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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의복은 그 시대의 정신과 예술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면에 의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19세기초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기 위한 일러스트가 고안되어 새로운 착상들이 빨리 전달될 수 있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복식사를 볼 때 어떤 스타일은 사라져버리는 반면, 어떤 스타일은 계속해서 다시 유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6세기 파딩게일로 대표되는 버팀살을 넣어 퍼지게 한 스커트는 18세기초에 다시 나타났고, 1850년대에 크리놀린으로 잠시 유행했다.
1920년대의 허리선이 내려간 짧은 스커트는 1960년대에 다시 유행했다. 복식이란 용어는 흔히 생각되는 셔츠·스커트·바지·재킷·코트 뿐만 아니라 모자·잠옷·운동복·코르셋·장갑·신발류도 포함한다. 그외에 각 시대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머리형·턱수염·콧수염·가발 및 화장품과 보석도 복식 유행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의 의복구성과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주는 복식사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의 의복을 예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대
서양 의복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는데 BC 3500~2000년에 메소포타미아의 남자와 여자는 랩 스커트(wrapped skirt)와 숄, 또는 술이 달린 옷을 주로 입었다.
BC 800~600년에 아시리아의 남녀는 재단하여 바느질한 튜닉을 술이 달린 숄과 함께 착용했다.
고대 지중해 연안의 다른 문명발생지보다 이집트 복식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풍부하다. 같은 시기의 메소포타미아인·이집트인·크레타인은 상호간의 복식 스타일에 있어서 영향을 별로 주고 받지 않았다. 고왕국과 중왕국시대에 이집트 남자들은 다양한 길이와 스타일의 랩 스커트를 입은 반면, 여자들은 시스 가운(sheath gown)을 입었다.
신왕국시대에는 얇은 주름을 많이 잡은 형태의 옷을 남녀가 같이 입었다. 대부분의 의복은 흰 리넨으로 만들었고, 다양한 모양과 색채의 장신구를 사용했다. 남녀 모두 가발, 접은 머리헝겊, 구슬로 만든 칼라를 착용했다.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에서는 재단하여 바느질한 복잡한 의복을 입었다. 여성의 의복은 다른 고대의 복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상의는 화려하게 장식하여 유방이 노출되도록 했고 허리는 넓은 벨트로 졸라맸다. 하의는 폭이 넓어지는 주름 잡힌 스커트를 착용했다. 남자들은 흔히 군장을 하고 가죽옷을 입었으며 전시에는 사람의 이와 털로 장식한 헬멧을 썼다. 이러한 군장은 그리스·로마에 계승되어 발전했다(미노아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의 의복은 육체의 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드레이프와 부드러운 천의 주름이 율동감과 리듬감을 주고, 옷을 입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를 준 데 특색이 있다.
그리스인의 공통되고 주된 의복은 리넨이나 모직으로 만든 키톤으로, 이것은 솔기가 없는 직4각형의 천을 어깨에 두르고 피불라(fibula)로 각 어깨를 고정시킨 것이다(키톤). 그 위에 벨트를 매기도 했다. 겉옷으로는 남녀 모두가 히마티온을 입거나 짧은 망토 같은 클라미스를 입었다(헬레니즘 시대).
로마인의 복식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반도문화를 선도한 에트루리아인의 복장을 알아야 한다.
이들 의복의 기본은 소아시아계의 튜닉과 그리스계의 키톤 및 숄이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숄형의 망토나 반월형의 케이프식 망토는 에트루리아인 고유의 조형감각 건축에 있어서도 아치형과 같은 새로운 형태를 창조했다. 이러한 에트루리아의 경향은 로마의 의복에 영향을 주었다.
로마 의복의 큰 특징은 사회적·직업적 신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로마의 시민복인 토가는 그리스의 키톤에 해당되는 것으로 에트루리아인에 의해 이탈리아에 소개되었다(토가). 이것은 남녀가 모두 입었으며, BC 2세기경부터 발달하여 안에 받쳐 입던 튜니카를 완전히 둘러쌀 정도로 커졌다. 또한 옷의 색상과 가장자리에 대는 장식도 감는 방법과 착용자의 직위에 따라 달랐다.
일반인들은 간단한 흰색 토가를 입었고, 황제 또는 상류계급 사람들은 클라부스(clavus)라는 자주색 띠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토가를 착용했다. 토가의 크기가 너무 커지면서 평상복으로 입기에는 불편하여 의식 때만 입고, 대신 토가 밑에 입던 튜니카를 평상복으로 입게 되었다. 튜니카는 그리스의 도리스식 키톤이 변형·발달된 것으로 원피스 형태이다. 그리스의 히마티온이 계승된 것으로 여자가 입는 것을 팔라(palla)라고 했고, 남자가 입는 것을 팔리움이라고 했는데, 그리스의 것이 직4각형인 데 비해 로마의 것은 반원형이었다(팔리움). 이것은 히마티온보다 훨씬 크고, 장식이 육중하고 복잡하며 모직물로 만들어서 왼쪽 어깨에 걸침으로써 오른팔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했다.
