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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술

다른 표기 언어 occultism , 神秘術

요약 초자연적인 힘이나 존재에 대한 믿음·지식·관행을 포함한 광범위한 이론과 실천의 체계(→ 초자연주의).

주로 마술 또는 점술의 형태로 나타나며,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볼 때 이 세상의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고 있다. 신비술은 시술자 자신 또는 그의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법칙을 조작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데, 어떤 인류학자들은 마술과 종교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러 사회에 공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신비술로는 연금술(alchemy)·점성술(astrology)·점술(divination)·마술(magic)·마법(witchcraft) 등이 있다.

서구 신비술의 전통은 '비의철학'(秘儀哲學)에 연원을 두고 있는데, 비의철학은 헬레니즘 사회의 마술 및 연금술과 유대 신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헬레니즘 사회에서는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토스와 관계가 있는 〈헤르메티카 Corpus Hermeticum〉가 연금술의 원전이고, 유대 사회에서는 토라를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한 카발라가 중요한 원전이 되고 있다(→ 헤르메티시즘). 이 2가지 전통은 연금술을 낳게 되는데, 연금술은 17세기에 생겨난 장미십자회와 연합하여 일종의 영적인 연금술의 형태로 계몽주의 시대의 미신박해를 헤쳐나오게 된다. 18세기에 신비술은 밀교적인 성격을 가진 프리메이슨 운동으로 나타났고, 19세기에는 정통 종교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한 방편으로 행해졌다.

이러한 흐름의 일환으로 현대에서는 영매를 통하여 죽은 이의 영과 통교하는 강신술(spiritualism), 서양의 신비술과 동양 신비주의의 혼합형인 신지학(theosophy) 등이 새로운 형태의 신비술로 나타나게 되었다. 오늘날 신비술은 19세기보다는 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W. B. 예이츠, W. 칸딘스키 등의 예술에서 여전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연금술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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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연금술이라는 말은 그것보다 먼저 있었던 점성술과 연관되어 있는 사상 및 비술을 말한다. 점성술이 별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면, 연금술은 지상의 물체들과 인간의 관계를 살피고 있다. 이 둘은 인간의 삶이 창조자의 뜻에 의해 이끌려지고, 그것은 하늘에서나 땅에서 그 징표가 나타난다는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흔히 광물을 금과 같은 귀금속으로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말한다.

정의

연금술은 점성술과 함께 인간과 창조자 사이의 믿음과 징표에서 비롯되었다. 연금술사들은 광물들을 서로 반응시켜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냈다.

성격과 의미

연금술이나 점성술이 지구 여러 곳에 편만해 있는 것으로 보아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 유형인 듯하다. 그러나 중앙 아메리카(아스텍·마야)에서는 아직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지 않고 인도에서도 그리 많이 발견되지 않으나, 중국·그리스·이슬람 문명권에서는 많이 발견되고 있다. 연금술을 뜻하는 앨커미(alchemy)의 정확한 뜻은 분명하지 않다. 그리스나 중국에서는 단순히 '그 기술'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변화나 변형과 관계되어 있다.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광물은 수은과 유황이다. 연금술사들은 많은 광물을 황산염·백반·염화나트륨 등과 반응시켜 마치 화학 실험 같은 것을 했는데, 이러한 실험 결과 황산·염산·질산을 발견하게 되었다(야금술). 연금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중심 단어는 변환이다. 병에서 건강으로, 늙음에서 젊음으로, 지상적인 것에서 초자연적인 것으로 변환을 꾀하는 연금술은 자연히 부·장수·불사(不死)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
중국

중국의 연금술은 전국시대(BC 5~3세기경)에 시작되었으며, 나중에 도교 사상과 접촉되어 많은 발전을 하게 되었다(신비주의). 중국 최초의 연금술 문헌은 연금술을 〈주역〉의 64괘와 연관시켜서 설명한 〈주역참동계 周易參同契〉이며, 최초의 연금술사는 갈홍(葛洪:283~343)이다. 가장 유명한 연금술 책은 손사막(孫思邈:581~673경)이 쓴 것으로 알려지는 〈단금요결 丹金要訣〉인데, 이 책에서 그는 수은·유황·소금·비소 등을 가지고 불사의 영약(靈藥) 만드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연금약액). 유럽의 연금술이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연금술사와 영약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이들로 분열되어 있는 반면에, 중국의 연금술은 주로 영약 제조에 몰두했다. 이 차이는 아마 유럽에는 불사를 약속하는 종교가 있었던 반면에 중국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연금술은 영약의 부작용과 다른 의미에서 불사를 가르치는 불교의 유입과 함께 쇠퇴되었다.

