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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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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 수로 따지면 중국(13억 4,300만 명), 인도(12억 500만 명)에 이어 지구상 세 번째로 큰 국가. 매일 전 세계 5억 명의 사람들이 접속해 약 10억 개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곳. 국적, 인종,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전 세계 9억 명이 가입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얘기다.
2004년 친구들과 함께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1984년~ )는 6년 만인 2010년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선정자였다(첫 번째 인물은 1927년 대서양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 「타임」은 그를 선정한 이유로 "페이스북이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이라면 세계 누구와도 '친구'로 이어져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는 페이스북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저커버그는 억만장자가 되었다.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그의 재산은 175억 달러(약 20조 원)로 세계 서른다섯 번째 갑부다. 당연히 세계 100대 억만장자 중 최연소다. 하지만 이 드라마틱한 성공을 둘러싼 의혹과 페이스북 거부 움직임도 적지 않다.
논란 많은 페이스북 탄생의 진실
저커버그는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치과의사, 어머니는 정신과의사였다. 중학교 때 처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그는 아버지 병원에서 쓸 수 있도록 환자가 병원에 오면 이를 병원 내 모든 컴퓨터에 알려주는 사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청음 훈련용 음악프로그램인 '시냅스'를 만들어 유명세를 탔다. 이 때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입사 제안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일종의 인맥관리 사이트로, 관심사나 배경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구를 맺어 교류하는 페이스북의 역사는 하버드대학에 다닐 때 시작된다. 저커버그는 2004년 친구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 에두아르도 세브린(Eduardo Saverin), 크리스 휴즈(Chris Hughes)와 함께 하버드대학 학생들끼리 연락처를 공유하고 인맥을 관리하는 사이트 페이스북을 처음 만들었다. 교내에서 큰 인기를 얻자 가입 조건을 스탠퍼드대학과 콜럼비아대학 등 미국 전역의 대학생으로 넓혔고, 이후에는 열세 살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탄생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2010년 저커버그를 소재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저커버그는 다른 친구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훔쳐 페이스북을 만든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쌍둥이 형제인 타일러(Tyler Winklevoss)와 캐머런 윙클보스(Cameron Winklevoss)가 만들고 있던 SNS '하버드 커넥션'을 돕다가 독립해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이 때 그가 쌍둥이 형제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커버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쌍둥이 형제는 2004년 소송을 냈고, 저커버그는 2008년 페이스북 주식 4,500만 달러어치와 현금 2,000만 달러를 주고 그들과 합의했다.
하지만 저커버그가 고등학교 때 이미 페이스북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가 다닌 명문 사립고 필립스엑스터는 학생들의 사진과 학년, 주소, 전화번호를 담은 사진주소록을 발간해 정보를 공유했는데, 학생들은 이것을 '페이스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화의 각본을 쓴 아론 소킨(Aaron Sorkin)은 "인터넷 기업을 소재로 우정과 배신이라는 전통적 소재를 다루려 했을 뿐, 페이스북의 진실을 다룬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그린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했던 저커버그는 개봉일에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고 한다.
1,000만 원 대 차를 모는 검소한 젊은 억만장자
눈 밝은 사업가들은 페이스북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잠재력을 내다봤다. MTV는 페이스북이 걸음마단계였던 2005년, 야후는 2006년 저커버그에게 거액의 인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이건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페이스북은 내 자식이기 때문에 보살피고 성장시키고 싶다"며 모두 거절했다. 야후의 전 CEO인 테리 세멀(Terry Semel)은 "나이와 상관없이 10억 달러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돈 보다 '자식'을 성장시키고 싶었던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전 세계 인구 70억 명 중 9억 명, 즉 인구 일곱 명당 한 명이 가입한 거대한 왕국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그는 2011년까지도 월셋집에 살았고 차는 혼다의 피트(2006년식)와 어큐라(2002년식)를 타고 다닌다. 소형차인 피트는 우리 돈으로 약 1,100만 원, 어큐라는 1,300만 원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검소함이 절정에 달한 것은 결혼식 때였다. 저커버그는 대학교 2학년 때 친목 동아리 파티에서 처음 만나 사귀어 온 프리실라 챈(Priscilla Chan)과 2012년 5월 결혼식을 올렸다. 장소는 샌프란시스코 팔로알토에 있는 자신의 집 뒤뜰. 그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 100명만 초대해 평소 즐겨 가는 레스토랑과 일식집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 갑부들이 웨딩드레스를 특별 주문 제작하는 것과 달리 챈은 시중에 판매되는 약 5,000달러짜리 드레스를 입었다. 부부는 유럽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도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 길가의 계단에 앉아 먹는 등 지나치게 검소한 모습에 언론으로부터 '짠돌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기부에는 인색하지 않다. 저커버그는 2010년 뉴저지 뉴어크시 공교육 개혁에 1억 달러(1,200억 원)를 기부했고, 빌 게이츠가 주도하는 기부서약 캠페인에 참여해 전 재산의 50%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 인생의 후반부에 가서야 기부를 생각하지만,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라고 기부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젊은 CEO가 꾸려가는 회사답게 페이스북의 회사 분위기는 자유롭다. 직원들은 사내에서 스케이트보드도 타고 비디오 게임도 한다. 그 역시 주로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하고 직원들과 자주 어울려 맥주도 마신다. 하지만 옷차림 때문에 구설에 오를 때도 적지 않다. 공식적인 자리에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양말도 신지 않은 채 고무 샌들을 신고 대중 앞에 서기도 한다. 심지어 페이스북 기업공개 때도 청바지와 후드티를 입고 나와 입방아에 올랐다. 패션잡지 「에스콰이어」는 2010년 저커버그를 최악의 드레서로 선정하면서, "아무리 돈이 많고 디지털 관련 아이디어가 많아도 공식 석상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올 수는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열린 세상 VS. 사생활 침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8년밖에 안 된 페이스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2013년쯤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개발 부문에서 근무했던 엔지니어들을 고용하고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 업체인 HTC와 제휴하는 등 '페이스북 폰' 제작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제 스마트폰 제작까지 손을 뻗치는 저커버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세계를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2012년 5월 페이스북을 나스닥에 상장한 직후에도 "우리의 목적은 상장 자체가 아니라 세상을 좀 더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마도 그는 정보가 일부에게만 독차지되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공평하게 공개되는 사회를 꿈꾸는 듯하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열린 공간', '투명한 세상'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저커버그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각본가 아론 소킨은 "인생은 복잡하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빠르기만 할 뿐 깊이가 없다"며 페이스북을 탈퇴했다. 이 영화에서 저커버그 역을 맡았던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Jesse Eisenberg) 역시 "페이스북의 친구 추천 목록에 여동생의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는데, 페이스북이 어떻게 그녀를 찾아냈는지 모르겠다"며 탈퇴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보호에 문제가 있다며 2010년에는 미국에서 3만 3,000여 명이 집단 탈퇴하는 등 페이스북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 SNS가 쏟아내는 속도 중심의 엄청난 양의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저커버그가 꿈꾸는 열린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사생활 침해의 위협,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더 쫓기며 살게 만드는 스트레스인 것이다. 스물여덟 저커버그가 이 숙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서른, 마흔이 된 그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의 슈퍼 리치 DNA! 인본주의
페이스북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저커버그가 만든 모든 서비스의 근간을 이룬다. 그는 "사람들은 나를 컴퓨터공학 쪽 사람으로 보지만, 나는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이 연결되는 지점에 흥미를 느꼈다"고 밝힌바 있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 그것이 세계 인구 7분의 1을 회원으로 둔 페이스북의 성공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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