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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위의 다양한 생물
우리나라 갯바위에 사는 90여 종류의 생물 가운데, 쉽게 볼 수 있고 동 · 서 · 남해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생물은 약 10여 종류 정도가 된다. 이 외에 갯바위 생물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돋보기로 좀 더 작은 생물까지 들여다본다면 우리가 갯바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생물의 종류는 2~3배로 껑충 늘어난다. 알면 알수록 자세히 보면 볼수록 끈질긴 생명력으로 뒤덮인 갯바위 생태계. 이번에는 갯바위의 가장 위쪽에서 아래로 여유 있게 살펴보며, 눈길 닿는 곳마다 어떤 갯바위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알아보자.
파도를 기다리며!
먼저, 갯바위의 가장 위쪽에는 얼핏 보면 이것이 거친 바위 표면인지 아니면 생물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작디작은 생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주로 크기 2~3mm의 조무래기따개비들이다. 이들은 거친 파도라 할지라도 작은 포말이 너무나 그리운 존재들이다. 갯바위 맨 위쪽은 파도가 잔잔한 어떤 날에는 며칠씩 바닷물을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몸의 뚜껑을 꼭 닫은 채로 언젠가 올 파도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메마른 갯바위에 밀착해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작은 생물들. 갯바위 상부 생태계는 이들보다 더 깨알 같은 생명들이 작지만 강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죽은 조무래기따개비의 빈껍데기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또 다른 작은 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크기 1mm 정도의 콩총알고둥이나 총알고둥의 어린새끼 그리고 좁쌀무늬총알고둥들이다. 이들에게 따개비가 남긴 빈껍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은신처가 되어, 혹시 모를 포식자와 큰 파도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
나름의 비법이 생존의 조건!
조무래기따개비들이 사는 곳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총알고둥과 바위게들이 인사를 건넨다.
이들 역시 하루에 한두 번 정도, 파도가 부서진 포말이 적셔주기만 하면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다. 총알고둥은 파도가 없는 날이나 갯바위 표면이 햇빛에 말라 있을 때는 꼼짝 않고 바위에 붙어 지낸다. 이럴 때는 자신의 몸속에 남아 있는 습기를 보존하기 위해 갯바위와 자신의 껍데기를 점액질로 밀봉해서 스치는 산들바람에도 몸속의 습기가 증발되지 않도록 막는다.
그러다,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처럼 파도의 포말이 갯바위를 적시면 그 때서야 서서히 바닥을 기어 다니며 갯바위 표면에 붙어 있는 이끼나 바닥의 돌말 또는 잎이 부드러운 해조류를 갉아 먹는다. 이때도 그냥 무작정 바닥을 기어 다니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치 자동차 엔진의 윤활유처럼 발바닥에서 점액질을 분비하여 좀 더 힘을 덜 들이면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총알고둥에게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면, 그 곁에 바위틈에서 뭔가 스치듯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좀 더 기다리며 바위틈을 유심히 살펴보자. 그러면 얼룩덜룩한 예비군복 컬러를 띤 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갯바위의 청소부 바위게다.
갯벌의 대표적인 게가 칠게와 농게라면, 갯바위의 대표적 게는 바위게다. 바위게는 분명 바다생물이지만 아가미와 입 주변에 있는 수분으로 오랫동안 공기 중에서 살 수 있는 ‘수륙양용’ 바다생물이다. 바위게는 이러한 능력으로 갯바위 이곳저곳을 다니며 무엇이든 잡아먹고 갉아 먹으며 갯바위를 청소한다.
또한 행동이 재빠르고 민첩해서 누군가 접근하면 좁은 바위틈 속으로 숨어버리거나 갯바위에서 몸을 날려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바위게를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총알의 복사판 총알고둥의 미스터리
총알고둥에 이름을 붙인 학자는 갯바위에 살고 있는 이 고둥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총알’이었을 것이다. 마치 권총의 총알을 연상시키는 총알고둥. 이들은 갯바위나 갯벌에 솟아 있는 암초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생물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온통 암초로 돼 있는 독도에는 총알고둥이 살지 않는다. 총알고둥은 암 · 수 딴몸으로 짝짓기 후에 부화된 수정난은 마치 비행접시처럼 생긴 플랑크톤으로 약 한 달간 물속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 기간 동안 태어난 곳에서 아주 멀리까지 해류를 타고 떠다니다가, 갯바위 바닥에 내려 앉아 일생을 보낸다.
