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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 슈퍼
리치

왈리드 탈랄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라지즈 알사우드, Al Waleed Bin Talal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

요약 테이블
출생 1955년

2011년 1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혁명'의 선두주자 트위터가 대형 투자 유치로 화제를 모았다. 투자자는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 알 왈리드 빈 탈랄(Al Waleed Bin Talal, 1955년~ )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다. 시장에서는 3억 달러를 투자한 알 왈리드가 트위터 지분을 최소 3% 이상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거래는 여러모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첫째 세계적 투자가가 SNS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둘째 비상장회사인 트위터의 시장가치를 추정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이런 방식으로 평가한 트위터의 기업 가치는 대략 100억 달러였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이름에서 딴 별칭으로 통할 만큼, 알 왈리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투자자다. 실제 알 왈리드는 시티은행 등 대형 투자를 통해 200억 달러 안팎의 거부를 쌓아 올렸다.

「포브스」는 2012년 그의 재산 규모를 180억 달러, 세계 스물두 번째 부호로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재산가치가 하락하기도 했지만, 그가 중동 최고의 부호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가치투자를 즐기는 투자계의 큰손

알 왈리드가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어서였다. 이전까지는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번 아랍 왕족 정도로 여겨졌다. 글로벌 무대 데뷔전이나 다름없는 미국 시티은행(현 시티 그룹) 투자 건부터 그의 등장은 화려했다. 「타임」은 그에게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1990년대 초 시티은행은 부실대출 등으로 인한 경영난을 겪으며 파산 위기에 몰린 상태였다. 당연히 주가도 바닥을 쳤는데 알 왈리드는 이때 시티은행 주식을 사들였다. 다행히 경기가 호전되면서 시티은행 경영도 급속도로 정상화했고, 주가도 금방 회복되었다. 알 왈리드는 1990~1991년 시티 그룹 지분 확보에 약 13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전 그의 지분 가치는 100억 달러에 달했다. 현재도 그는 시티 그룹의 주요한 개인투자자이다.

인구 10만 명당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나라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사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나라에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의 봄'이 비켜간 중동 산유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억만장자의 기준은 개인 금융자산이 1억 달러 이상인 사람) - 자료 : 보스턴컨설팅그룹(BCG), 「Global Wealth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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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은행 투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알 왈리드는 일시적으로 자금 위기에 빠진 우량기업에 투자함으로써 투자의 귀재다운 면모를 과시해 왔다.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에는 대우와 현대차에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3년 만에 회수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투자회사 킹덤홀딩컴퍼니를 통해 투자원칙을 공개하고 있는데, 그의 장기투자 원칙은 명료하다. 알 왈리드는 우선 경영실적이 뛰어나고 시장을 선도하는 최고의 브랜드를 선호한다. 자산에 비해 시장에서 저평가되었다고 판단하는 기업도 좋아하는 편이다. 분야별로는 부동산, 호텔, 금융, 미디어 등을 성장성이 높은 섹터로 꼽으며,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시티은행에 이어 투자목록에 오른 기업들은 아메리카온라인(AOL), 애플, MCI, 모토로라, 뉴스코퍼레이션 등의 기술주였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 당시 알 왈리드 역시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호텔 등 부동산 분야로 투자의 무게중심을 옮겨, 포시즌과 런던 샤보이, 모나코 몬테카를로그랜드, 페어몬트 등의 유명한 호텔의 주요지분을 손에 넣고 있다. 그런데 2011년 '전략적 투자'라는 명분하에 SNS업체 트위터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트위터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세계 최고층 빌딩 건설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원래는 '1마일(1,609미터) 타워'를 꿈꾸었으나 계획을 수정해서 고향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 1,000미터 높이의 킹덤타워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16년께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이 건물은 2012년 현재 세계 최고층 건물인 두바이 부르즈칼리파(828미터)보다 170여 미터나 높다.

킹덤타워 조감도

알 왈리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제2의 상업도시 제다에 세계 최고층 건물이 될 킹덤타워를 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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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로열 패밀리

석유 덕분에 풍요를 누리고 있는 아랍권 산유국에서 오일머니로 거부를 축적한 이들은 대부분 왕족이다. 알 왈리드는 그들 중에서 '얼굴이 드러난' 부자 왕족이다. 그가 글로벌 금융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하자, 시티 그룹과 같은 대형 투자가 성사된 배후에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막대한 자본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알 왈리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통일하고 건국한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Abdul Aziz Al Saud)가 할아버지이고, 레바논의 초대 수상을 지낸 리아드 알 솔흐(Riad Al Solh)가 외할아버지다.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Abdullah Bin Abdul Aziz) 국왕은 그의 삼촌이다.