인도

인도의 연금술은 힌두교의 고대 문헌인 베다에서부터 언급되고 있는데, 유럽이나 중국의 연금술과 달리 금 제조나 불사의 영약 제조보다는 특별한 질병의 치료약이나 장수 약품 제조에 관심을 두고 있다. 1100~1300년경 티베트 밀교가 발흥하자 종교적 신비주의와 결합하게 되었다(탄트라 힌두교). 중국과 달리 인도에서는 수은이 연금술에서 그리 중요시되지 않았다. 그대신 인도에서 많이 채굴되는 초석(硝石)이 중요시되고 있다. 또한 금속끼리 화학 반응을 많이 일으켰으나 산(酸)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집트

3세기경 이집트의 조시모스는 BC 300년경부터 시작된 헬레니즘 사회의 연금술사 중 가장 권위있는 연금술사였다. 조시모스에 의하면 '기본' 금속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귀금속(금)이 되어야 하는데, 이때 그 금속은 검정색·흰색·노란색·자주색으로 변화되는 단계를 밟아간다고 한다. 조시모스는 세상에 사람들이 원하는 물질로 만들 수 있는 어떤 원물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철학자의 돌'이라고 불렀다. 철학자의 돌은 결코 평범한 돌이 아니라, 저급하거나 병든 금속을 변화시켜서 온전하게 만드는 원물질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나중에 연금술이 인간의 병을 고치는 제약학으로 바뀌는 데 기여하게 된다. 중요한 연금술 문서인 '베네치아-파리 사본'의 저자 가운데 하나인 시네시우스는 연금술을 정신적인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아랍

아랍의 연금술은 시리아·하잔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중요한 문서로는 〈창조의 비밀서 Book of the Secret of Creation〉라는 책의 한 부분인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토스의 〈에메랄드 서판(書板) Emerald Tablet〉이다. 이 책에서는 증류법에 대해서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이 사상은 나중에 조시모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랍 연금술사들은 다른 지역에서와 달리 문자 그대로 금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아랍 연금술은 신비적이거나 종교적인 경향을 띠지 않았으며 의약학과 무관하게 발전했다. 가장 위대한 연금술사로는 알 라지(850~923/924), 자비르 이븐 하얀 등이 있다.

라틴

라틴의 연금술은 12세기경 스페인과 시칠리아의 이슬람 사회의 영향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라틴인들의 연금술은 주로 화학적인 의미에서 중요시되었는데, 로저 베이컨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1300년경에 이미 연금술의 변화 개념을 언급했다. 13세기까지 중요한 3개의 산인 질산·염산·황산이 발견되었으며, 이것들보다 조금 먼저 알코올이 발견됨에 따라 연금술사들은 장수의 영약 탐구에 열중하게 되었다. 중요한 연금술사로는 니콜라우스 플라멜, 요한네스 루페시사, 파라켈수스(1493~1541) 등이 있다. 파라켈수스는 특히 약학의 발달에 많은 공헌을 했다.

현대의 연금술

화학적인 방법으로 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였다. 그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연금술을 통해 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연금술에 대한 권력자들의 태도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금의 무분별한 생산에 대한 우려로 그것을 금지하는 것과, 더 많은 금을 소유할 목적으로 그것을 후원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연금술로 을 생산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18세기부터 연금술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근대 화학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이제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종교적 문제로 확연히 구별되었다. 그결과 17세기에 영적인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장미십자회 운동이 생겨나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켰으며, 오늘날에는 연금술이 주로 신비주의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연금술에 대한 평가

연금술사들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열등한 물질로 금을 만들어내려고 끈질기게 노력해왔다. 그러나 어느 것도 달성해내지 못했다. 그대신 새로운 실험 기구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물질들을 발견하는 등 근대 화학의 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화학의 발달에 대한 연금술의 공헌을 인정하고 있다. 1920년대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인 C. G. 은 연금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는데, 그는 연금술 문헌에 나오는 수많은 상징적 표현들과 정신병 환자의 꿈속에 나타나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의 연관성을 발견해낸 뒤 연금술 역시 '집단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점술과 점성술

개요

점술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미래를 예언하려는 기술 또는 작업을 일컫는데, 신을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신의 뜻을,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는 운명을 예측하고자 했다.