그리스의 키톤을 로마에서는 스톨라라고 했다. 남자들이 주로 튜니카를 많이 입었던 반면, 여자들은 튜니카보다 넓은 스톨라를 입었다. 로마 시대에 주로 사용된 옷감은 모직물·리넨·견직물 등이었다. 신발은 계급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며, 주로 샌들을 신었다 .
비잔틴 시대
비잔틴 시대의 의복은 유럽과 동방의 영향이 융합되어 독특했으며, 남녀 모두 긴 소매가 달린 로마 스타일의 튜닉과 그 위에 팔루다멘툼이라는 반원형의 망토를 입었다.
이 망토는 오른쪽 어깨를 보석으로 고정했고, 앞면에는 권위를 상징하는 클라부스를 댔다. 성직자가 입던 달마티카는 십자형의 천 가운데에 구멍을 내어 머리가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소매 밑과 양옆을 꿰맨 형태였다.
직물은 동양에서 들여온 견이나 리넨을 사용하고, 다마스크·브로케이드 등과 함께 자수 및 보석(특히 진주)을 많이 썼다.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교의 금욕적이고 권위적인 영향으로 몸을 노출시키지 않았으나, 그후의 서양 의복은 점차 몸을 노출시키거나 몸매를 강조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중세 전기(8~11세기)
이 시기의 기본 의복은 튜닉·맨틀·양말·베일·모자였다.
남녀 모두 속에는 언더튜닉, 겉에는 튜닉을 입었으며 그 위에 맨틀을 걸쳤다. 남자는 하의로 속바지와 겉바지를 입고 긴 양말·삭스·페둘(양말과 부츠의 결합물)을 신거나 레그밴드를 착용했다. 10세기의 남자옷은 몸에 꼭 맞게 재단되기 시작하여 12세기에는 몸의 선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변했다.
11세기초에는 상체가 꼭 맞고 소매끝이 넓으며, 스커트 부분이 길고 넓은 블리오라는 튜닉을 입기 시작했다.
중세 후기(12~14세기)
중세 후기의 유럽은 약 200년간에 걸친 십자군 원정의 결과 전환기를 맞이했다.
12세기에 유행한 것은 로마네스크 스타일로서 얇고 부드러운 직물의 스커트 부분은 화사한 드레이퍼리의 미를 살렸다. 그러나 12세기초에는 전(前) 세기에 대한 반동과 흑사병의 재난으로 인해 의복이 소박하고 헐렁했다. 그후 13세기 후반에는 다시 인체의 윤곽을 드러내는 옷을 입게 되었다. 13세기의 새로운 옷으로는 서코트를 들 수 있다. 14세기에는 색이 다른 옷과 문장복이 유행했으며, 15세기에는 남녀 모두 우플랑드(소매와 폭이 훌렁훌렁하고 두꺼운 나사 외투)를 입었다(르네상스).
근세
16세기 의복의 특징은 슬릿(소매·옆구리 등의 튼 곳), 날개 모양의 어깨장식, 퍼프(puff) 장식 등이다.
또한 지금까지 길이를 강조하던 유행이 부피로 옮겨져, 옆으로 벌어지고 당당한 위엄을 보여주는 로브(robe)를 입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여성들은 파딩게일을 입어 스커트를 부풀렸다(후프 스커트). 17세기에는 바로크 스타일이 유행하여 보다 부드럽고 넉넉한 복장이 등장했다.
이 시대 여성복의 종류로는 드레스와 페티코트, 그 속에 입는 슈미즈, 몸매를 다듬기 위한 코르피크(corps-pique) 등이 있다. 여성의 의복에 부드러움이 강조되다가 17세기 후반에 다시 꼭 끼는 형이 유행한 반면, 남성의 의복은 계속 기능적으로 간편해졌다. 18세기에 루이 15세의 정부 퐁파두르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유행의 선두주자로서 그들의 복장은 프랑스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파급되었다. 로코코 스타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복식은 여성적인 우아한 요소가 가미되어 허리는 코르셋으로 건강을 해칠 정도로 조이고, 스커트는 파니에(panier)라는 버팀대를 사용하여 넓게 했으며, 머리는 크고 높게 장식했다.
