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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역사.
고대
튀르키예의 국토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접점에 해당하므로 11세기에 터키 민족이 도래하기 이전부터 여러 민족이 살고 교류했으며, 문화의 접촉이 이루어지던 곳이고 많은 나라의 흥망이 있었던 곳이었다.
BC 6000년 아나톨리아 중앙부의 차탈휘위크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집락유적이 있었다. 동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트로이 제1기 문명은 BC 3500년경에 번영했고, BC 2000년경에는 청동기문화가 발달했다. BC 1650년경 히타이트 왕국은 세계 최초의 철기문화를 기초로 번성했다.
BC 1200년에는 트로이가 트로이 전쟁에 의해 그리스에게 멸망되었고 같은 시기에 히타이트 왕국도 트라키아에서 온 프리기아인들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BC 11~8세기에는 그리스로부터 이오니아인·도리아인이 살고 있던 에게 해, 흑해 연안까지 식민 활동이 활발해져 밀레투스·크니도스·시노페 등의 도시가 일어났다.
BC 730년 내륙부에 리디아 왕국이 탄생했으나 BC 546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리스의 식민도시를 포함한 소아시아 전역은 곧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BC 334~333년 소아시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고 대왕의 사후에는 페르가몬·카파도키아·셀레우코스 등의 왕국이 분립했으며, 또 소아시아 북동부에는 폰토스 왕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BC 2세기 후기부터 BC 1세기 전기에 걸쳐 로마에 의해 멸망되었고 그후 300년 동안 로마의 지배가 계속되었다.
AD 359년의 로마 제국의 분열에 때맞추어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콘스탄티노플(옛 비잔티움, 지금의 이스탄불)이 그 수도로 선정되었다. 동로마 제국은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7세기에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 이슬람(사라센) 제국으로부터 차례로 위협당했다. 뒤이어 11세기에는 중앙 아시아에서 일어난 셀주크족이 소아시아로 와서 동로마 제국을 제압하고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을 지배했으나 몽골족의 침입에 의해 14세기초에 멸망했다.
오스만 제국시대
중앙 아시아로부터 이주해온 투르크멘이 서부 아나톨리아 지방에 건국한 이슬람 왕조(1299~1922:줄여서 오스만 또는 오토만 제국이라고도 함)는 오스만이라고 자칭하는 이슬람 전사(가지)가 주도하는 작은 집단으로 출발해, 제1차 세계대전 후 멸망할 때까지 600년 이상 서아시아, 발칸, 북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을 지배해 세계 역사상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제국의 발전
1326년에 비잔틴 제국의 주도 부르사를 정복하여 수도로 정하고, 1354년 이후 발칸 반도로 진출했다. 1361년경 아드리아노플(지금의 에디르네)을 정복하고 수도를 이곳으로 옮겼다. 1389년 코소보, 1396년 니코폴리스, 1444년 바루나 전투에서 차례로 발칸 민족들의 군대를 격파하고 15세기 중반에는 불가리아·그리스·알바니아·세르비아 지역을 합병해 비잔틴 제국을 고립시켰다.
1453년 메메드 2세(1444~46, 1451~81 재위)가 인솔하는 오스만군이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여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자 이 도시를 이스탄불이라고 개칭하고 국내 각지로부터 투르크인·그리스인·아르메니아인 등을 이주시켜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그 결과 16세기 중엽 이스탄불의 인구는 약 50만 명이 되었고 유럽 최대의 도시로 군림했다. 이 기간 중 제국의 판도는 더욱 확대되어 15세기말에는 아나톨리아와 발칸의 대부분 지역을 평정했다.
16세기에 들어서서 시리아 방면의 소유를 둘러싸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대립하여 1517년에 셀림 1세(1512~20 재위) 지휘하의 오스만군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킴과 더불어 메카·메디나의 두 성도의 보호권을 획득했으며, 이것을 계기삼아 오스만 왕조의 지배자(술탄)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의 지도자 칼리프의 지위를 겸하게 되었다(술탄 칼리프 제도).
