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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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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은 2012년 초에도 어김없이 핫이슈를 만들었다. 시즌마다 유명인과의 콜라보레이션(협업) 작업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 H&M이 이번에 선택한 브랜드는 마르니였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마르니는 심플하면서도 독창적인 프린트로 세계 패션계에서 사랑받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다. H&M이 봄·여름 시즌용으로 내놓은 '마르니 at H&M' 한정판은 한국에서는 출시 당일 몇 시간만에 완판되는 등 열풍을 일으켰다.
"패션과 품질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기치를 내건 H&M은 자라와 쌍벽을 이루는 패스트 패션의 대표주자다. H&M은 중저가 실속형 브랜드지만 경쟁업체보다 앞서가는 마케팅으로 시장을 공략해,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브랜드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브랜드 가치만 대략 160억 달러(인터브랜드 조사) 정도로 평가되는데, 브랜드 파워만 놓고 보면 패션 분야에선 루이비통의 아성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도전자다.
덕분에 이 회사 오너 스테판 페르손(Stefan Persson, 1947년~ ) H&M 회장의 재산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페르손은 여동생(로티 탐)과 더불어 H&M의 지분을 43% 보유하고 있다. 2010년 그의 재산은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침체도 페르손의 재산 증식을 막지 못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2012년 초 기준 260억 달러로 집계되었다. 세계에서 여덟 번째, 패션 분야에서는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4위)에 이어 두 번째 부자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를 제치고 최고 부호 반열에 올랐다.
"옷도 몇 번 입고 교체하는 소비재다"
H&M은 전 세계 43개국에 약 2,500개 매장을 두고 있는 글로벌 패션제국이다. 한국에는 2010년 2월 서울 명동에 1호점을 내며 진출했다. H&M의 영토 확장은 멈출 줄을 모른다. 페르손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 지리적으로 기회는 많이 있다"며 글로벌 확장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 2012년에는 멕시코를 필두로 남미에도 H&M의 간판을 세우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H&M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역은 호주와 아프리카뿐이다.
페르손이 1982년 아버지 얼링 페르손(Erling Persson, 1917~2002년)의 은퇴로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을 당시의 상황은 지금과 달랐다. 당시 매장 수는 스웨덴 84곳을 포함해 유럽 내 135개에 불과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 태어나는 '제2의 창업'은 페르손의 업적이다.
스테판 페르손은 H&M과 평생을 같이 했다. 그가 태어난 1947년 얼링 페르손이 스톡홀름 인근의 작은 도시 바스테라스에 '헤네스(Hennes : 스웨덴어로 '그녀'라는 의미)'라는 상호의 여성복 매장을 열었다. 이것이 오늘날 H&M의 모태다.
얼링은 원래 문구유통사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위해 미국을 여행하던 중 운명을 바꿀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메이시백화점과 같은 대형매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다양한 옷이 판매되는 소비문화를 경험하면서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창업주 얼링 페르손은 패션에 문외한이었으나 비즈니스 감각은 첨단이었다. 헤네스 매장에는 비싸지 않으면서 스타일을 살린 여성복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 작은 매장에서 '많이, 싸게, 그리고 신속하게 판매하는' 패스트 패션 비즈니스모델의 초기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헤네스의 옷은 전후 스웨덴의 경제 성장 및 남녀평등주의 분위기와 맞물려 인기를 끌었다.
창업주는 사업 확장에 신중했다. 창업한 지 5년이 지나고서야 수도 스톡홀름에 첫 매장을 냈다. 남성복과 아동복으로 제품 라인을 확대한 것도 1968년 레저용품업체 모리츠위드포스를 인수하고 '헤네스 앤 모리츠(Hennes and Mauritz, 나중에 H&M으로 변경)'로 상호를 변경하면서였다.
반면 대학을 졸업하고 1972년 입사한 스테판은 아버지의 H&M에 안주하지 않았다. 특히 가격경쟁력에만 만족하는 것을 경계했다. 품질도 중요한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유행에 민감한 패션의 특성상 소비자에게 '갓 생산한' 제품을 공급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브랜드를 해외로 확장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6년 H&M이 영국에 진출할 당시 그는 영국 지역책임자로서 경영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런던 옥스퍼드 광장에 영국 1호점을 개점하는 날, 거리에서 아바(ABBA) 앨범을 나눠주며 고객을 매장으로 안내하는 등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면서 영국 진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페르손이 CEO를 맡은 뒤 H&M의 성장엔진도 본격 가동되었다. 그가 CEO로 재직한 1982~1998년 H&M은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서유럽에 이어 패션의 메카 뉴욕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뻗어갔다. 1990년대 초반 드디어 매출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게된 것이다.