점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양·달·행성의 움직임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점성술이다.

성격과 의미

점성술은 천체의 운행이 지상의 4대 물질 요소인 불·공기·물·흙의 생성과 소멸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자연철학). 점성술은 본래 기계론적 우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신의 뜻은 논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점성술은 지역에 따라서 신의 개입을 인정하는 측과 인정하지 않는 측으로 나뉘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별의 운행이 신의 뜻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여 별의 징조를 살피고, 그것을 해석하여 질병, 재난, 군사적인 움직임 등의 문제에 관해서 왕에게 조언하는 제관이 있었다.

이러한 사상의 근처에는 별의 징조가 다만 하나의 지표가 될 뿐 결정론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점성술의 본래 목적은 사람의 출생시 또는 임신시에 혹성의 위치 및 12궁도의 위치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인생 항로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었다(황도대). 이외에 일식 또는 월식 등 특별한 천체현상을 통해 국가나 집단의 운세를 살피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인 발달과정

하늘의 징조를 살피는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은 나중에 엄격한 의미에서 점성술(12궁도를 살피는 것)과 합해져 한 분파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해·달·기후·금성의 상태를 보고 예언을 했다.

BC 18세기에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은 이집트에 영향을 미쳐 BC 5세기경부터 이집트에서 시작되었고, 인도에서도 BC 5세기경에 점성술 책인 〈에누마 아누 엔릴 Enuma Anu Enlil〉이 전해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리스에서도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으로 BC 2세기경에 시작되었는데, 점성술의 사상적 토대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과, 천체의 운행이 지상의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었다.

헬레니즘 시대(BC 3~AD 3세기)의 사람들 가운데는 대우주와 소우주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태양의 황도12궁으로 구분하고 각 부분에 12개의 서로 다른 별자리를 할당했다. 각 은 태양계 혹성의 집이 되며, 물질의 4요소와 각각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12궁의 각 부분에 해당하는 혹성의 움직임과 물질의 각 요소 등이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토대로 점을 쳤다.

점성가들은 어느 주어진 시점에서 각 별자리의 위치와 12행성의 경도 및 위도를 측정하여 천궁도(天宮圖)를 만들고, 이것을 별자리와 행성의 관계, 그것과 물질의 4요소와의 관계, 지상의 각 사건과의 관계 등을 참조해서 해독한다. 여기에서 자연히 갖가지로 달리 해석할 가능성이 생겨나므로 점성가들은 고객의 사회적·민족적·경제적 배경을 감안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로 해독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BC 100년경부터 내려오고 있는 점성술이다. 그러나 많은 점성가들은 좀더 정확하게 점을 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하여 병행하고 있다.

그리스의 점성술이 인도에 전파된 것은 2, 3세기이다. 그런데 기법만 전달되었을 뿐 철학적 토대는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인들은 점성술을 인도 사회에 맞게 변화시켰다. 인도인들은 복잡한 헬레니즘 점성술 체계를 보다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한편 페르시아에서 점성술은 사산 제국이 건설될 무렵(226)에 인도와 그리스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이란 종교). 이들은 점성술을 보다 긴 안목에서 관찰함으로써 발전시켰는데, 조로아스터교의 천년왕국시대 사상과 결합시켜 역사를 12개의 1,000년 시대로 구분했다.

이슬람 사회에서 점성술은 8, 9세기경 헬레니즘 사회, 사산 왕조 페르시아, 인도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점성가인 아부 마샤르는 천체가 지상의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신(新)플라톤주의와 페르시아의 1,000년 시대설을 받아들여 점성술이 아랍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풍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사에서 신의 개입을 부정했기 때문에 이슬람교 신학자의 공격을 받았으며 13세기 몽골의 침입 후 쇠퇴하고 말았다.