그렇다면 독도 주변을 흐르는 해류는 제주도와 거제도를 거쳐 울릉도와 독도로 흘러가는데 ‘왜 독도에는 총알고둥의 새끼들이 갯바위에 내려앉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아직도 바다 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풀지 못하고 있는 미스터리이다.
물이 드나드는 명당자리!
바위게가 사는 갯바위 중간 정도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면 다양한 삿갓조개(배말이라는 종류도 있음)를 만날 수 있다. 삿갓조개가 사는 곳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다. 삿갓조개는 이름만 들으면 두 장의 껍데기를 가진 ‘조개’ 종류가 연상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엄연한 고둥이다.
우리바다에 살고 있는 고둥들은 몸의 형태와 아가미, 이빨(齒舌)의 모양에 따라 원시적인 종류와 고등한 종류로 구분된다. 그 중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고둥이 바로 삿갓조개와 전복이다. 둘은 친척 관계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삿갓조개나 전복으로 죽을 끓여 놓으면, 그 과정을 보지 않고는 죽의 재료가 무엇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바다에는 대략 30가지 종류의 삿갓조개가 있다. 이들의 외모는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나 좀 더 원시적인 삿갓조개는 껍데기 윗부분에 물이 빠져 나가는 구멍이 뚫려 있다.
삿갓조개 역시, 총알고둥과 마찬가지로 갯바위가 말라 있을 때는 꼼짝 않고 바위에 붙어 있다가 파도의 포말이 갯바위를 적시거나 밀물이 되어 갯바위가 바닷물에 잠기면 그 때서야 바위 표면을 기어 다니며 바닥의 돌말이나 해조류를 갉아 먹는다.
그러다 썰물 때가 되어 갯바위가 공기 중에 드러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신기한 귀소본능을 보이는데, 종류에 따라 바위 표면을 파내고 자기 껍데기 모양과 크기에 꼭 맞는 집을 짓고 물때를 기다리는 종류도 있다.
삿갓조개의 귀소본능
고주망태가 되어 아무리 술에 취해도 집은 찾아간다?! 과연 애주가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아니다! 갯바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삿갓조개(두드럭배말)도 자기 집을 잘 찾아가는 강한 귀소본능을 지니고 있다.
삿갓조개는 밀물이 되어 갯바위가 물에 잠기거나 파도의 포말로 갯바위가 촉촉하게 젖으면 바닥을 기어 다니며 열심히 먹이를 먹다가, 썰물 때가 되어 포말의 습기가 마르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원래 자기가 붙어 있던 위치로 돌아간다. 집을 찾아간 삿갓조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리에 껍데기를 단단히 밀착시킨 채로 다음 밀물 때를 기다린다. 여기서 삿갓조개가 보금자리를 튼 자리는 껍데기 안쪽 몸통에 있는 발바닥에서 산(염산이나 황산)물질을 분비한 후 껍데기를 바위에 비벼 그 크기와 모양에 맞게 만든 것이다.
