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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 슈퍼
리치

잉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린고비

요약 테이블
출생 1926년
잉바르 캄프라드

ⓒ Getty Images/멀티비츠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를 탔는데 세계에서 손꼽히는 갑부가 신문에서 무언가를 오리더니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걸세"라고 말하며 건넨다면, 받는 사람은 무엇을 상상할까? 대부분 대박 칠 주식 정보나 성공의 비결을 적은 명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대 가구 업체 이케아 창업자인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 1926년~ )가 건넨 것은 1달러짜리 공짜 아이스크림 쿠폰이었다. 세계적인 부자이기도 하지만 지독한 구두쇠로도 유명한 캄프라드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단순함과 실용성으로 세계를 홀리다

1926년 스웨덴 남부 시골 마을인 아군나리드에서 태어난 캄프라드는 어려서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물고기나 연필, 가방 등의 물건을 팔았다. 실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일곱 살에 창업한 회사가 바로 이케아다. 이케아(IKEA)는 캄프라드의 이니셜인 I, K와 그가 자란 농장 엘름타리드(Elmtaryd)와 마을 이름 아군나리드(Agunnaryd)에서 첫 글자 E와 A를 각각 따서 만든 이름이다.

처음에는 시계, 스타킹, 넥타이, 양말 등 다양한 잡화를 우편으로 판매하다가 5년 후부터 가구 장사를 시작했다. 1950년대 스웨덴 정부의 주택 100만 호 건설 사업에 힘입어 가구 주문이 크게 늘자 더 이상 혼자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해, 1958년 이케아 가구점을 오픈했다.

당시 정부가 아주 싼 임대료로 주택을 분양하자 많은 신혼부부들이 임대주택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신혼부부들은 가구를 사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스웨덴 가구는 품질이 좋은 반면 경쟁이 활발하지 않은 탓에 가구 소매업자들이 높은 마진을 붙여 비싼 값에 팔았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캄프라드는 좋은 품질의 가구를 매우 낮은 가격에 공급할 방법을 찾아냈다.

우선 매장은 비교적 도시외곽에 대규모로 지어 임대비용을 절감하고 충분한 전시효과를 누렸다. 커다란 창고형 매장에서 고객들이 가구를 직접 만져보고 앉아도 보면서 고를 수 있게 했다. 한 직원이 가구를 운반하기 위해 의자 다리를 분리한 데서 착안해, 처음부터 가구를 조립식으로 설계하고 고객이 직접 창고에서 가져가도록 했다. 지금은 반 조립식 가구가 넘쳐나지만 1960년대에 DIY 가구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배달비와 조립비가 줄어든 만큼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 있었고, 납작하게 쌓아 운송하는 것이 가능해져 운송비용과 보관공간이 절약되었다.

값만 싼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하면서도 젊고 세련된 멋이 있고 아이디어가 넘쳤다. 창고에 있던 수납장을 거실장으로 만들고, 나무가 아닌 양동이용 플라스틱으로 의자를 만드는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원가도 절감하고 디자인도 개선했다.

이케아 매출 (단위 : 유로)

이케아는 불황에도 해마다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다. - 자료 : 이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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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가구가 아닌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

저렴하고 실용적인 이케아 가구가 큰 인기를 끌자 스웨덴의 다른 가구 업체들은 크게 긴장했고, 한데 뭉쳐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케아에 가구를 만들어주는 장인이나 기술자들을 협박하거나 가구 박람회에서 이케아 공간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결국 이케아에는 극소수의 가구 제작자만 남게 되었고, 홍보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캄프라드는 폴란드로 눈을 돌렸다. 폴란드는 인건비와 원자재 값이 스웨덴의 절반이었다. 그는 폴란드가 스웨덴 수준에 맞춰 가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교육시켰다.

전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가구를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해외에 진출해서도 이케아 방식을 고집했다. 이케아의 상징인 창고형 매장은 전 세계에서 동일한 콘셉트로 지어진다. 보통 백화점 규모의 네 배가 넘는 초대형 매장에 식기부터 침대와 서랍장에 이르기까지 인테리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전시한다. 가구·인테리어 소품은 물론 식품과 자체 식당까지 갖추고 매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고 판매도 올린다. 이케아는 판매하는 물품의 범위를 가구에서 생활용품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2012년 4월에는 중국 가전제품회사 TCL과 협력해 거실용 'TV가구'도 내놓았다. TV와 CD·DVD 플레이어, 거실장 등을 하나의 세트로 구성한 제품이다.

유럽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는 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케아 카탈로그도 이케아의 성공 비결 중 하나다. 캄프라드는 1년에 한 번씩 가을마다 나오는 카탈로그에 표기된 가격을 무조건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석유 파동 때는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원래 가격을 고집했다. 이케아의 카탈로그는 단순히 물품을 나열하는 식이 아니다. 이케아의 가구와 생활용품으로 꾸며진 집 안팎의 풍경과 가족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카탈로그는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인테리어 잡지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소비자에게 '이케아적인 삶'을 보여준다.

이케아는 2011년 10월 현재 호주, 독일,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벨기에, 체코, 아랍에미리트, 중국, 러시아, 일본, 터키 등 세계 38개국에 332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이케아의 카탈로그도 매년 1억 7,500만 부가 전 세계에 배포되고 있다.