비잔틴 세계에서 5, 6세기에 이교사상이 급증하자 많은 점성가가 배출되었고, 8, 9세기 시리아어·아랍어 서적이 번역됨에 따라 점성술은 부흥하게 되었다.

14세기에 J. 아브라미우스와 그 제자들이 그리스 점성술 논문들을 쉽게 개정하여 재흥을 가져왔다. 여기에서도 점성술은 교회와 갈등으로 단속적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서유럽에서 점성술은 라틴 문명권보다는 그리스 문명권의 영향이 더 컸다. 가장 흥성했던 시대는 15, 16세기이며, 그후 17세기에 천동설이 천문학에 의해 부정되자 이제 점성술은 과학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날 점성술이 더이상 지식인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서구 사회에서는 점성술이 일반인들에게 흥미를 끌고 있다.

그것은 생일이 어느 별자리에 속하는가 하는 것을 찾아봄으로써 그의 운세를 점치려는 의도에서이다. 생일과 별자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수양자리(3. 21~4. 19)·황소자리(4. 20~5. 20)·쌍둥이자리(5. 21~6. 21)·게자리(6. 22~7. 22)·사자자리(7. 23~8. 22)·처녀자리(8. 23~9. 22)·저울자리(9. 23~10. 23)·전갈자리(10. 24~11. 21)·사수자리(11. 22~12. 21)·염소자리(12. 22~1. 19)·물병자리(1. 20~2. 18)·물고기자리(2. 19~3. 20) 등이다.

그러나 가상적인 황도의 분할과 인간의 운명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는 회의가 대두됨에 따라 점성술은 이제 단지 현대인들의 정신적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여러 가지 점술

개요

서구 사회에서는 점성술이 모든 점술 가운데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밖에도 많은 점술이 시행되어왔다.

점술이란 병·불안·분실물찾기 등 세속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초월적인 수단으로 정보를 얻으려고 행해지는 시도이다. 점술가는 샤먼이나 술객 등 개인적인 문제 해결에 치중하는 이들로부터 사제나 제관 등 공동체의 운명을 점치는 이들까지 다양했다(예언자). 서구 사회는 그리스도교 정신이 지배하고 있었으나 점성술이나 강신술 등의 점술 역시 계속 시행되어왔다.

점술의 구조

점술에서 세계관은 매우 중요하다.

점술가는 점술의 세계관을 통해서 점을 치기 때문이다. 모든 점술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점술과 일반 사람들 간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그 당시의 종교관과 과학을 참조하여 점술의 철학적 기반을 조금씩 변화시켜 왔다. 심오하거나 정교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삶과 미지의 세계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 사실은 어떤 점술이 다른 문명세계로 전파될 때 그 세계의 세계관에 맞게 변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점술의 유형은 순전히 기계적인 것으로부터 영감에 의한 것까지 매우 다양한데, 일반적으로는 양자를 결합해서 시행하고 있다.

좀더 세밀하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나뉜다. 추론적인 점술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에게는 어떤 결정인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결혼하려는 남녀의 생년·월·일·시를 맞추어보아 그 둘이 잘 살 것인가를 풀어보는 점술이 행해지고 있다. 또 과테말라의 마야 점술가들이 행하는 해석적 점술이 있다. 점술가는 병든 이의 몸에 여러 개의 계란을 굴려서, 계란에 난 흔적을 보고 병의 원인과 성격을 점치고 있다.

캐나다 알공킨 인디언들은 직관적 점술을 행하는데, 점술가는 외계의 존재와 통교함으로써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얻는다(신내림).

점괘가 고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과거에는 점술을 미신이며 비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속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점술은 문제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위기 상황의 본질을 규정하고 불안의 원천을 밝혀내어 거기에 알맞는 행동을 과감하게 하도록 합법화하는 기능을 지닌다.

점술의 여러 양태

점술에서는 극적인 효과가 매우 중요시되기 때문에 많은 도구가 사용된다.

특히 추론적 점술과 해석적 점술에서는 직관적 점술과 달리 인간적인 현상이 아닌 현상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추론적 점술은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살펴보고 점을 치는 것으로 매우 오래 전에도 있었다. 특히 하늘의 징조를 살피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관계가 있다. 점술가들은 하늘의 징조를 읽고, 거기에 덧붙여 기후적인 요인과 새들의 움직임까지 감안하여 점을 친다(복점).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점술이 희생제의와 결합되어 행해졌는데, 사제들은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에 대한 관찰을 위의 징조들과 결부시켜서 점을 쳤다.