H&M, 자라, 유니클로처럼 제조사가 상품 기획과 디자인에서부터 생산, 유통, 가격 결정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는 것을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라고 한다. 패스트 패션은 기획에서부터 생산, 소비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은 SPA의 특성에 빗댄 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H&M은 글로벌 SPA 업체 중 매출과 매장 개수 면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패스트 패션의 정석을 구사
H&M은 '가격 파괴' 패션의 대표주자이면서도 유행과 스타일에 민감한 패션리더 사이에서도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그 성공 비결 중 대표적인 것이 2004년 샤넬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독점 컬렉션을 공개하며 시작한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 대중스타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H&M의 라거펠트 콜라보레이션은 출시 1시간 만에 준비한 물량이 동날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다른 브랜드들도 콜라보레이션을 내놓고 있지만, 콜라보레이션은 H&M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H&M의 협업은 스텔라 매카트니, 빅터앤롤프, 마돈나, 로베르토 카발리, 카일리 미노그, 꼼데가르송, 매튜 윌리엄슨, 지미추, 소니아 리키엘, 랑방, 베르사체 그리고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남성 언더웨어 라인 등으로 이어진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패스트 패션과 하이 패션의 성공적인 결합 덕분에, H&M은 매 시즌 패션 업계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H&M은 디자이너 협업에 앞서 과감한 마케팅 투자로 브랜드 대중화에 성공했다. 신디 크로포드, 나오미 캠벨 같은 톱모델과 할리우드스타를 광고와 판촉이벤트에 등장시키는 등 스타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뉴욕 5번가에 미국 1호 매장을 오픈할 때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록펠러센터 건너편의 최고입지를 차지하고 대대적인 론칭 광고를 벌이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결과, 개점 당일 매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날 명품매장에서나 연출될 법한 보안요원이 입장을 통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H&M이 세련되고 값싼 신상품을 거의 매일같이 선보이는 것은 기획-생산-유통의 각 단계에서 비용 거품을 최대한 제거하는, 패스트 패션의 정석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H&M은 자체 공장이나 매장 건물을 소유하지 않는다. 생산 단계에 중간상을 거치지 않는 것도 원칙이다. 디자인은 본사 디자인팀에서 하고, 생산은 방글라데시, 중국, 이집트, 파키스탄, 터키처럼 인건비가 싼 나라의 공장에 나눠 맡긴다.
H&M은 친환경 소재 사용 등 사회적 책임 경영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의 저임금 노동 착취, 환경오염 문제와 관련해 패스트 패션에 공통적으로 쏟아지는 비판은 H&M도 피해갈 수 없었다. 실제 2010년 뉴욕 매장에서 헐값 할인판매나 재활용을 막기 위해 멀쩡한 옷들을 잘라서 못쓰게 만든 사실이 알려져, 환경단체의 공분을 산 일도 있다.
공격적 경영, 조용한 사생활
H&M은 3세 경영으로 접어들었다. 스테판 페르손이 CEO직을 내놓고 회장으로 물러난 뒤 과도기적 전문경영인 체제를 꾸려간 지 10년여, 2009년 페르손의 장남 칼-요한 페르손(Karl-Johan Persson, 1975년~ )이 CEO로 승진했다. 새로운 CEO를 맞이한 H&M은 한 해 250여 개씩 매장을 늘리며 세계 시장 진출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또한 가구브랜드 'H&M홈'을 출시하고 '몽키', '위크데이' 등을 인수함으로써 다양한 브랜드를 확보하며 미래 성장을 위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
페르손은 경영에서는 공격적이고 스타마케팅에도 능숙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사생활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아들 칼-요한 페르손도 비즈니스스쿨을 다닐 때 방학이 되면 H&M 매장에서 근무하는 등 후계자답지 않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페르손이 2009년 4,000만 달러를 들여 영국 햄프셔주의 작은 마을인 린켄홀트빌리지를 통째로 매입해 이례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은 것이 전부일 정도다.
페르손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다. 청소년 약물중독 예방사업에 대한 열정은 유명하다. 후진 기업가 양성도 관심을 쏟는 분야다. 스톡홀름경제대학과 스웨덴왕립기술대학, 카롤린스카의학연구소 등 스웨덴 명문대학들이 스톡홀름기업가정신대학(SSES)을 세우는데, 가족의 이름을 따 설립한 페르손패밀리재단이 거액(3억 5,000만 스웨덴크로나)을 쾌척했다.
스테판 페르손의 슈퍼 리치 DNA! 합리성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1층에는 루이비통과 H&M 매장이 동시에 입점해 있다. 고급스러움과 합리성, 지향점이 다른 두 브랜드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라고 한다. 가격경쟁력을 주요 전략으로 삼은 브랜드의 숙명은 '싸구려' 이미지다. 특히나 이미지를 소비하는 패션 브랜드의 소비자들에게 싸구려 이미지는 치명적이다. H&M은 명품디자이너들과의 협업, 스타마케팅 등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H&M에서 옷을 사고 가방을 사는 일이 곧 세련되고 합리적인 소비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합리성과 과시욕 사이에서 갈등할 필요 없이 즐겁게 H&M 제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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