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개요
서양식 의복은 사실상 전세계적으로 착용되고 있지만, 일본이나 한국을 포함한 동양문화권에서는 다른 형태의 의복도 꾸준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의 전통의복은 중국의 영향이 크나, 그들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발전했다.
중국
BC 2000년 이전에 중국인들은 견직물을 사용했고, 한(漢)나라(BC 206~AD 200) 때의 그림과 조각을 통해 파오라고 불리는 소매가 넓은 옷이 착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644년까지 계속되었고, 8세기에는 일본에 소개되어 일본의 기모노에 영향을 주었다. 1644년 이후에는 만주족에 의해 챠우푸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관복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길고 좁은 소매를 가진 형태로 색깔이나 도안에 의해 입는 사람의 신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냈으며, 높은 신분의 여성만이 챠우푸를 착용할 수 있었다. 이 밖에 높은 신분의 남녀는 일반 관복으로서 치푸(용파우, dragon robes)와 겉옷으로 푸푸를 착용했다.
한편 창푸는 모든 신분의 사람이 착용했는데, 이것은 후에 현대 중국인의 옷으로 발전했다.
일본
초기 일본의 의복은 3~5세기의 묘지에서 발견된 조각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투피스 형태였다.
남성은 엉덩이 길이까지 오면서 퍼지는 형태의 상의인 기누와, 발목을 묶는 넓은 형태의 바지인 하카마를 착용했다. 여성들은 같은 스타일의 상의에 '모'라고 불리는 주름 잡힌 스커트를 입었다. 일본은 나라 시대(710~784)에 이르러 중국의 관복인 파오를 받아들였다.
12세기에 다른 형태의 의복으로서 나타난 것이 관인의 일상복인 '노시'와 '가리기누'(사냥복)이다.
이것은 풍성한 상의와 더불어 헐렁한 바지를 발목에 묶어 착용했다. 나라 시대 일본 여성에 의해 착용된 기모노는 당나라의 여성들이 입던 파오와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모노가 일본인의 의복으로 정착한 것은 17, 18세기에 염색과 디자인이 두드러지게 발달하면서부터이다. 현대의 넓은 오비는 18세기초에 처음 등장했고, 이때 여성들은 짧은 '하오리'를 입기 시작했다.
면으로 만든 기모노인 '유카타'는 원래 목욕 후 실내에서 입었던 것으로 후에는 거리에서도 착용했다.
남아시아
남아시아의 힌두교도는 약 2,000카스트(계급)를 포함하며, 각 카스트마다 의상이나 장식품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의상은 매우 복잡하다.
현대 인도의 남성은 도티, 여성은 사리를 입는데 이것의 기원은 BC 2세기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대에는 남녀 모두 긴 천을 가지고 엉덩이 주위를 감아 다리 사이로 늘어뜨렸고, 상의는 남녀 모두 입지 않았다.
남성은 커다란 터번을 썼고 여성은 긴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길게 늘어뜨렸으며, 많은 양의 보석장식품을 달았다. 이러한 스타일은 12세기에 이슬람교도가 북부와 중부를 지배하면서 될 수 있는 한 온 몸을 천으로 가리는 변화를 가져왔다. 한편 남부 인도는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아 도티와 사리를 계속해서 착용했고, 여기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여성의 경우 사리와 함께 짧은 콜리 스타일 재킷이나 허리길이의 상의를 입었다. 남성은 흰 바지 위에 길고 넓은 스커트 형태의 옷을 흰색 면으로 만들어 입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