한편 중국에서는 거북점을 쳤는데, 둥그런 등가죽에 생긴 징표가 네모난 배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등은 하늘, 배는 땅을 상징한다. 해석적 점술은 여러 가지 사건을 작위적으로 일으켜놓고 그것을 통하여 점을 치는 것이다. 이러한 점술 가운데는 죄인을 가려내기 위해 혐의자들을 불 속에 던지는 불점, 물에 뜬 물체들을 가지고 판단하는 물점, 제비뽑기로 점을 치는 제비점, 주사위등을 지도 위에 던져서 점을 치는 지리점, 고객의 몸을 보고서 하는 신수점, 고객의 골격을 보고서 하는 골상점, 꿈을 해석하는 해몽점 등이 있다.

직관적 점술의 원형은 샤먼이나 입신상태에서 병을 치료하는 치료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신내림). 점술가들은 입신상태에서 또는 희생 공양을 통해서 신을 성가시게 졸라대 필요한 점괘를 얻고자 한다.

오늘날 점술은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손금, 카드 점, 수정구슬점, 제비점, 강신술에 의한 점, 입신상태에서 예언하는 점, 점성술 등 많은 점술이 행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 현대사회가 매우 유동성이 많은 사회이고 경쟁이 심한 사회이기 때문에 그만큼 사람들의 불안이 깊어서 생겨난 현상일 것이다.

마술의 역사와 개념

성격과 의미

마술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비인격적이며 신비한 힘의 도움으로 인간이나 자연의 사건에 영향을 끼치려고 행해지는 제의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마술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술에는 아무런 문화적·신학적인 의미도 없고, 종교와 달리 마술은 신에게 간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조작을 함으로써 마술사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원시적이고 저급한 미신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에밀 뒤르켐이 주장한 대로 종교에는 신도들이 있으나 마술에는 고객만이 있을 뿐이라는 구분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외의 기준을 가지고 마술과 종교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마술은 마법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현대 인류학자들은 마술은 외부적인 힘을 사용하는 조작술이고, 마법은 개인의 천부적인 특질과 관계된 것이라고 구별하고 있다. 마술에는 어떤 좋은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백마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려는 '흑마술'(요술이라고도 함)이 있다.

역사와 분포

마술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종교체계의 한 부분이었다.

고대 사회에서는 특히 주문(呪文)에 의한 마술이 많이 행해졌는데, 사람들은 부·사랑·승리 등을 얻기 위해, 또는 마법이나 요술을 물리치기 위해 주문을 사용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신흥 도시가 건설될 때 주민들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마술을 많이 사용했다(로마 종교). 많은 사회적 변화와 변동으로 인해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거나 갈등이 많을 때 마술은 전통적인 사회에서 보다 더 많이 행해졌다. 마술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자 마술은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더 많이 행해졌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마술을 악마 또는 악령과 계약한 이단적인 술법으로 보아 탄압했다. 그나마 겨우 허용한 것은 연금술의 형태로 그리스도교의 전통 안에서 행해졌다. 문자가 없는 사회에서 행해지던 마술은 민속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는데, 그것은 서양의 종교재판 기록보다 마술의 실체에 더 깊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원시종교).

구조와 기능

마술은 어떤 사건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설명하거나, 바람직한 결과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의도에서 시행되고 있다.

제임스 프레이저는 마술이란, "어떤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상징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었던 전(前)과학적인 시대의 산물"이라고 했는데, 요즈음에는 그런 견해가 비판받고 있다. 멜라네시아의 트로브리안드 섬 원주민에 대해 연구했던 B. 말리노프스키는 마술의 3요소를 주문, 제의, 마술사의 상태 등으로 꼽았다.

주문은 마술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말리노프스키가 주장하듯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부 부족에서는 별로 중요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술을 종교로부터 엄격하게 분리시키고 있는 이들은 마술에서 제의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는데, 마술에서도 상징적인 제의는 매우 중요하다. 마술은 위험하고 감염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술사는 마술을 시행하기 전에 음식이라든지 성적인 접촉에 제한을 받는다. 그것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며 제의가 속된 행위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술의 기능에는 도구적인 기능과 표현적인 기능이 있다.

