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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복고와 입헌군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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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8세(1815~24)는 혁명으로 야기된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앙시앵 레짐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과격 왕당파 사이에서 양자의 조정에 노력했다. 그의 동생 샤를 10세(1824~30)는 부활한 가톨릭 교회의 옹호를 받아 왕권신수설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이 18세

ⓒ Robert Lefèvre/wikipedia | Public Domain

1830년 왕은 의회를 해산하고 7월에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것을 명명했다. 선거 결과 반대세력이 승리하자 샤를은 새로이 선출된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권을 더욱 제한했으며, 출판의 자유를 억압했다. 이러한 조치들을 담은 7월 칙령이 26일에 공포되자 혁명이 발생하고 '영광의 3일'(7. 27~29)에 걸친 시가전이 벌어졌다.

7월 30일 왕은 악명 높은 총리 폴리냐크 공을 파면하고 7월 칙령을 폐기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샤를 10세는 퇴위하고, 8월 9일 의회는 오를레앙 공 루이 필리프를 입헌군주로 선포했다(→ 7월혁명).

새로운 체제는 7월 왕정 또는 부르주아 왕정으로 불린다. 왕권신수설 대신 국민주권의 원리가 확립되고, 사회의 중심은 지주 귀족으로부터 부르주아지로 이동했다. 1814년 헌법이 개정되어 선거권이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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