이때는 특히 흰색이나 회색으로 분칠한 머리가 유행했다. 기본적인 남성복 형태는 17, 18세기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나 시대의 취향이 반영되어 여성복처럼 허리가 약간 들어가고 밑단으로 가면서 퍼져나가는 실루엣으로 변했다. 한편 영국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의복은 그 형태가 간단해져 기능성이 강조되었으며, 여성의 경우 잠옷 같은 것이 집에서 착용되었다.
근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의복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제까지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귀족풍의 의상이 매우 간소한 복장으로 대치되기 시작했다. 이때 최상의 이상적 복식으로 등장한 것이 고대 그리스풍의 복식이었다. 이 시대에 여성복에서 귀족의상의 주요소이던 가는 허리, 부풀린 스커트, 높은 머리형은 유행에서 사라지고 하이웨이스트와 규칙적인 주름에 의해 전체적으로 길고 날씬하게 만든 엠파이어 스타일이 유행했다. 남성복의 특징은 색상이나 감에서 나타나 검은색이 유행했고, 18세기에는 짧고 꼭 끼는 퀼로트(culotte) 바지가 길고 헐렁한 판탈롱으로 바뀌었다.
이어서 왕정복고시대에는 로맨틱 스타일이 유행하여 다시 가는 허리와 부풀린 스커트·소매 등이 나타났다. 1830년대 여성복의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오랫동안 남자전용으로만 생각되어왔던 바지가 스포츠의 영향으로 여성들 사이에서 착용되었다는 점이다. 1848년 이후에는 크리놀린 스타일이 등장하여 옷의 형태를 부풀렸고, 이것은 다시 버슬 스타일과 S자 스타일로 변했다.
버슬 스타일은 엉덩이 뒤를 부풀린 것으로 스커트 버팀대를 엉덩이 쪽에 대어 돌출시킨 것이다. S자 스타일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강한 코르셋으로 허리에서 엉덩이에 걸쳐 S자형이 되도록 압박한 것이다.
19세기말 의복의 특징은 대량생산과 형태의 규격화에 있다. 이 기성복의 발전에는 이미 출현한 재봉틀 및 패턴(pattern:재단용 종이옷본)이 크게 작용했다.
현대
20세기에 고도로 기계화된 방적업과 발달된 염색법, 그리고 화학섬유의 발달로 복식에 큰 변화를 보였다.
2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의복이 합리적·활동적으로 변화했고, 더불어 자본주의 이념에 따른 상업적인 이윤 증대를 위해 유행이 빨리 변하게 되었으며, 기업화된 생산체계 속에서 전문 디자이너가 큰 활약을 하게 되었다. 서유럽의 복식유행은 세계 각국으로 빨리 파급되었는데, 이는 방송통신매체와 사진의 확산, 영화의 출현 등에 의한 것이다.
20세기초에 선구적 역할을 한 디자이너는 폴 푸아레와 마들렌 비오네로 그들은 호블 스커트, 하렘 스타일, 미나레트튜닉 스타일, 기모노 스타일 등 새로운 모드를 많이 발표했다.
또한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대됨에 따라 더블 칼라의 재킷과 롱 스커트를 함께 입는 테일러드 슈트(tailored suit)가 애용되어 여성 상의가 남성 상의와 비슷해졌다. 활동적인 스포츠 웨어로 바지도 여성들에게 애용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로 웨이스트 실루엣이 유행하다가 그 추세가 더욱 강해져 가슴을 평평하게 하고 허리곡선을 완화시킨 튜뷸러 실루엣(tubular silhouette)인 보이시 스타일(boyish style)이 등장했다.
1925년경에는 주름이나 리본, 짧게 너풀거리는 스커트 등 여성복의 특징을 살린 가르손 스타일이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이라는 군대복장 스타일이 유행했고, 전쟁중 나일론의 공업화가 진척되어 가볍고 손쉬운 세탁 등 의복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45년 파리에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고급 의상점'이라는 뜻)가 생겨 1년에 2회씩 정기적으로 의상발표를 하면서 세계 유행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프레타포르테(Prêt-à-porter:'고급 기성복'이라는 뜻)가 나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착용되었다.
194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뉴 룩(new look)의 발표를 시작으로 하여 A라인·H라인·Y라인·F라인 등을 선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여성복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지착용이 일반화되었다는 점이며, 바지는 정장 슈트의 감각으로까지 애용되었다.
1960년대에는 기성복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1965년 미니스커트의 출현과 더불어 남녀 공용의 블루진이 유행했다. 20세기초의 남성복은 형식적인 스타일에서 조금씩 벗어나 프록 코트는 자취를 감추었고 넓은 바지가 유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좁은 바지의 유행,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입는 셔츠, 다양한 스웨터 등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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