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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시앵 레짐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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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789년 루이 16세의 삼부회 개최 결정에 따라 그 운영방식을 두고 벌어진 갈등과정에서 국민의회가 구성되었고 ‘봉건제 폐지’가 선언되었다.
앙시앵 레짐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전의 절대군주체제를 가리킨다. 루이 16세는 제1신분인 성직자, 제2신분인 귀족, 제3신분인 시민, 농민, 노동자들의 대표로 구성된 삼부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그 운영방식에서 1, 2신분은 신분별 투표를 원했으나 제3신분은 머릿수 투표를 주장했다. 1789년 6월 제3신분은 다른 두 신분과 달리 국민의회를 선언한 후 테니스코트의 서약 등의 저항을 통해 왕의 양보를 받아냈다. 결국 제3신분은 성직자 및 귀족의 동조자와 더불어 위로부터의 비폭력적인 혁명을 수행했다. 하지만 왕이 반혁명적 결정으로 반격하자 다시 파리 민중봉기로 저항했다. 국민의회는 8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선포하고 앙시앵 레짐을 종식시켰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e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 Jean-Jacques-François Le Barbier/wikipedia | Public Domain

1789년 혁명의 발생

1789년 삼부회를 열겠다는 루이 16세의 결정은 프랑스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문제는 삼부회의 운영 방식이었다. 과거처럼 신분별로 투표할 것인지 아니면 합동으로, 즉 머릿수로 투표할 것인지의 여부가 문제였다. 제1·2신분은 신분별 투표를 원했으나 대표수가 배가된 제3신분은 머릿수 투표를 주장했다. 1789년 5월 삼부회가 베르사유에서 개회되었을 때 귀족 대표는 성직자 대표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회의를 구성했으나 제3신분은 이를 거부했다. 그 대신 제3신분은 6월 17일 국민의회를 선언하고 다른 두 신분의 합류를 유도했다.

1주일 후에 150명의 성직자 대표가 합류했으나 귀족 대표는 이를 불법이라 항의했다.

왕이 제3신분의 회의실을 폐쇄하자 그들은 6월 21일 실내 테니스 코트에 모여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회합을 계속하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했다(테니스코트의 서약). 6월 23일 왕은 부분적인 양보와 더불어 회의는 신분별로 행할 것을 명령했으나 제3신분은 이를 거부했다.

이러한 완강한 도전에 기력을 잃은 왕은 며칠 후 귀족 대표에게 국민 의회에 합류할 것을 지시했다. 이리하여 제3신분은 성직자 및 귀족의 동조자와 더불어 위로부터의 비폭력적인 혁명을 수행했다. 국민 주권을 신봉한 제3신분 대표들은 국민의 대표로서 그들만이 주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1789년의 법률혁명이었다. 그러나 왕의 양보는 개혁을 원하는 애국파를 억압할 병력을 규합할 때까지의 전략적인 후퇴에 지나지 않았다. 7월 11일 왕이 인망있는 네케르를 해임하자 파리 시민은 이것을 반(反)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파리 시민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궐기했다. 7월 13일 파리 시민은 무기를 구하기 위해 무기상을 수색하고, 다음날 바스티유를 포위했다. 수비대는 항복하고 민중은 수명의 병사를 살해했다. 7월 14일의 파리 민중봉기는 국민의회를 해산의 위기에서 구출하고 혁명의 진로를 보다 더 적극적이고 민중적이며 폭력적인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한편 농민들도 반란을 일으켰다. 7월에 농민들은 귀족의 성을 습격하고 봉건적 의무를 기록한 문서들을 불살랐다.

이러한 농민반란은 '대공포'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체제

8월 4일 국민의회는 '봉건제 폐지'를 선언했다.

이 8월 4일 법령은 낡은 특권을 일소함으로써 국민의회로 하여금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수 있게 했다. 국민의회는 8월 27일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선포했다. 이 '인권선언'은 혁명의 기본 원리와 미래의 지표를 천명한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앙시앵 레짐의 사망 증서이기도 했다. 인권선언에 표명된 자연권사상은 혁명이 역사나 전통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이성에 입각하여 사회를 새롭게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1789~91년 국민의회는 제한군주정의 헌법을 제정했는데, 권력분립의 원칙을 채택했으며, 국왕에게 장관 임명과 해임권이 주어졌으나 주권은 입법의회에 귀속시켰다.