도구적인 기능은 다시 생산적·방어적·파괴적 기능으로 나뉜다. 생산적 마술은 좀더 많은 수확이나 어획을 위해서 행해지는데,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도 함께 깃들여져야 한다. 방어적 마술은 위험이나 병을 막거나 고치기 위해서 행해지는 마술이다. 파괴적 마술은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마술인데, 이 마술에 대한 두려움은 많은 반(反)파괴적 마술법을 만들어냈다. 마술의 표현적 기능은 흔히 상징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시술자 역시 즉각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행동을 사회와 통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사람이 기우(祈雨)의 마술을 할 때, 그것은 비가 그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나타내고 있다.

마술·종교·과학

마술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E. B. 타일러는 종교는 인격적이고 전능한 영적 존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마술은 비인격적이고 자연적인 힘을 대상으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둘째, 뒤르켐은 종교에는 신도가 있으나, 마술에는 고객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종교적 제의는 인간과 신 사이의 관계에 대한 믿음의 표현인 데 반해서 마술은 특정한 목적 달성에 몰두한다고 주장한다. 타일러와 프레이저는 마술에서의 어떤 행동과 결과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실제 세계에서는 그 둘 사이가 그렇게 직접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마술과 과학은 모두 인간의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서 행해진다(기술). 그러나 마술은 그것에만 몰두하지 않고, 상징적이거나 심리적인 목적이 있다. 그것은 원하던 것이 얻어지지 않더라도 마술이 계속 시행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마술의 주요이론

타일러는 그리스도교적 사고와 달리 마술을 미신이나 이교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 사고의 상징적 원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프레이저는 〈황금 가지 The Golden Bough〉(1890)에서 마술에는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낳는다는 유사성의 원리와, 부분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감염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뒤르켐은 마술이 사회의 결속보다는 개인의 목적 달성에 치중한다고 본 반면에, 래드클리프 브라운은 마술 역시 어느 한 사회가 중요시하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말리노프스키는 마술을 종교와 구별하면서, 마술은 주로 개인의 심리적 욕구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E. 에번스 프리처드는 마술 역시 어느 한 문화 및 종교와 더불어 통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마술에 대한 인류학적인 연구 외에 H. 스펜서, W. 분트, 로이, P. 래딘, 골덴바이저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했다.

마술이 종교적 사고 형성의 이전 단계라고 주장했던 프로이트의 주장은 한때 받아들여졌으나 오늘날에는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마법의 역사와 개념

개요

마법은 해롭고 악한 목적으로 초자연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마법사가 어떤 어렴풋한 충동이나 빙신(憑信) 상태에서 술법을 행하는 반면에 요술사(sorcerer)는 의지가 병들어 있는 상태에서 술법을 행한다고 구분하는 이도 있지만, 이 둘은 일반적으로 동의어로 쓰인다.

성격과 의미

마술에는 생산적·방어적·파괴적인 것이 있지만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요술 또는 마법은 그 자체가 반사회적이며 비합법적이다.

마법이나 요술을 통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은 마술과 같은 세계관과 우주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법에 대한 믿음은 과거 문자가 없던 시대에 극히 작은 여러 공동사회 속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데, 그것은 주로 어떤 사람이 불운을 당했을 때 그 불운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색인 사회통제). 이때 사람들은 마법사가 지팡이나 바구니를 타고 다니고, 개·고양이 등을 데리고 다니며, 신비한 영매를 사용한다는 등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에 덧붙였다.

