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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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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스웨덴어로 쓴 문학작품의 총체.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August Strindberg)

스웨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 P. S. Burton/wikipedia | Public Domain

고대 스웨덴어가 스칸디나비아의 공용어였던 고대 노르웨이어로부터 뚜렷이 갈라져나온 13세기부터 스웨덴 문학을 논할 수 있다. 중세 스웨덴 문학은 11세기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된 가톨릭으로의 개종 때문에 그 발전에 지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주로 라틴어가 문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고대 스웨덴어로 된 글 중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1220년대에 편찬된 법전 〈서고트 국법 Västgötalagan〉의 단편이다.

중세 기사시는 〈에우페미아의 노래 Eufemiavisorna〉(1303~12)에 처음 나타난다(→ 기사도). 14, 15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발라드에도 로맨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나, 외국에서 도입된 궁정의 사랑 이야기를 자국의 이교도적 주제 및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시키고 있다.

기사도(chivalry)

기사도 개념을 보여주는 그림

ⓒ Viktor M. Vasnetsov/wikipedia | Public Domain

16세기 스웨덴 문학

덴마크와 단교하고 구스타프 1세 바사가 왕위에 오른 1523년과,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루터 교회를 세운 1527년은 근대 스웨덴 역사가 시작되는 해였다. 종교개혁은 1500년대 스웨덴 문필계를 휩쓸었고 1541년 성서 번역이라는 중요한 업적을 낳았다(→ 루터교). 이로써 근대 스웨덴어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시인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성서 번역에 깊이 관여했던 스웨덴 종교개혁의 선구자로는 페트리 형제(올라우스와 라우렌티우스)를 들 수 있다. 특히 올라우스 페트리는 설교집뿐만 아니라 스웨덴 최초의 역사적 저작인 스웨덴 연대기를 출간했고, 또한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는 스웨덴 최초의 희곡 〈Tobie comedia〉(1550)를 썼으리라 추측된다.

종교개혁의 결과 당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 마그누스 형제(요하네스와 올라우스)가 추방되었다. 요하네스 마그누스는 모든 고트족 및 스웨덴 왕의 역사를 씀으로써 정사(正史)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용감한 왕들을 스웨덴에 소개했고, 올라우스 마그누스는 최초로 스칸디나비아 민족지리지 〈북방민족의 역사 Historia de gentibus septentrionalibus〉(1555)를 썼다.

17세기 스웨덴 문학

17세기 전반의 스웨덴 문학은 폭과 양에서 여전히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지만, 스웨덴 시에 새로운 자연감각을 불어넣은 라르스 비발리우스의 공헌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스웨덴이 30년전쟁에 관여하여 유럽 열강으로 부상함에 따라 민족적 긍지와 문화가 발전했고, 이는 당연히 문학에도 반영되었다. 이 시기의 뛰어난 작품이 예오리 시에른힐름의 비유적 서사시 〈헤라클레스 Hercules〉(1658)이다. 그의 추종자 가운데 콜룸부스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사무엘 콜룸부스는 〈스웨덴 송가 Odae sueticae〉(1674)와 시에른힐름의 성격을 조명한 산문일화집 〈Mål-roo eller roomål〉을 썼다.

시에른힐름의 경쟁자로서 잘 알려지지 않은 스코게체르 베리보가 쓴 〈베네리드 Wenerid〉(1680)는 스웨덴 최초의 소네트 시집이었다. 시에른힐름의 목표는 스웨덴의 문화적 유산과 대륙에서 들여온 고전주의의 이상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의 〈헤라클레스〉에는 그가 되살리고자 애쓴 고대 스웨덴 어휘로 가득하다.

