프』는 19일 「독자들에게 드리는 약속」이라는 장문 사설을 내고 “우린 HSBC은행과 관련된 보도 방향, 방법 등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할 내용이 없다”며 “그동안 해왔던 대로 이번 스캔들 역시 다뤄왔다”고 말했다. 이어 “값싼 포퓰리즘과 냉소주의가 판치는 시대에 우린 상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탁월한 저널리즘을 지켜왔다”면서 “『가디언』이나 BBC, 『더 타임스』 등 다른 언론으로부터 저널리즘에 대한 강의를 들을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BBC·『가디언』·『더 타임스』가 이 사태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이유가 반기업 정서와 집권 보수당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이준웅은 “『텔레그래프』 편집국도 걱정이고 탐사보도의 정치적 동기도 궁금하지만, 이 사태는 이미 시작된 언론의 위기를 날로 보여주는 것 같아 우울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언론은 공영이든 민영이든, 아니면 어떤 종류의 혼합형이든 후원자 없는 사업모형을 유지한 적이 없다. 그런데 후원자의 영향력에 대해 투명했던 적도 별로 없다. 이제 언론사는 내용과 편집에 외부 압력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누구에게도 진정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편집국과 사업국 간 거리가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공중에게 내용과 편집의 방향성을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요점을 깨닫고 실천하느냐 마느냐가 존중받는 언론이 될 수 있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텔레그래프』 스캔들은 사실상 광고 편집권을 둘러싼 논쟁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언론도 광고 편집권을 두고 적잖은 논란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 터진 스캔들이지만 ‘『텔레그래프』 스캔들’은 결코 남의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이와 관련해 장행훈은 이렇게 말했다.
“피터 오본의 사직 선언을 읽으면서 한국 언론을 떠올렸다. 한국의 언론 상황은 영국 상황에 견줘 훨씬 더 자본의 영향력이 큰데, 한국의 언론 종사자 가운데서는 왜 저런 결단을 내리는 언론인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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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김유진, 「‘HSBC 탈세 스캔들’, 가디언 VS 텔레그래프 싸움 비화」,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20일.
- ・ 박순빈, 「[유레카] 언론의 상업주의」, 『한겨레』, 2015년 2월 23일.
- ・ 이재영, 「HSBC 탈세 방조 논란, 영국 일간지로도 불똥」, 『연합뉴스』, 2015년 2월 20일.
- ・ 이준웅, 「‘광고주 편향 기사’로 공격 받은 텔레그래프···“타임스·가디언도 똑같다”」, 『중앙일보』, 2015년 2월 24일.
- ・ 장행훈, 「광고주에 맞서 사표 던진 영 언론인」, 『한겨레』, 2015년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