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936년 |
---|
"월 스트리트에서 친구를 원한다면 차라리 개나 한 마리 사라!"
2006년 한국의 KT&G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인삼공사 매각과 자산 처분 등을 요구한 'KT&G 습격사건'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Carl Celian Icahn, 1936년~ )이 자주 쓰는 말이다. 농담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월가 그리고 아이칸 자신의 냉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2009년 말에는 절친한 친구로 알려졌던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와 대결을 벌여 '돈 앞에서는 친구도 없다'는 그의 철학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추진하던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인수에 아이칸이 뛰어들어 방해하자 "부인과 이혼할 때 내게 상담까지 했던 아이칸에게 실망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아이칸은 이렇게 되받아 쳤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트럼프 딸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아이칸이 지난 40여 년 동안 이런 '냉혹함'으로 모은 돈은 무려 140억 달러나 된다. 「포브스」가 2012년 선정한 세계 쉰 번째 갑부의 자본수집 이력 역시 퍽 다채롭기 그지없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상어
유대인인 아이칸은 미국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변호사)와 어머니(교사)는 부의 축적에 관심이 없었지만 당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었던 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프린스턴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뉴욕대학 의과대학을 중퇴하고, 1961년 월가에 취업했다. 증권사 견습생이었던 아이칸은 1968년 빌린 돈 40만 달러로 자신의 증권사를 차렸고, 이후 정크본드(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 투자로 억만장자가 된다.
아이칸이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1985년 항공사 트랜스월드에어라인(TWA)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아이칸은 TWA 노조와의 임금 협상에서 합의가 임박할 때마다 협약 내용이나 숫자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꿔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곤 했다.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노조를 가혹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텍사스 항공의 프랭크 로렌조(Frank Lorenzo)에게 회사를 팔아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아이칸은 그런 식으로 원하는 것을 하나씩 관철시켰다.
그가 지금까지 인수했거나 인수 혹은 경영권 참여를 시도한 기업은 모두 20여 개에 이른다. RJR나비스코, USX, 텍사코를 비롯해 GM, 타임워너, 야후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그의 레이더에 포착됐었다. 2008년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을 CEO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도 아이칸이었다.
특히 8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굴지의 휴대폰 제조 업체 모토로라가 2011년 구글에 인수되는 것을 막후에서 지휘한 것 역시 아이칸이다. 그는 2008년 2월 주당 15.58달러에 모토로라의 주식을 매입한 후, 세계 금융위기로 주가가 주당 3달러 대로 곤두박질 쳤을 때도 계속 지분을 늘였다. 이렇게 이사회 의석을 두 자리 확보한 그는 모토로라 경영진을 압박해 휴대폰 부문은 모토로라 모빌리티, 나머지 사업 부문은 모토로라 솔루션스로 분리했다. 그리고 2011년 8월 결국 모토로라 모빌리티가 구글에 인수되도록 했다. 3년여 동안 모토로라를 집요하게 공격한 아이칸이 이 인수로 번 돈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2조 원에 달했다.
아이칸은 주로 가치가 현저히 낮게 매겨져 있거나 경영권 분쟁 등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눈독을 들인다. 이런 기업의 주식을 다량 확보해 이사회에 진출해 경영권을 쥐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업을 움직여 주가를 올린다. 그리고 주가 상승으로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으면 그 기업을 떠난다. 아이칸은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공략했고 한 번 눈독을 들이면 끝장을 봤다. '상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그리고 시장은 이런 아이칸의 스타일을 알기에 그가 특정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하면 그 기업의 주가도 급등하기 시작한다. 아이칸의 개입으로 기업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 기대하며 그를 따라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아이칸은 독특한 협상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매수 협상 전날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당일에는 낮잠까지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TWA 인수 때도 밤 아홉 시에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열한 시가 되어서 협상장에 나타났다. 집에서 잠을 자고 말끔히 샤워까지 하고 온 아이칸은 기다리다 이미 녹초가 된 사람들을 상대로 협상을 완고하게 끌고 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얻어냈다고 한다.
극단을 오가는 평가
하지만 정작 아이칸은 '기업사냥꾼'이라는 자신에 대한 주위의 평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행동주의 투자자'로 불리기를 원한다. 행동주의 투자자란 이사회 장악 등을 통해 경영에 개입해 적극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를 말한다. 아이칸은 늘 CEO들의 무능함과 높은 연봉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경영권 참여와 인수를 통해 저평가된 기업의 가치를 끌어 올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부 언론과 소액주주들은 아이칸이 기업의 투명성과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칸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차갑다. 그는 이사회 의석을 확보한 후 배당이나 주식 재매각, 합병, 부실사업부문 매각 등으로 기업 가치를 단기간에 끌어 올리지만, 차익 실현 후에는 매정하게 떠나기 때문이다. 즉 기업 자체의 가치를 올리기 보다는 주식의 가치만 올려 자신의 이윤만 챙긴다는 비판이다.
포이즌필(poison pill :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지분 매입권리를 주는 제도)을 개발한 기업법 전문 변호사 마틴 립튼(Martin Lipton)은 "기업들이 장기적 성장 대신 단기 성과를 내도록 압력을 가하는 대표적 인물이 아이칸"이라고 비판했다. 아이칸은 한국에서도 KT&G 경영참여를 선언한 지 10개월 만에 1,500억 원 가량의 차익을 내고 지분을 모두 팔아 '먹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의 경영진 교체가 항상 성공적인 것도 아니었다. TWA는 아이칸이 인수한 후 부채가 세 배나 급증했고, 비디오 대여 체인업체 블록버스터는 주가가 반 토막 나기도 했다. 2005년에는 한 카지노 호텔 소액주주들이 아이칸 때문에 재산 손실을 입었다며 그를 고소하기도 했다.
"탐욕은 선(善)"이라 말하는 궤변
아이칸은 "탐욕은 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탐욕적인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 온 기부왕이기도 하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부자들에게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자"며 주도하고 있는 '기부서약' 캠페인에 2011년 아이칸도 동참했다.
뉴욕시의 종합경기장 '아이칸 스타디움'은 그가 1,000만 달러를 기부해 지은 경기장으로 개인이 뉴욕의 공원 시설에 기부한 것 중 최고액이다. 프린스턴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실험실이 있을 정도로 모교에도 상당액을 기부했고, 미혼모와 노숙인을 위한 보호시설도 그의 기부를 받아 운영 중이다. 2001년에는 스타라이트 어린이 재단으로부터 '올해의 수호천사'에 선정되는 등 기부 관련 상도 여러 개 받았다.
여든을 앞두고 있는 이 노장은 언제쯤 은퇴 할까? 아이칸의 아들 브레트(Brett Icahn)가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아이칸이 스스로 은퇴 계획을 밝힌 적은 한번도 없다. 일흔다섯 살이 되던 2011년 "활동을 점차 축소시킬 것"이라고 말한 게 전부다.
그리고 2011년 11월부터는 세계 45위의 철강 업체인 커머셜메탈즈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커머셜메탈즈 측이 인수 가격이 낮다며 인수를 거절하자 아이칸은 적대적 인수 의사를 밝히며 끈질기게 매달리고 있다. 그의 사냥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칼 아이칸의 슈퍼 리치 DNA! 승부사
아이칸은 협상에서 매우 끈질긴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협상에서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엄포를 놓기도 하고 교활한 수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도의 전략과 강철 같은 정신력으로 협상 테이블에 감도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즐기기도 한다. 18년을 함께한 부인과 이혼할 때도 부인 측 변호사가 "27년 변호사 생활 동안 이번처럼 지독한 상대는 처음이다"라며 고개를 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