선거권은 최소한의 직접세를 납부하는 '능동 시민'에게 한정되고, 관직과 의원의 피선권에는 재산 자격이 설정되었다. 지방 정부와 행정에 관한 국민의회의 개혁은 혁명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 중 하나였다. 과거의 역사적인 지방 행정구역의 정치적 특성을 무시하고 의회는 전국을 83개의 도로 구분하고, 도는 다시 군과 읍, 그리고 촌락과 도시를 다 같이 지칭하는 코뮌(자치체)으로 구분했다.

혁명은 또한 낡은 사법제도를 보다 더 간편하고 편리하게 개혁했다. 국민의회는 절대왕정 붕괴의 요인이었던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교회 재산을 '국유화'하고, 그 토지 재산을 매각함으로써 국가의 부채를 상환했다.

불화의 씨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이로부터 소외되거나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일부 왕족이 나라를 떠나 최초의 망명자가 되었을 때부터 이미 반혁명파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혁명의 중요한 고비마다 새로운 망명의 물결이 일어났다. 프랑스 사회를 가장 심각하게 분열시키고 혁명에 대한 반대를 불러일으킨 것은 종교정책이었다. 의회는 주교관구의 수를 줄이고 그 경계선을 새로운 도의 그것과 일치시키는 한편, 교구 경계선은 지방 행정당국에 맡겼다. '성직자 민사기본법'(1790. 7)에 따라 주교는 도 의회에서 선출되고 교구 사제는 군 선거인에 의해 선출하게 되었다.

교황청은 이러한 조치를 배격했는데, 의회는 1790년 11월 모든 현역 성직자들에게 복종의 선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7명의 주교와 교구 사제의 54%만이 이에 응했다. 그결과 성직자는 '선서' 사제와 '비선서' 사제의 두 집단으로 분열되었다.

한편 자유언론과 정치적 클럽의 현저한 발전은 여론의 배출구를 마련했다. 이미 베르사유에서 애국파 대표들은 브르타뉴 출신의 뛰어난 제3신분 대표들을 중심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는데, 이 브르타뉴 클럽은 곧 자코뱅 클럽으로 알려지게 되고 1791년 중반에는 로베스피에르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코뱅 클럽은 보다 더 전투적인 좌파인 코르들리에 클럽의 압력을 받았다. 1791년 6월 21일 국왕과 그 가족은 국외로 도망가려다 바렌에서 발각되어 파리로 되돌아왔다. 이 사건은 혁명의 일대 위기를 조성했다. 의회 내의 온건파는 왕의 명백한 반역 행위에 애써 눈을 감으려고 했으나, 자코뱅과 코르들리에 클럽은 루이가 왕좌를 유지하는 데 반대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7월 17일의 민중 시위는 폭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의회를 지배하던 온건파는 이를 묵살하고 1791년 헌법을 완성시켰으며, 1791년 9월의 마지막 날에 국민의회(제헌의회)를 해산했다.

10월에 새로 선출된 입법의회가 개최되고, 1792년 4월에 프랑스는 오스트리아·프로이센 및 망명자들의 연합세력과 전쟁을 시작했다. 연합군이 프랑스 영토 내로 침입하고 입법의회는 의용병을 모집했다. 프로이센군 사령관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은 파리로 진격하면서 국왕에 반대하는 행위에 대해 위협적인 경고를 했다.

이 브라운슈바이크 선언은 파리 시민으로 하여금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게 했다. 1792년 8월 10일 무장한 파리 민중이 왕국을 습격하고, 앞서 파리의 혁명정부인 파리 코뮌의 왕권 정지 통고를 묵살했던 입법의회도 할 수 없이 왕권을 정지했다. 그날 밤 의원의 절반 이상이 파리를 탈출했으며, 남은 의원들이 성년 남자의 보통선거로 새로운 공화국 헌법을 기초할 국민공회의 선출을 결의했다(→ 색인:참정권). 제2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성직자 공민헌장(Civil Constitution of the Clergy)

ⓒ Luis Fernández García/wikipedia | CC BY-SA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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