쉴레이만 1세(1520~66 재위)는 모하치 전투(1526)에서 헝가리를 복속시켰고 1529년에는 빈을 포위공격해 유럽 여러 나라들을 위협했으며 유럽의 정국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지중해 방면에서는 1538년 스페인, 베네치아, 로마 교황의 연합함대를 프레베자 해전에서 격파하고 튀니지·알제리를 합병했다. 또한 동방에서는 바그다드·바스라에서 지배권을 확립해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다. 이로써 지중해, 흑해, 홍해, 페르시아 만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동서와 남북에 걸친 국제 무역로를 장악하는 것에 성공해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제국 내의 제도
국내에서는 메메드 2세 이후 역대 술탄들의 카눈·나메라고 불리던 법전을 정비하고, 아나톨리아와 발칸에 사는 그리스도교도 소년을 강제 징용해서(데브시르메 제도) 술탄의 노예 신분에 있는 군인 또는 관료층으로 육성시켰다. 또한 이스탄불 등의 대도시에 설치했던 이슬람 고등교육기관(마드라사)을 통해 이슬람의 학문을 연수시켰고, 사법 및 지방행정을 맡겼다.
도시 사람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상공민은 길드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투르크 민중 사이에 침투했던 신비주의 종교단체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민중의 사회적 조직화에 공헌했다.
광대한 지배영역 전지역을 통해 역전제가 발달했으며 이와 함께 술탄이나 고급관료들은 도시나 대상로에 모스크, 대상 숙소, 교량, 학교, 병원 등을 건설했고, 유목민들이 말, 노새, 낙타 등 수송수단을 제공했다. 제국의 주요한 군사력을 이룩한 재향군인 단체는 티마르(군사봉토)를 받은 시파히(기사)가 주력을 이루었다.
국유지제도에 기초한 농촌사회에서는 6~15ha 정도의 경지를 보유한 소자영농민이 많았고 대토지소유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의 쇠망
17세기 이후 앞에서 서술한 제국의 번영을 지탱했던 제도가 붕괴되고 동서무역로가 지중해에서 인도양·대서양 경유로 전환하자 제국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이후 제국 내부에는 징세청부제와 대토지 소유가 보급되고, 이들을 기반으로 아인이라고 불리는 지주계층이 생겨나 술탄의 전제지배를 위협했다. 또한 19세기에 들어서 그리스도교도들인 피지배민족의 독립운동이 여기서 가세했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해서 술탄은 프랑스·영국 등 서유럽 나라들의 교육·기술·제도·법률을 도입하는 것으로 개혁정치를 단행했다(탄지마트).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제국의 경제는 유럽 제국에게 지배당하고, 발칸 제국은 제정 러시아 등의 지원을 받아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으며, 이집트 역시 무하마드 알리 왕조가 성립되어 사실상 독립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1908년 청년 장교의 주도로 민족주의적 입헌혁명인 청년 투르크당 혁명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이 독일편에 가담했다가 패배하자 아나톨리아는 연합국들에 의해 분할 위기를 맞고, 그리스군이 서아나톨리아로 진공했다. 이렇게 되자 케말 무스타파(케말 아타튀르크)의 지도하에서 투르크 국민은 오스만 왕가에 대해 반란하고 동시에 연합국에 대한 반제국주의 운동을 전개했다(투르크 혁명).
그결과 1922년 11월에 술탄제가 폐지되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해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성립했다.
공화국 발족 이후
1923년 앙카라를 수도로 하여 튀르키예 공화국이 발족하자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아타튀르크에 의해 정교분리, 로마자 채용, 태양력 채용 등 여러 가지 근대적인 정책이 추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일본에 선전포고하기까지 오랫동안 중립을 지켰으나 전후에는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맹하는 등 반공·친서방노선을 취했다. 1960년 군부에 의한 쿠데타 이후 1961년부터 제2공화제로 이행되었으나 테러가 빈발하는 등 계속 정정이 불안하던 중 1980년 9월에는 에브렌 군참모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쿠데타가 발발하여 국가보안평의회가 설치되었고 계엄령하에서 치안을 회복했다.→ 비잔틴 제국, 셀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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