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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에 더 강했던 '철의 여인'

라인하트의 재산이 순식간에 갑절이 된 건 서호주 필바라 지역의 로이힐철광석광산 프로젝트에 포스코 컨소시엄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로이힐광산은 23억 톤의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으로, 2014년부터 연 5,500만 톤의 철광석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포스코컨소시엄이 지분 30%를 36억 달러에 인수했다는 건 이 프로젝트가 10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필바라는 호주 철광석 매장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라인하트에게 화수분이나 다름없는 이곳은 아버지 랭 핸콕(Lang Hancock)이 남긴 유산이다. 라인하트가 태어나기 2년 전 핸콕은 필바라에서 세계 최대 수준의 철광석 매장지를 최초로 발견했다. "1952년 11월 아내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퍼스로 돌아오던 길에 해머즐리 산맥을 지날 때쯤 구름이 무겁게 끼고 날씨가 나빠졌다. 그래서 비행 고도를 낮춰 터너 강을 따라 가다가 불그스름한 철처럼 보이는 절벽을 발견했다. 마치 녹슨 철 같은 형상이었다." 미화하고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핸콕은 철광석 매장지 발견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랭 핸콕이 사망하자 회사 핸콕프로스펙팅은 법적으로 유일한 자녀로 올라와있는 라인하트가 물려받았고, 그녀는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이 되었다. 핸콕프로스펙팅이 확보하고 있는 채광권 규모는 필바라 지역에 면적 500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핸콕프로스펙팅은 부채가 상당했으며 경영상태도 엉망이었다. 라인하트는 로이힐(철광석), 알파(석탄) 등 신규 광산 개발을 시작하고 합작파트너를 유치해 자본을 대량 투입하면서, 핸콕프로스펙팅을 흑자경영으로 전환시키고 호주 철광석 수출의 역군으로 탈바꿈시켰다. 2012년 현재 핸콕프로스펙팅은 연간 3,000만 톤을 생산하는 호프다운 광산(리오틴토와 공동경영)을 비롯해 여섯 곳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라인하트의 재산 증식 속도는 놀랍다. 핸콕프로스펙팅이 새 광산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생산을 확대하면 할수록, 라인하트의 재산은 하루가 다르게 급증했다. 세계 금융위기도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세계 경제는 침체 기로에 선 반면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철광석 수요는 꾸준했고 원자재 가격이 고공 행진한 덕분에 호주 광산업이 붐을 탔다. 라인하트의 재산도 2008년 24억 달러에서 2011년 90억 달러로 수직상승했다. 세계 부의 피라미드 최상층을 뒤흔들며 기염을 토하는 그녀의 행보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과 인도 경제가 침체된다면 라인하트의 사업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적들에 둘러싸인 외로운 부자

부모 잘 만나고 시운(時運)도 잘 타고난 덕분에 많은 돈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라인하트는 가지지 못한 것도 많다. 특히 가족애만큼은 그녀도 돈으로 채우지 못했다.

2012년 라인하트는 아들딸들과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분쟁의 원인은 재산이다. 랭 핸콕이 외손주들 몫으로 남긴 신탁이 화근이었다. 랭 핸콕은 핸콕프로스펙팅의 지분 4분의 1을 떼서 손주들을 위한 신탁기금으로 만들고, 그들이 장성할 때까지 라인하트에게 관리를 맡겼다. 그런데 2011년 라인하트가 자녀들이 신탁을 직접 관리할 수 없도록 신탁기간을 2068년까지로 연장해 버렸다. 그러자 1남 3녀 중 막내를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이 유산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건 것이다.

라인하트의 가족 불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랭 핸콕은 서른아홉 살 연하의 가정부와 재혼했다. 또 랭 핸콕이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에는 계모와 14년간 법정에서 싸웠다.

라인하트의 삶은 광산을 빼놓고는 말할 게 없을 정도로 태어난 이래 쭉 광산업 한 우물을 팠다. 어린 시절은 부모가 석면광산을 운영한 서호주 위트눔에서 보냈다. 시드니대학(경제학 전공)을 졸업하고 1973년 핸콕프로스펙팅에 입사해, 아버지 랭 핸콕을 보좌하면서 필바라의 광산업을 체득했다.

2010년 이후로는 미디어 분야에 투자를 시작하는 등 관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0년 TV방송국 텐네트워크의 지분을 확보했고, 호주 유력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 등을 보유한 미디어그룹 페어팩스미디어의 최대 개인주주가 되었다.

라인하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또 다른 유산은 강력하고 단호한 친기업적 태도다. 미디어 기피성향이 강한 그녀이지만 기업 활동에 가해지는 규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이 그러하듯 재산을 지켜내려는 부의 본능은 어떤 경우에서건 매우 냉철하고 강력하게 발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