알 왈리드는 왕가 혈통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정치와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입지도 거의 없다. 그의 아버지 탈랄(Talal Bin Abdul Aziz Al Saud)은 1950년대 이복형 사우드 국왕의 통치 하에 민주화를 요구하다 망명을 떠났고, 이후 정치와는 거리를 뒀다.

알 왈리드가 실력을 발휘한 분야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였다. 1979년 미국 멘로대학을 졸업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귀국하자마자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당연히 가문의 지원을 받아 편하게 출발했을 것 같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부친에게 빌린 1만 5,000달러와 주택담보 대출 등으로 구한 15만 달러를 종자돈으로 홀로서기를 했다. 맨 처음 수주한 계약은 한국건설업체 대리인 자격으로 진행한 8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육군사관학교 독신자숙소 건설프로젝트였다. 초창기에는 여느 사우디아라비아 왕족들처럼 주로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으나, 나중에는 은행 M&A에 뛰어드는 등 미국식 사업 감각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투자도 기부도 통 크게

알 왈리드는 돈을 버는 재능 못지않게 씀씀이도 넉넉하다. 과시적 면모도 있다 싶을 정도로 통 큰 기부로 화제를 모으고, 호화로운 라이프 스타일도 세계 최정상급이다.

알 왈리드는 특히 미국, 유럽 등 서구세계와 중동 이슬람 간에 가교를 놓기 위한 교육과 연구 지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05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이슬람미술전시관 설립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고, 미국 하버드대학에 이슬람학 후원을 목적으로 2,0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내놓았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뉴욕시에 1,000만 달러의 구호자금 기부를 제안한 것도 화제몰이를 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당시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William Louis Giuliani III)가 거절했다. 2002년에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주도한 자선 모금방송에서 2,700만 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투자 기업들 만큼이나 소유하고 있는 사치품들도 세계 정상급이다. 2009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개인제트기 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세계 최대 여객기 에어버스 A380을 포함해 네 대의 전용 항공기를 소유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값비싼 명차를 200대 이상 가지고 있는 자동차광으로도 유명하다.

2011년 12월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는 트위터에 3억 달러를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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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왈리드는 2011년 중동에 민주화 바람이 일면서 「뉴욕타임스」에 아랍의 정치 및 사회개혁을 촉구하는 칼럼을 기고하는 등 이례적으로 정치적 침묵을 깨는 듯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랍 세계의 변화를 전하겠다"며 24시간 뉴스채널 출범도 선언했다. 그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가리지 않고 동반 외출하거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운전 금지에 반대하는 등 개방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최근에는 아랍의 정치와 사회개혁에 관해 보다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랍 민주화 운동을 증폭시킨 트위터에 보수적인 왕실 사람이 투자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적 목적의 투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알 왈리드는 아랍의 많은 왕족과 국가 원수를 제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아랍인에 8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아라비안 비즈니스」 선정). 아랍 제1의 부호인 알 왈리드가 보호색을 벗고 자신의 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면 아랍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알 왈리드 빈 탈랄의 슈퍼 리치 DNA! 코스모폴리탄

알 왈리드의 뛰어난 투자 감각은 다양한 국제적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을 레바논 외가에서 보내고 대학 교육은 미국에서 받았다. 덕분에 베두인 유목민 특유의 주의 깊은 성향과 흥정 및 계산에 강한 레바논인의 혈통, 여기에 미국적 사고방식이 더해지면서 비상한 투자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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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집필자 소개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중 7년을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증권사를 비롯한 시중은행 등 금융업계를 출입하면서 보냈다. IT와 미디어 분야에도 ..펼쳐보기

문향란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국제부·경제부·산업부를 거치며 국내외 다양한 슈퍼 리치의 삶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남보라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경제부를 거쳐 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세계 슈퍼 리치
세계 슈퍼 리치 | 저자최진주 외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부자 피라미드의 상층부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0.00001%의 슈퍼 리치 40인의 삶과 성공 전략을 추적한다. 추진력, 배짱, 치밀함, 강박 등 40인의 슈퍼 리치..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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