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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탈리아 에트루리아(아펜니노 산맥의 서쪽과 남쪽에 있는 테베레 강과 아르노 강 사이의 지방)에 살던 고대 민족.
이들의 도시문명은 BC 6세기에 절정에 이르렀다.
이들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반도에서 세력을 잡은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 문화의 많은 장점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역사시대의 에트루리아 귀족계급은 BC 800년에 소아시아에서 에트루리아로 침입해 들어와 그 지방의 철기시대 원주민들을 지배하게 된 종족의 후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학자들이 에트루리아 언어를 번역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들의 기원에 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원이 어떻든 BC 7세기 중엽에 이르러 에트루리아의 주요성읍들이 세워졌다.
에트루리아족은 북쪽으로 아르노 강까지 진출해 토스카나 전역을 영토로 차지할 때까지 일련의 정복활동을 벌여나갔으며 이는 아마도 개별도시들 위주로 각기 진행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영토확장의 절박한 동기는 BC 7세기 중엽에 그리스인들이 코르시카를 장악하고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한편 리구리아 해안지방(이탈리아 북서부)과 남부 프랑스에 식민지를 건설해나간 데 있었다. 에트루리아족의 영토확장은 남쪽과 동쪽으로는 테베레 강에서 멈추었다.
이것은 테베레 강 너머 남쪽에 정착해 있던 이탈리아계의 강력한 움브리아족과 동쪽의 피케니족 때문이었다. 북동쪽으로는 그들의 팽창을 가로막는 연합세력이 없었으며 아이밀리아(지금의 에밀리아)의 아펜니노 산맥과 토스카나는 산재되어 있는 이탈리아계의 여러 소부족들이 차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들 지역을 통해 에트루리아족은 BC 6세기 중엽에 포 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북쪽 지방의 도읍으로 볼로냐(에트루리아의 펠시나 시)에 빌라노바를 세우고 레노 강 유역에 마르차보토를 세웠다. 동쪽의 아드리아 해안지방에 세운 라벤나와 리미니(고대의 아리미눔), 스피나는 이스트리아 및 달마치야 지방의 그리스 식민지들과 교역을 했다. 포 강을 통해서는 중부 유럽의 라 텐(La Tene) 문화와 접촉했다. 에트루리아족의 동북부 정복은 오늘날의 피아첸차와 모데나, 파르마, 만토바 등의 도시까지 포괄해 진척되었다.
남쪽으로는 BC 7세기말부터 라티움과 캄파니아로 접근해 들어갔으며 BC 6세기에는 로마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에트루리아족의 타르퀸 왕조는 BC 616년부터 BC 510(509)년까지 로마를 통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로마를 통치했다는 타르퀸 왕가는 명문(銘文)에 나오는 타르쿠라는 가문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에트루리아족이 도래하기 전의 로마는 여러 부락의 작은 집결체에 지나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새로운 지배자인 에트루리아족의 통치 때 비로소 카피톨리노(카피톨리누스) 구릉의 산성이라든가 대배수로 같은 건축물을 짓는 최초의 토목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에트루리아 시대의 로마 역사를 밝혀주는 증거물들이 카피톨리노 구역에서 상당히 많이 발굴되었다. 프라이네스테(지금의 팔레스트리나)에 있던 무덤들과 비슷한 호화로운 무덤들이 로마에도 있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한편 BC 6세기초에 이르러 에트루리아족은 피에솔레(고대의 파이술라이)와 볼테라(고대의 볼라테라이)를 북방 경계선에 포함시켰고 그와 동시에 남쪽으로는 캄파니아로 밀고 들어갔다.
카푸아가 이 지역에서 에트루리아족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고 놀라가 그 다음이었다. 살레르노 지방에서는 공동묘지가 발견되었고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의 낮은 지층에서는 에트루리아족이 쓰던 물품들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해안지방은 여전히 그리스인의 수중에 있었다. BC 524년에 에트루리아족은 그리스인의 거점도시인 쿠마이를 공격했으나 그 도시의 아리스토데모스에게 패배해 끝내 진출을 저지당했다.
BC 6세기말 포 강에서 살레르노까지 에트루리아족의 세력이 절정을 구가하고 있을 때 에트루리아족의 이 경계선 너머에도 에트루리아족의 부락이 세워졌던 것 같다.
그러나 북쪽의 스폴레토(고대의 스폴레티움)와 리구리아의 포솜브로네에서는 그들의 세력이 오래 가지 못했다. 쿠마이는 그리스인·삼니움인·로마인·갈리아인의 첨예한 저항의 물결에 가장 먼저 마주쳤다. BC 509년경 에트루리아족은 로마에서 쫓겨났다. 이 사실은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추방과 클루시움의 라르스 포르세나의 개입, 그리고 라틴족이 아리키아에서 아룬스 포르세나의 아들에게 거둔 승리에 관해 전하는 설화 속에도 나타나 있다.
라티움을 잃으면서 에트루리아와 캄파니아 속주 사이의 관계는 파국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에트루리아 도시들은 로마와 일련의 분산적인 전투를 각기 벌인 끝에 로마의 세력권에 통합되었다. 처음에는 BC 396년 가까운 베이부터 시작해 카페나와 수트리, 네페트(지금의 네피) 등이 차례로 로마의 수중으로 떨어졌으며 이로써 최초로 이탈리아를 통일하려던 에트루리아족의 기도는 종말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족은 번창하는 상업 및 농경문명을 이룩했다. 그들이 남긴 예술적 업적으로는 무덤에서 발견되는 프레스코와 사실적인 테라코타 초상들이 특징적이다. 그들의 종교는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했고 점술(占術)을 폭넓게 이용한 것을 비롯해 정교하게 짜여진 제사의식을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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