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타일러

다른 표기 언어 Sir Edward Burnett Tylor 동의어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경
요약 테이블
출생 1832. 10. 2, 런던
사망 1917. 1. 2, 잉글랜드 서머싯 웰링턴
국적 영국

요약 타일러는 문화인류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인류학자이다. 다윈의 생물학 진화이론의 영향을 받아 문화를 진화적 관점에서 파악했으며 애니미즘 설을 제창해 종교의 기원을 설명했다.
경험적이고 사실적 자료를 준거로 삼으며 인문과학의 연구에 자연과학의 기준과 방법을 적용했다. 또한 인류의 모든 문화는 단일한 과정의 일부라고 보았으며, 원시문화와 현대문화 사이의 진화적이고 점진적인 관계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동시에 문화라는 개념을 기술적 도덕적인 것도 포함하여 총체적으로 파악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종교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 정의하고, 최초의 종교 형태를 애니미즘으로 보았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들을 인정받아 옥스퍼드 대학에서 최초의 인류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타일러(Sir Edward Burnett Tylor)

ⓒ Beao/wikipedia | CC BY-SA 3.0

개요

문화인류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며,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이론에서 영향을 받아 저술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에서 원시문화와 현대문화 사이의 진화적·점진적인 관계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1912년에 기사작위를 받았다.

초기생애와 여행

타일러는 퀘이커교도인 부유한 황동 주물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까지 퀘이커교도의 학교에 다녔으나 신앙문제로 인해 대학 진학을 연기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3세 때인 1855년에는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차 미국을 여행했다. 1856년 그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퀘이커교도이며 고고학자·민속학자인 헨리 크리스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 크리스티는 멕시코 계곡의 고대 톨텍 문화유적을 연구하기 위해 멕시코로 가던 중이었다.

둘은 곧 친구가 되었으며, 크리스티는 타일러에게 탐사여행에 동반할 것을 설득했다. 이 여행은 힘들고 때로 위험하기도 했지만 타일러는 톨텍 문화유적을 탐사하면서 크리스티의 노련한 지도하에 고고학적·인류학적 현지조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지속된 탐사가 끝난 뒤 타일러는 인류학 연구에 생애를 바칠 것을 결심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1858년에 결혼하고 얼마간 유럽을 여행한 후, 최초의 저서로 멕시코 탐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아나우악 Anahuac;or, Mexico and the Mexicans Ancient and Modern〉(1861)을 출간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알기 쉬운 여행기에 불과했지만 그가 원숙한 인류학자로 후기에 발표한 저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징들, 예를 들면 사실적 자료의 엄격한 취급, 문화적 차별에 대한 인식, 다른 문화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19세기 영국인의 탁월성을 드러내는 우연적인 착상과 경험적 방법의 결합 등을 보여주고 있다.

점진적 발전의 개념

〈아나우악〉을 발표한 뒤 타일러는 3대 주요저서를 출간했다.

저명한 인류학자로서 명성을 굳히게 된 〈인류의 초기 역사와 문명 발전에 대한 연구 Researches into the Early History of Mankind and the Development of Civilization〉(1865)를 통해 그는 고금 모든 문화는 단일한 인간사고사(人間思考史)의 일부로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상술했다. 그는 "과거는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며, 전체는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타일러의 명성은 주로 〈원시문화〉의 출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야만상태로부터 문명상태에 이르는 점진적 발전과정을 더듬어 나가면서, 원시인을 인간세계나 자연세계의 통제 불가능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성을 활용했던 철학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타일러는 최초의 종교 형태를 애니미즘으로 정의했는데, 그에 따르면 이는 원시인들이 살아 있는 육체와 시체의 차이, 꿈속에서의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단순하게 설명하고자 시도한 결과 나타난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었다.

〈원시문화〉는 또한 원시인의 삶과 현대인의 삶의 관계라는 중심적인 주제에 관해 상세히 고찰했다.

인간사회에 관한 오랜 경험으로 인해 우리의 철학에는 문화적 발전이라는 원리가 깊이 뿌리내려 있어 어떤 학파의 민족학자도 그에 대하여 거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개와 문명은 진보에 의해서든 퇴화에 의해서든 단일한 구성체의 저차적·고차적 단계와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화'는 제문명의 예술적·정신적 성과뿐만 아니라 모든 발전단계에서 형성된 인류의 기술적·도덕적 성과에서도 연구되어야만 한다.

타일러는 원시시대의 관습과 신념이 어떻게 현대세계에 잔존하고 있는지를 주목하고 이를 '잔존물'(survival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문화잔여). 인류발전에 대한 그의 진화론적 관점은 대부분의 동료들은 물론 인류발전의 핵심을 생물학적 진화원리로 설명한 찰스 다윈의 지지를 받았다.

평가

모든 인종이 육체적·정신적으로 단일한 종(種)에 속하는지의 여부를 놓고 정치적·신학적인 논쟁이 벌어졌던 19세기말에 타일러는 모든 인류가 육체적·정신적으로 통일되어 있음을 강력히 주장했다.

모든 인류학적 논쟁에서처럼 이 문제에 대해서도 경험적 증거에 준거하여 자신의 입장을 기초했는데, 이는 그가 인문과학의 연구에 자연과학의 기준과 방법을 적용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인류학, 인류 및 문명에 대한 입문서 Anthropology,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Man and Civilization〉(1881)는 19세기말 인류학의 성과와 과제를 훌륭히 요약하고 있다.

다른 저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타일러는 명확하고 열띤 문체로 광대한 양의 정보를 다루고 있다. 타일러는 1871년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1875년에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민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1883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대학 박물관 관장직을 맡았으며 1884년 인류학과의 리더, 1896년 최초의 인류학교수가 되었다. 1888년에는 애버딘대학교에서 최초의 기퍼드 좌(座) 강사로 선출되었으며, 1909년 은퇴했으며, 1917년에 죽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학자

학자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타일러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