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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 왕(481/482~511 재위) 때 로마 교회의 그리스도교는 갈리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8세기에 프랑크 왕국의 실권은 카롤링거 왕조로 넘어갔으며, 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샤를마뉴는 그리스도교권(敎圈) 서방의 대부분을 통합했다.
샤를마뉴는 800년 성탄절에 로마에서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았으며, 그의 제국은 서유럽 대부분 지역을 포함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843년에 제국은 동·중(中)·서(西) 프랑크로 분열했으며, 그후에도 통합과 분열이 거듭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중프랑크가 사라지고, 비만왕 샤를 3세(884~888 재위) 때 다시 통합되었으나 유명무실했으며 마침내 왕마저 폐위되었다.
로마령 갈리아에 게르만족이 정착함으로써 완전히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민족이 접촉하게 되었으며, 게르만족은 라틴어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농업이 주된 경제 활동이며 귀족의 거주지이자 수입의 주된 원천인 대영지는 오래 전부터 예속적인 농민의 경작에 맡겨졌다. 로마 제국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회의 주교제와 주교 관구제는 큰 변화없이 잔존했다. 4~5세기에 걸쳐 주교 관구는 여러 교구로 나누어지고, 6세기에는 수도원의 수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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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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