콜룸부스도 〈스웨덴어의 탄식 Thet swenska språkets klagemål〉(1658)에서 보다 활기차고 유연한 언어를 요구했다. 민족적 긍지와 종교적 감정은 하쿠인 스페겔, 예스페르 스베드베리, 스웨덴 신비주의의 아버지 에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저작에 잘 결합되어 있다. 스페겔과 스베드베리의 새로운 찬가집(1695)은 스웨덴 국민의 시집이 되어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책에서 그려진 루시도르는 이 시대의 대조적인 분위기를 강렬하게 표현해주는 인물로, 그의 사랑의 노래와 주연의 노래에서 나타나듯이 이교적이고 방자했으나 찬가와 장송가에서는 경건한 신앙심을 보였다.

한편 웁살라에서는 페트루스 라게를뢰프가 스웨덴 문학에 순수한 고전주의 규범을 부과했고 올로프 베렐리우스는 아이슬란드 사가를 편찬·번역했다. 베렐리우스의 저작에 관심을 가지면서 스웨덴이 사라진 애틀란티스이며 서구 문명의 요람이었다는 이론을 전개한 사람은 올로프 루드베크였다. 그가 가설을 피력한 〈Atland eller Manheim〉(1679~1702)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범유럽적인 명성을 얻었다.

17세기 후반 스웨덴 문학에는 바로크와 고전주의 양식이 병행했다. 구노 에우렐리우스(구노 달시에르나)는 1697년 카를 11세의 장례식을 위해 정교한 서사시 〈왕의 찬가 Kungaskald〉를 썼고, 요한 루니우스는 18세기 초반 참담한 시기에 스웨덴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게 되는 그리스도교적 금욕주의를 앞서 표현했다. 야코프 프레세는 온화하고 보다 친밀감을 주는 시인으로 그의 서정시와 찬가에는 18세기 사상의 특징인 경건주의가 엿보인다.

18세기 스웨덴 문학

카를 12세가 죽고(1718) 그의 제국이 붕괴된 후 스웨덴에서는 점차 실용주의적 사상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상, 프랑스와 영국의 계몽주의를 보급시킨 뛰어난 인물은 올로프 폰 달린으로, 룬드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나중에 스톡홀름으로 건너가 영국인 조지프 에디슨의 모범에 따라 주간지 〈스벤스카 아르구스 Then swänska Argus〉(1732~34)를 익명으로 발행했다(스웨덴 계몽주의 시대).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시도된 언론지 가운데 하나인 이 정기간행물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서, 이제 정통설(正統說)은 회의주의와 계몽주의에, 바로크는 고전주의에, 독일의 영향은 프랑스와 영국의 영향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으며, 시민계급이 점차 문학에 있어 주요후원자가 되기 시작했다.

달린은 〈스벤스카 아르구스〉뿐만 아니라 〈말[馬] 이야기 Sagan om hästen〉(1740)에서도 비유적 풍자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의(擬)고전주의 희곡도 썼지만 다른 많은 18세기 초·중엽 희곡들처럼 학술적이고 생명력이 없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카를 이윌렌보리 백작이 쓴 〈스웨덴 멋쟁이 Den Svenska sprätthöken〉(1740)란 작품이다.

계몽주의의 2번째 단계에서는 루소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대표자는 헤드비그 샤를로테 노르덴플뤽트, 구스타프 필리프 크로이츠, 구스타프 프레데리크 이윌렌보리인데, 특히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르덴플뤽트의 서정시집 〈슬픔에 젖은 산비둘기 Den Sörgande turturdufwan〉(1743)와 크로이츠의 전원시집 〈아티스와 카밀라 Atis och Camilla〉(1762)가 중요한 작품이다. 산문, 특히 소설은 느리게 발전했으나 야코프 뫼르크와 안데르스 퇴른그렌이 쓴 〈아달리크와 이외틸다의 모험 Adalrik och Giöthildas äfventyr〉(1742~44)은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소설로서, 아이슬란드 사가의 영향을 보여준다.

18세기 스웨덴 저술가 가운데 범유럽적인 명성을 얻은 사람은 카를 폰 린네(린나에우스)와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뿐인데, 두 사람 모두 과학자였다.