마법은 어쨌든 사회적인 부조화나 변화가 심할 때 생겨났다. 마법에서는 자연히 어떤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꾸며냈다고 비난받는 희생양이 생겨난다. 마법사라고 하는 비난은 너무 치명적이어서 이러한 선고는 부족장 승계나 권력찬탈 등의 경우에 그 반대자들에게 주어졌다. 또한 갑자기 돈을 많이 벌었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해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반(反)마법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마법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원수가 되게 하는 힘이 있어서 사회 붕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법사의 특징에 대해서는 일관된 보고가 없다. 어떤 사회에서는 여성으로, 또다른 곳에서는 남성으로 간주되며, 호리호리한 체구나 뚱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회에서 마법사는 정신질환자나 중독자로 그려지지만, 정상인으로 나타나는 곳도 있다. 마법사가 되는 것은 대체로 유전적인 특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프리카 어느 지방에서는 수련을 통해서 마법사가 되는 곳도 있는 등 지역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사람들은 그들의 적대자와의 갈등에서 오는 긴장이 너무 커서 그것이 그 사회의 정상적인 갈등 조정기관(재판소) 등의 중재를 통해서 해결될 수 없을 때 마법사들을 찾아갔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런 마법이 매우 많이 행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이런 마법의 위협 아래서 살아갔다. 마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어떤 불운한 일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법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하여 삶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더 활기차게 살기를 원했다. M. 폴라니는 마법에서 이렇게 어떤 불운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에 대항하는 다른 마법을 쓰는 것을 '순환적 노력' 및 '중핵의 박탈'이라고 불렀으며, 과학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마법이 이교에 바탕을 둔 믿음에서 생겨났다거나 농촌의 미신에 기초한 '악마론'에서 생겨났다는 이론이 있었는데, 이제 이 이론들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외에 어느 지역의 마법 신앙이 전파된 것이라는 '확산론', 억압되어 있던 생존욕구 또는 복수욕망의 대치행위라는 '심리학적 이론', 사회적 긴장의 분출이라는 '사회학적 이론' 등이 있다.

역사적인 고찰

마술에 대한 믿음이 고대 중동 사회에 편만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악의적인 마법에 대한 두려움 역시 편만해 있었다.

히브리 사회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마법과 같은 뜻의 단어가 있었는가 하는 데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지만, 성서 여기저기에서 마법사 및 마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도 마법은 처형의 대상이 되었다. 게르만 민족의 마법사에 대한 공포는 매우 심해서 그것이 유럽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는 시민법과 교회법에서 때로는 사형으로 처벌하기까지 하면서 마법술을 금지했다. 그러다가 12세기경 서구 사회가 아랍 사회와 접촉하면서 잠시 마법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가 칙령을 발표하면서 다시 엄격하게 마법을 금했다.

이무렵 H. 크레머와 J. 슈프렝거는 〈마법사의 망치 Malleus maleficarum〉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이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악마론의 교과서가 되었다. 종교개혁을 전후해서 서구 사회에는 마녀사냥이 횡행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은 1692년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이다.

A. D. J. 맥팔레인의 연구에 의하면 마녀 재판은 서구 사회가 전통사회로부터 개인주의적 사회로 변천해가는 것과 관계가 깊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 다음에 옆집 노파의 청을 거절했다가 이후 불운을 당했을 경우, 그는 자신의 불운을 그 노파의 마법술로 생각하여 마녀사냥에 나서게 된다.

오늘날 세속 사회에서는 마법에 대한 믿음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러나 때때로 정치적·사회적 반대자 및 일탈자에게 과거 마녀사냥 때 자행되었던 폭력이 가해지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마녀 선고가 행해지기도 하는데, 하나는 이단재판의 형태로 나타나며 다른 하나는 지방의 소집단 사회에서 매우 가까운 혈연 또는 지연 때문에 평소에 긴장 해소가 되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진다.

문자가 없는 사회의 마법

마법의 본성과 기능에 관한 연구는 주로 문자가 없는 아프리카·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의 원시부족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A. C. P. 가미토, C. 클룩혼, M. 윌슨, C. 미첼, M. 슈바르츠 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나바호 인디언을 연구한 클룩혼의 주장에 의하면 마법술이란 끈끈한 인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원시부족에게서 긴장을 해소시켜 주는 심리학적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윌슨, V. 터너, 미첼, 슈바르츠 등은 마법술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했다.

이들은 마법술이 혈연이나 지연 때문에 인간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없는 사회 속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으며, 마녀 재판은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개편되는 와중에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연구로서 R. 윌리스는 마법술에 대한 신앙과 그에 대한 사회의 반발은 한 사회 속에서 세대간의 권력재편을 촉진시킨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마녀 재판을 통해서 과거의 사회 체계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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