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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루마니아 북서부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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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7,221,733명 (2012 추계) |
면적 | 100,287㎢ |
언어 | 독일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
대륙 | 유럽 |
국가 | 루마니아 |
요약
11~16세기에 헝가리의 일부가 된 후 17세기말에 헝가리에 반환되었다가 후에 루마니아에 편입되었다.
트란실바니아는 로마 군단이 270년경에 철수한 뒤 이민족들의 잇따른 침략을 받았다. 9세기 말 마자르족은 이 지역을 점령하여 헝가리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독특한 자치 단위로 발전했다.
1526년 헝가리가 투르크에 패한 뒤, 트란실바니아는 독립하여 투르크를 종주국으로 하는 자치 공국으로 바뀌었다. 종교전쟁이 잇따랐지만 내부 갈등을 딛고 국제적 중요성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루마니아와 트란실바니아의 통일을 선언했고 1920년에 연합국은 트리아농 조약에서 이 통일을 승인했다. 헝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트란실바니아의 2/5가량을 되찾았지만 1947년에 모두 루마니아에 반환되었다.
트란실바니아는 헝가리의 일부(11~16세기)가 된 뒤, 오스만 제국 안의 자치 공국(16~17세기)이었다가 17세기말에 헝가리에 반환되었다. 나중에 트란실바니아는 루마니아에 편입되었다(1918~20).
트란실바니아라는 지명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다. 트란실바니아는 북쪽과 동쪽은 카르파티아 산맥, 남쪽은 트란실바니아 알프스산맥, 그리고 서쪽은 비호르 산맥에 둘러싸인 지역이었다. 이웃한 마라무레슈 지방과 크리샤나 지방 및 바나트 지방도 때로는 트란실바니아의 일부로 여겨졌다.
다키아(게틱) 왕국(BC 1세기~AD 1세기)과 로마의 속주 다키아(106~)의 핵심을 이루었던 트란실바니아는 로마 군단이 270년경에 철수한 뒤 이민족들의 잇따른 침략을 받았다. 그후 로마화한 다키아 주민들은 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문화를 지키거나, 남쪽으로 이주했다. 그후 이 지역에는 도나우 강 남쪽의 로마화한 지역이나 발칸 반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다시 살게 되었다.
마자르족(헝가리인)은 9세기말에 이 지역을 점령했고, 전설에 따르면 헝가리의 왕 이슈트반 1세가 1003년에 트란실바니아의 토착 군주인 디울로를 무찌르고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고 한다. 마자르족은 이 지역의 정치적·경제적 발전을 촉진했다.
1241년에 몽골족의 침략으로 발전이 잠시 중단되었지만, 트란실바니아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로 남아 있으면서 그후 몇 세기에 걸쳐 특별한 지방 장관(또는 사령관), 귀족 계급, 그리고 독자적인 체제를 가진 독특한 자치 단위로 발전했다.
헝가리가 모하치 전투(1526)에서 투르크에 결정적으로 패한 뒤, 트란실바니아는 사실상 독립하게 되었다.
트란실바니아의 지방 장관인 야노슈 자포야는 헝가리의 왕으로 선출되자(1526. 11), 헝가리 왕위를 요구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 1세에 맞서 12년 동안 벌인 전쟁에 트란실바니아를 끌어들였다. 그후 헝가리 영토는 합스부르크 왕가와 투르크가 나누어 가졌고, 트란실바니아는 투르크를 종주국으로 하는 자치 공국으로 바뀌었다(1566). 그후 1세기 동안 바토리 왕조(1570~1613, 중간에 이따금 단절됨), 이슈트반 보치코이(1605~06 재위), 가보르 베틀렌(1613~29 재위), 디외르디 라코치 1세(1630~48 재위)가 차례로 통치한 트란실바니아는 독립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투르크 황제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사이에 싸움을 붙였다.
트란실바니아에서는 종교전쟁이 잇따라 일어났고 이것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개입을 초래했지만, 트란실바니아는 이런 내부 갈등을 딛고 국제적 중요성을 가진 세력으로 떠올라 합스부르크 왕가의 침범에 맞서서 헝가리의 자유를 지키는 수호자이자 동유럽 프로테스탄트교의 보루가 되었다.
디외르디 라코치 2세 시대(1648~60)에 투르크는 점점 강해지는 트란실바니아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트란실바니아에 매우 중요한 서부지역을 빼앗았고, 투르크에 순종하는 미하이 오포피를 그 지역의 군주로 앉혔다(1662). 그 직후 투르크는 빈 근처에서 패배했다(1683). 합스부르크 제국의 침략을 받은 트란실바니아인들은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종주권을 인정했다(1687). 트란실바니아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헝가리에 공식적으로 귀속되어, 황제가 임명한 총독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었다.
1699년에 투르크는 트란실바니아를 빼앗긴 것을 인정했고(카를로비츠 조약), 공국 안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1711년에 황제에게 굴복했다(소트마르 평화조약). 그후 1세기 동안 가톨릭의 압력과 관료 지배는 트란실바니아의 독특한 성격을 차츰 훼손했다.
마자르족은 공국의 독자적 행정을 포기하고 헝가리와 통합할 것을 촉구하는 강력한 운동을 벌여, 그렇지 않아도 쇠퇴하고 있는 세클러인과 색슨인 귀족들의 영향력을 무색하게 했다. 그결과 1848년에 일어난 헝가리 혁명 때 트란실바니아의 마자르족은 반란군으로 간주되었다(1848년의 혁명).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좀더 광범위한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던 루마니아 농민들은 마자르족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에 충성을 맹세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금 다짐함에 따라 트란실바니아는 헝가리에서 분리되어 엄격한 절대주의 통치를 받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로 바뀌었다.
그후 트란실바니아는 다시 헝가리에 흡수되었고(1867), 마자르족 주민이 우세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들은 루마니아와 트란실바니아의 통일을 선언했다.
1920년에 연합국은 트리아농 조약에서 이 통일을 승인했다. 헝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트란실바니아의 2/5가량을 되찾았지만(1940. 8, 빈 의정서), 1947년에 모두 루마니아에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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