문예 애호가였던 구스타프 3세의 이름에서 따온 구스타프 시대에는 왕의 후원에 힘입어 특히 연극이 발전했던 시기이다. 왕 자신이 초안을 잡은 사극 오페라 〈구스타프 바사 Gustaf Vasa〉를 완성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 시인 요한 헨리크 첼그렌은 스웨덴 문학이 프랑스 고전주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후에 볼테르의 영향을 받아 합리주의자가 되기 시작하면서 마지못해 선(先)낭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는 수도의 주요문학지 〈스톡홀름스포스텐 Stockholmsposten〉에서 재치 있는 풍자와 논쟁 능력을 발휘했고, 그가 죽은 후에는 카를 구스타프 아브 레오폴드가 그의 뒤를 이어 강단에서 의고전주의적 규범을 강요하며 자신도 그 규칙에 따라 수사적 송가와 비극을 썼다.

요한 가브리엘 옥센시에르나는 빈 주재 외교관으로 있을 때 가장 독창적인 작품을 썼다. 그의 〈추수 Skördarne〉(1796)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선낭만주의적 감정을 보여준다. 선낭만주의의 주요대표자는 벵트 리드너로서,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은 송가 〈스파스타라 백작 부인의 죽음 Grefvinnan Spastaras död〉(1783)이었다.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카를 미카엘 벨만은 갈등을 야기하는 당대의 관념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작품활동을 했으며, 해학이 뛰어나고 언어와 리듬 감각이 탁월하여 18세기 스웨덴 최대의 시인으로 꼽힌다.

그밖에 닐스 폰 로젠스테인, G.J. 아들레르베트, G.J. 에렌스베르드 등의 글에서 구스타프 3세의 궁정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구스타프 4세에 와서는 문예가 장려되지 않았지만, 안나 마리아 렌그렌의 뛰어난 풍자시와 프란스 미카엘 프란젠의 감상적 목가시 등이 나왔다.

19세기 스웨덴 문학

낭만주의

1804년까지 스웨덴이 겪은 정치적 변화에 따라 열렬한 민족주의가 스웨덴 낭만주의의 특성으로 등장했다.

이 운동의 핵심사상인 이상주의는 벤야민 회이예르의 칸트 철학 강의를 비롯하여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독일 낭만파의 영향을 받아 스웨덴 문학에 도입되었다. 많은 학생 단체가 낭만주의를 표방하며 기관지를 발행했는데, 그 가운데 〈포스포루스 Phosphorus〉(1810~13)의 '서시'를 쓴 페르 다니엘 아테르봄이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다른 한편 1811년 출범한 '고트협회'(Götiska Förbundet)는 과거 '고트'시대를 연구함으로써 사회를 도덕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인 에사이아스 텡네르의 시 〈프리티오프의 이야기 Frithiofs saga〉(1825)는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는 고대 북유럽의 신화·종교·철학·시가 하나로 나타나는 낭만주의 형이상학을 높이 평가했으나, 사상의 명료성과 형식적 완벽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때로는 전통주의자의 편에 서기도 했다. 주도적인 낭만파 가운데는 시로써 철학 체계나 역사 해석을 구현해보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야심적인 시도는 P. D. A. 아테르봄의 〈축복의 섬 Lycksalighetens ö〉(1824~27)이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아마도 학파나 문학 조류에 초연했던 에리크 요한 스탕넬리우스일 것이다. 그는 〈샤론의 백합 Liljor i Saron〉(1821)을 썼다. 후기 낭만파에서 가장 복잡한 개성을 드러낸 소설가는 카를 요나스 로베 알름크비스트로 산문의 대가였다.

그밖의 소설가로는 프레드리카 브레메르, 소피 폰 크노링, 에밀리 플뤼아레 샤를렝이 주목할 만하다.

사실주의의 출현과 시적 사실주의

1840~50년대의 문학은 주로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실주의는 느리게 진행되었다.