바닷물이 적셔주는 치열한 경쟁사회
삿갓조개의 신기한 모습을 눈에 담아둔 채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언제나 바닷물에 닿아 있는 갯바위의 맨 아랫부분이 나온다. 이곳은 거의 바닷물에 잠겨 있는 지점으로 다양한 생명들이 바다의 촉촉함에 젖어 있기 위해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벌이곤 하는 곳이다. 주로 거북손과 굵은줄격판담치 등이 무리지어 생명의 꽃을 피워 내고, 여기에 녹갈색 해조류도 자리다툼에 한 몫을 보태며 강인한 생명력을 뽐낸다. 여느 갯바위 생태계는 또 다른 환경이 펼쳐져 있는 이곳에서 생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거북손은 따개비의 한 종류이다. 겉모습이 거북의 손과 발을 닮아 거북손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거북손은 따개비 중에서도 몸통 아래에 자루가 있는 종으로(유병류, 有柄類) 우리바다에는 대략 20여 종류가 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히 그리고 쉽게 볼 수 있는 종류가 갯바위 아래 바위틈에 단단히 박혀 있는 노란색의 거북손이다. 이동이 불가능한 거북손은 어떻게 먹이 활동을 할까? 이들을 살리는 것은 바로 밀려오는 파도다. 거북손은 주로 파도가 실어다 주는 플랑크톤을 먹는다. 거북손의 가슴다리는 가루를 걸러내는 ‘체’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가슴다리로 파도가 밀려올 때 재빨리 물속의 플랑크톤을 걸러서 배를 채우는 것이다.
거북손과 굵은줄격판담치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에는 이들 말고도 다양한 생물들이 바닷물이 안정되게 공급되는 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경쟁자들의 한 축에는 해조류도 끼여 있다.
해조류는 바다생태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1차 생산자로 먹이그물의 최하위를 차지한다. 갯바위는 풍부한 해조류가 있어 안정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해조류를 먹이로 해서 삿갓조개와 고둥이 살고, 이들을 잡아먹는 상위 포식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조류는 지금까지 만나본 갯바위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없어서는 안 될 구성원이다.
거친 갯바위에 붙어 줄기찬 생명력을 피워내고 있는 해조류는 그곳의 생물들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기쁨을 안겨준다.
갯바위에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톳과 풀등가사리가 싱싱하게 자라고, 큰 파도가 밀려온 다음에는 물 속 암초에 붙어살던 미역과 다시마가 떠밀려오는 행운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면 굳이 해녀가 되어 자맥질을 하지 않더라도, 해조류를 쉽게 채취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건져 올린 해조류는 건강한 먹거리가 되고, 시장에 내다 팔면 어민들의 주머니까지 두둑해진다. 갯바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생태계를 견고하게 다지는 해조류는 인간의 삶 또한 풍요롭게 가꾸며 바다에 푸르름을 더해준다.
부모님의 고향으로! 착저
착저(着底)는 해저에 붙어사는 바닥 생물이 어릴 때 플랑크톤 시절을 보내고, 자라서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인 바닥에 내려앉는 과정을 말한다. 바닥 생물은 보통 1주일에서 1개월 정도 플랑크톤 시절을 거친다. 이후 어미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와 착저를 한다. 그 시기는 종류에 따라 다르다. 착저는 어린 바닥 생물의 운명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앞으로 평생 동안 붙어 살아갈 환경이 결정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린 생명들은 어떻게 무사히 착저를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자신을 유인하는 다양한 단서를 포착해서 착저 시기와 장소를 결정한다. 그 단서는 ①어미의 존재(일종의 페르몬에 의한 유도), ②바닥을 구성하는 다른 종들의 존재 여부(예. 포식자 등), ③빛의 강도(수심에 비례), ④바닥 표면의 굴곡이나 종류(예. 자갈, 모래 등등) 등 안전하고 살기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한 조건들이다.
이를 위해서 바닥생물은 한 번 더 주도면밀한 탐색을 펼친다. 바닥에 붙기 전 마지막 단계에서 바닥을 천천히 기어 다니며 바닥을 둘러보는 포복기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는 적합한 장소에 내려앉기 전 물려받은 유전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빛의 세기나 바닥의 굴곡, 같은 종이 살고 있는 지 등 여러 가지 환경요인을 파악한 다음, 이 모든 조건이 적합하면 비로소 바닥에 내려앉는다. 실제 착저를 하는 대표적인 바닥생물인 따개비는 플랑크톤 시기에 예비동작으로 살짝 바닥에 내려앉은 다음 머리 쪽에 튀어나와 있는 촉각(안테나)을 이용해서 바닥을 점검하고, 앞으로 평생 붙어서 살아갈 최종 장소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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