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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721경, 이란 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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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815경, 이라크 쿠파 |
국적 | 아랍 |
요약 아랍의 연금술사, '아랍 화학의 아버지'.
자비르가 태어난 직후 그의 아버지는 우마이야 왕조 타파를 위한 아바스인의 음모에 가담한 죄로 참수형을 당했다. 자비르는 아라비아로 보내져 그곳에서 시아파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의학을 비롯해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두루 섭렵했다.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 왕조를 물리친 후 자비르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의 궁정 의사가 되었다.
자비르는 시아파의 6번째 이맘인 자파르 이븐 무하마드와 가까운 친구였고 그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비르는 2,000권 이상 되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의 이스마일리야는 그의 이름으로 많은 연금술 책과 신비주의 책을 출판했다. 14세기에 스페인의 한 연금술사는 자신의 원고에 제버(자비르의 라틴어 표현)라는 이름을 써놓았는데 이것은 자비르가 지은 것처럼 꾸며 보다 권위 있게 보이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비르의 저서 어디에도 그가 후대의 연금술사들에 의해 특별히 존중받을 만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의 명성은 대부분 자연에 대한 형이상학과 그의 독특한 문체, 강조법 및 사물에 관한 이론을 세웠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자비르는 모든 사물이 불·흙·물·공기로 이루어졌다는 그리스 철학을 수정했다.
그는 이 4가지 원소가 결합하여 황과 수은을 만들고 모든 금속은 이 두 물질이 여러 비율로 결합되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자비르는 황과 수은이 반응하면 신나바르(황화수은)라는 붉은 화합물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이상적인 비율을 알게 되면 여기서 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론은 널리 채택되었으며 변형되어 보급되면서 초기 화학에 큰 영향을 주었고 결국 플로지스톤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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