스칸디나비아주의라고 알려진 운동의 결과 많은 시가 나왔는데, 가장 열렬한 시인은 카를 빌헬름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였다. 아우구스트 블랑시는 스톡홀름의 생활을 해학적이고 생생하게 그린 단편집 〈삶의 풍경 Bilder ur vekligheten〉(1863~65)을 써서 널리 읽혔고, 프란스 헤드베리는 화려한 역사극을 썼다. 시적 사실주의가 공식 강령으로 등장한 것은 카를 다비드, 에드바르드 베크스트룀, 폰투스 비크너, 카를 스노일스퀴 등 1860년대의 '가명(假名) 시인들'에게서였다.

그 가운데 이 강령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기질과 시적 재능을 가진 사람은 스노일스키밖에 없었다.

현대 스웨덴 문학의 원천

스웨덴 문학은 영국의 찰스 다윈, 허버트 스펜서, 존 스튜어트 밀, 프랑스의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노르웨이의 헨리크 입센, 비외른스톄르네 비외른손의 희곡, 덴마크의 게오르 브란데스 등의 영향을 받아 경색된 인습에서 해방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현대문학의 최초이자 최대 작품이 스웨덴 최고의 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에게서 나왔다. 그의 〈올로프 선생 Mäster Olof〉(1872)은 최초의 현대 희곡이었고 그의 〈붉은 방 Röda rummet〉(1879)은 최초의 현대 소설이었다.

스트린드베리는 구스타프 아브 예이에르스탐(〈에리크 그라네 Erik Grane〉 1885), 안네 샤를로테 에드그렌 레플레르, 빅토리아 베네딕트손 등 1880년대 작가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스코네로부터 Från Skåne〉(1884) 같은 베네딕트손의 소설들은 새로운 지방주의 소설의 특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런 향토문학 작가로는 알베르트 보트와 올라 한손이 있었다.

1888년 베르너 폰 헤이덴스탐은 시집 〈순례와 방랑의 해 Vallfart och vandringsår〉를 써서 실용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을 시작했으며 후기의 시와 역사 이야기들로 19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오스카르 레베르틴, 구스타프 프뢰딩의 시는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프뢰딩은 에리크 악셀 카를펠트와 함께 향토문학의 대표자였고, 카를펠트의 완숙한 시는 1931년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주었다.

한편 스웨덴에 첫 노벨 문학상을 안겨주었던(1909) 셀마 라게를뢰프는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 Gösta Berlings saga〉(1891)를 필두로 여러 장편·단편 소설을 써서 스웨덴 산문을 발전시켰다.

그녀의 소설은 번역을 통해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밖에 재능 있는 작가로는 페르 할스트룀과 알베르트 엥스트룀 등이 있다.

핀란드-스웨덴 문학

19세기 핀란드에서 요한 루드비그 루네베리의 서사시 〈사슴 사냥꾼 Elgskyttarne〉(1832)·〈한나 Hanna〉(1836) 같은 중요한 스웨덴어 작품들이 나왔다.

그밖에 17, 18세기 핀란드-스웨덴의 역사를 낭만적으로 서술한 〈왕의 반지와 의사 이야기 Fältskärns berättelser〉(1853~67)의 작가 사카리아스 토펠리우스가 주목할 만하다.

20세기 스웨덴 문학

개요

20세기 초반은 스웨덴 문학사에서 데카당스와 염세주의 시대였다.

이런 분위기의 대표자로는 스웨덴 산문의 대가 얄마르 쇠데르베리와 특히 서정시에서 재능을 보인 보 베리만이 있었다.

현대 스웨덴 소설

스웨덴 소설을 발전시킨 소설가로는 구스타프 헬스트룀, 루드비그 노르드스트룀, 엘린 베그네르, 시그프리드 시베르츠를 꼽을 수 있다.