이케아는 한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케아코리아는 2011년 말 광명시에 2,346억 원을 내고 부지를 낙찰 받았다. 업계에서는 2012년 착공해 2014년쯤 전시장을 오픈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한샘 등 국내 대표 가구 업체들 역시 대규모 매장을 내거나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부쩍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근검절약의 아이콘에서 탈세왕으로

캄프라드는 엄청난 갑부이면서도 오랫동안 구두쇠의 상징이 되어왔다. 막대한 재산에도 불구하고 20년 된 낡은 볼보 자동차를 손수 운전하고 지하철을 즐겨 타며, 항공기를 탈 때면 이코노미석을 고집하고, 정장 대신 캐주얼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호텔 객실의 미니바에서 콜라를 마셨을 때는 나중에 비싼 가격을 지불할 것을 걱정해 인근 가게에 가서 같은 콜라를 사다가 채워 넣는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의 짠돌이 기질은 이케아 직원들에게도 적용된다. 직원들은 400킬로미터 이내 거리로 출장을 갈 때는 비행기를 탈 수 없으며 반드시 이면지를 활용해야 한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함께 구두쇠 기질 덕분에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오랫동안 호의적이었다. 십대 시절 네오(neo)나치 그룹에 들어가 활동한 전력이 드러났지만, 1994년 직원들에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당시 일을 털어놓자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 그에 대한 이 같은 평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로 '재단을 통한 탈세' 의혹 때문이다. 이미 그는 부유세를 내야 하는 스웨덴을 떠나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다.

2004년 스웨덴 경제주간지는 캄프라드의 실제 재산이 빌 게이츠보다 많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이케아 매장의 주식가치를 모두 합하면 게이츠의 주식 가치를 넘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케아는 캄프라드가 회사 주식 대부분을 네덜란드에 설립한 스티칭 잉카 재단과 잉카 홀딩스 등에 넘겼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2006년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스티칭 잉카 재단 역시 캄프라드 가문의 재산으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보다 규모가 더 크지만 자선사업보다는 캄프라드와 이케아의 탈세를 위해 설립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1년 스웨덴 현지 방송은 또 다른 사실을 밝혀냈다. 캄프라드는 잉카 홀딩스와 독립적으로 로열티를 관할하는 인터 이케아 시스템이라는 자회사를 네덜란드에 만들었으며, 이 회사를 지배하는 상위의 회사인 인터로고 재단이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두 회사는 그때까지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캄프라드와 그의 아내는 인터로고 재단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며 인터 이케아 시스템에 대한 지배권은 물론 상표권과 제품에 대한 로열티도 소유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매장에서 벌어들이는 판매 대금의 3%가 로열티 명목으로 인터로고 재단과 인터 이케아 시스템으로 흘러 들어왔고, 탈세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캄프라드는 이메일을 통해 "인터로고 재단은 나의 가족과 외부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에 의해 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실토했다.

2012년 3월에는 이케아가 고객과 직원 등의 인적 정보를 불법적으로 입수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BBC와 「르몽드」 등 해외 언론들은 이케아가 2003년부터 프랑스에서 민간 경호회사를 통해 이케아에 소송을 제기한 고객이나 의심스런 직원 200여 명의 범죄기록을 담은 비밀 경찰 파일을 입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언론은 이케아 측이 경찰 파일 1건당 약 100달러를 건넸다고 전했다. 돈을 주고 산 정보는 직원을 해고하거나 고객과의 소송을 해결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프라드의 '근검절약' 이미지마저 손상되었다. 스위스에 거대한 저택과 스웨덴에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최고급 차인 포르셰를 타왔다는 제보까지 나왔다. 전직 임원이 이케아의 윤리 문제를 지적하는 책을 출판한 것도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남겼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합리성이 공존하는 이케아적인 삶을 동경한다. 작은 가구점에서 세계적인 가구왕국 이케아를 만들기까지 캄프라드의 행보는 이케아적인 삶에 가까워보였다. 하지만 탈세와 거짓말이 속속 들어나면서 그 역시 한 푼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안간힘 쓰는 그렇고 그런 경영자로 전락했다.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었듯이, 이제 캄푸라드 자신의 삶도 이케아적으로 바꿀 때가 온 듯하다.

잉바르 캄프라드의 슈퍼 리치 DNA! 불친절함

1. 가구는 고객이 직접 조립한다.
2. 가구를 구경하려면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매장을 방문해야 한다.
3. 자신이 구매한 제품은 직접 가져간다.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과 소비자 입장에서는 놀랍도록 불친절한 방침이다. 하지만 캄프라드는 오히려 이 불친절한 방침을 전면에 내세워 이케아를 세계 1위의 가구회사로 만들었다. 대신 그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가치(품질, 디자인, 가격)를 200% 만족시켜주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문제는 고객이 어떻게 '기꺼이' 포기할 수 있도록 만드는지다. 캄프라드는 그 방법을 일찍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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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집필자 소개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중 7년을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증권사를 비롯한 시중은행 등 금융업계를 출입하면서 보냈다. IT와 미디어 분야에도 ..펼쳐보기

문향란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국제부·경제부·산업부를 거치며 국내외 다양한 슈퍼 리치의 삶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남보라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경제부를 거쳐 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세계 슈퍼 리치
세계 슈퍼 리치 | 저자최진주 외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부자 피라미드의 상층부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0.00001%의 슈퍼 리치 40인의 삶과 성공 전략을 추적한다. 추진력, 배짱, 치밀함, 강박 등 40인의 슈퍼 리치..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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