유럽과 미국, 영국에서 기자로서 활동한 헬스트룀의 대표작은 반어와 세부묘사가 뛰어난 〈레이스를 짜는 레크홀름에게 떠오른 착상 Snörmakare Lekholm får en idé〉(1927)이며, 보다 우아한 문체를 구사하는 시베르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이었으며 〈어느 게으름뱅이 En flanör〉(1914)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 가족 사가(saga) 〈강 아래쪽으로 Selambs〉(1920)일 것이다.

그밖에 노르드스트룀은 활력과 대담하지만 괴기스러운 해학으로 뛰어났고, 베그네르는 열렬한 평화주의자이자 여권론자였다.

1920년대의 뛰어난 소설가 얄마르 베리만은 생생한 상상력과 지칠줄 모르는 정력의 소유자였으며, 〈사자 이야기 Loewenhistorier〉(1913)·〈당신의 회초리와 당신의 몽둥이 Farmor och vår Herre〉(1921) 등의 소설 이외에도 〈스웨덴힐름 사람들 Swedenhielms〉(1925) 등의 풍자희극을 썼다.

한편 마르틴 코흐, 이바르 로 요한손, 얀 프리데고르드 등은 노동계급의 비참한 상황을 다룬 '프롤레타리아' 소설을 발전시켰고, 빌헬름 모베리는 미국으로 이주한 스웨덴 사람들을 다룬 〈이민자들 Utvandrarna〉(1949~59)을 써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에위빈드 욘손, 하뤼 마르틴손, 아그네스 폰 크루센시에르나 등은 자전적 소설의 발전에 한몫을 했다.

20세기 스웨덴 작가 가운데 국제적으로 유명한 페르 라게르크비스트는 195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청년기에는 대담한 실험정신을 보였으나 후기에 감탄할 정도로 순수한 문체를 구사한 그의 작품세계는 삶에 없어서는 안될 가치, 특히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서정시의 발전

서정시를 발전시킨 가장 주목할 만한 시인 가운데 하나인 빌헬름 에켈룬드는 청년기에는 스웨덴 상징주의의 주요대표자였으며 모더니즘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가장 인기 있는 시인으로는 단 안데르손, 비리에르 시외베리, 얄마르 굴베리를 꼽을 수 있으며, 194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난해한 시를 쓴 시인으로는 베르틸 말름베리, 에리크 린데그렌, 카를 벤베리를 들 수 있다. 20세기 스웨덴 최대의 시인 군나르 에켈뢰프의 첫 시집 〈지상에서의 최후 Sent på jorden〉(1932)는 스웨덴 초현실주의를 알리는 최초의 본보기였다.

현대의 문학

경향 예술적 형식을 중시하고 삶에 대해 개인주의적으로 접근하는 1940~50년대 문학에 대한 반동으로 1960년대 문학은 외스텐 시외스트란드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같은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정치적·사회적 참여의식을 강하게 내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와서는 사라 리드만, 스벤 린드크비스트 등의 경우처럼 다시 창작 문학으로 되돌아 오는 경향을 보였다. 정치 문학이 지속되는 가운데, 보다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도 나오게 되었는데, P.C. 예르실드와 스벤 델블랑가 좋은 예이다.

핀란드-스웨덴 문학의 발전

1920년대 서정시에서 모더니즘이 발전함에 따라 핀란드-스웨덴 문학은 제2의 융성기를 맞게 되었다.

에디트 쇠데르그란, 군나르 비외를링은 시인으로, 라베 엔켈은 핵심 이론가로 활동했고, 엘메르 딕토니우스는 정치적인 관심에 몰두했다. 이 시기의 가장 재능 있는 산문 작가로는 루나르 실트를 들 수 있으며 시기적으로 보다 늦게 등장한 작가 가운데는 티토 콜리안데르, 크리스테르 킬만, 토베 얀손이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특히 얀손은 동화의 나라 '무민트롤스'(Moomintrolls)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내어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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